계절의 문턱에서

백화제방(百花齊放) 3(벚꽃,앵두꽃,산당화)

거북이3 2012. 4. 26. 19:23

 

          

백화제방(百花齊放) 3.hwp

 

           백화제방(百花齊放) 3(벚꽃,앵두꽃,산당화)

 

                                                                                                                                                                                           이 웅 재

 

 

이제 보춘 삼화(報春三花) 중 외롭게 떨어져 있던 ‘벚꽃’을 만나러 갈 차례이다. 어디로 갈까? 진해(鎭海)? 윤중로(輪中路)? 아니면, 미국의 워싱턴 D.C.? 미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진해만 해도 내가 살고 있는 분당에서는 너무 멀다. 만만한 게 윤중로이긴 한데, 기실 나는 한 번도 윤중로의 벚꽃 구경을 한 적이 없다.

윤중로, 윤중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뒤편에 있는 둑길이란 것은 알겠는데, 얼핏 그 의미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윤중’이나 ‘윤중로’라는 말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인 것이다. 관련된 말로서는 ‘윤중제(輪中堤)’가 있을 뿐이다. ‘윤중제’는 ‘강섬의 둘레를 둘러서 쌓은 제방’으로, ‘둘레 둑’, ‘섬둑’으로 순화해야 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윤중’은 일본말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는 ‘여의방죽길’이나 ‘여의둑길’로 쓰는 것이 옳겠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동감이다.

내가 본 벚꽃 길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전주에서 군산에 이르는 전군가도 벚꽃 길이었다. 1975년 확장 당시 마침 무주구천동을 개발하면서 그곳에 있던 왕벚나무를 이식(移植)한 것이란다. 1989년 봄, 전주에 있는 대학교에 출강하던 어느 날, 강의를 끝낸 후 혼자서 버스 맨 뒷좌석에 타고 길 양 옆으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 길을, 마치 함박눈이라도 분분설(紛紛雪) 날리듯 퍼얼 펄 날리는 벚꽃 길을 뚫고 지나간 적이 있었다. 군산에 도착한 나는 부둣가를 찾아가 홀로 회 한 접시를 시켜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고서는 휘청거리는 몸을 끌고 월명산(月明山) 공원엘 올랐다. 그리고는 그때만 해도 구경하기 어려워졌던 죽필화(竹筆畵)를 그리는 헙수룩하게 생긴 환쟁이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다가 주머니를 통통 털어 내 이름자를 써 달라고 하여 받아들고 온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조차 없어 그냥 무상감만 느껴지는 추억일 뿐이다.

한때 우리는 벚꽃을 일본말 그대로 ‘사꾸라’라고 불렀었다. 꽃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도 ‘사꾸라’라고 했었다. 특히 정치인들을 보고 그랬다. 변절자나 사기꾼을 가리키는 말인데, 그걸 특히 정치인들에게 많이 썼었던 것이다. ‘公約’이 ‘空約’으로 바뀌기 때문이었을 터인데도, 그 낯 두꺼우신 분들은 그걸 모른다. 아니, 모르는 체한다.

일본에서는 국화(國花)처럼 대접받는 벚꽃, 하지만 지금은 그 왕벚꽃의 원산지가 우리나라의 한라산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창경궁을 마구 헐고 거기에서 벚꽃놀이를 하게끔 유락(遊樂)의 처소로 만들었고, 미국의 워싱턴 D.C. 포토맥 강가에도 벚꽃이 만개하도록 하였었다. 꽃이 무슨 죄가 있으랴? 꽃말도 ‘정신의 아름다움’ 또는 ‘미모’라고 하니, 이젠 그러한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만큼 성숙한 대한민국의 국민들답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 보도록 하자. 한 가지, ‘벗꽃’이라고 잘못 아는 일일랑 바로 잡고 말이다. 그 열매를 ‘버찌’라고 한다는 걸 염두에 두면 ‘벚꽃’이라야 옳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로 난 길 옆 조그만 공원에는 앵두꽃도 피어 있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그래서일까? 앵두나무는 우물가에 있어야 제격이라는 느낌이다. 우물가가 아니라서인지 이곳에 앵두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나도 작년 여름 이곳을 지나가다가 앵두를 따먹고 가자는 친구의 말을 듣고서야 여기에 앵두나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요새는 옛날 같지 않아서 앵두나무 보기가 힘들어진 것 같다. 앵두, 그 이름 자체에서부터 물씬 정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투명함이 느껴지는 빨강, 앙증스럽게 동글동글한 앵두는 차마 깨물어 먹기가 미안할 지경이었는데, 맛은 아주 상큼하면서도 달콤했다. 이런 맛이 첫사랑의 맛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발그스레한 앵두꽃을 보면서, 나는 걱정이 앞섰다. 벌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꽃향기를 맡고 벌이 날아들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벌의 개체수가 급감하였다고 하더니, 정말로 벌이 보이질 않는다. 기온의 갑작스런 변화라든가 전자파로 인하여 찾아가야 할 길을 제대로 못 찾아서 그렇다는 TV 보도를 본 듯도 하다. 정말 걱정이다. 금년 여름에는 양앵두 체리(cherry)보다는 토종의 앵두를 따먹는 행운을 잃는 것은 아닐까?

앵두’는 한자 ‘앵도(櫻桃)’에서 온 말이다. 전에는 한자음 그대로 ‘앵도’라고 불렀으나, 모음조화가 깨지면서 ‘앵두’로 변신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말로는 ‘자도(紫桃)’가 ‘자두’로, ‘호도(胡桃)’가 ‘호두’로 변한 것도 있다. ‘살구’도 원래는 ‘살고’였다고 한다. 앵두는 옛날 종묘의 제물로도 올랐던 귀한 과실이었다는데, 왜 점점 사라져가는 것일까? ‘오로지 한사랑’, 꽃말처럼 변함없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과실로 거듭나기를 소망해 본다.

앵두나무와 작별하고 가다가 명자를 만났다. 그녀는 빠알간 얼굴이었다. ‘봄이 왔다구요!’ 하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나무, 산당화(山棠花)였다. 명자라는 촌스런 이름에 비해서는 보면 볼수록 예뻤다. 장미과에 속하는 빠알간 그 꽃은 너무나 정열적이어서 여인네들이 이 꽃을 보면 바람이 난다고 사위했더란다. 그래서 집 안에는 심지 않고 담장 밖에 심었다는데, 어찌 보면 탱자나무처럼 가시가 있어서 울타리용으로 심는 경우도 적잖다고 한다. ‘명자나무’라는 이름은 한자어인 ‘명사(榠樝)나무’에서 온 듯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명자’, ‘명자’, 아무래도 그건 여자 이름 같다. 그래서 생긴 또 하나의 별명이 ‘아가씨나무’다. 놀부 심사를 닮은 ‘모과나무’와 같은 ‘모과(木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새가지를 조금 꺾어 내어 화분에다가 삽목이라도 하여 볼까? 꺾꽂이로도 쉽게 번식할 뿐만 아니라 분재(盆栽)로 키워도 멋진 꽃 산당화. 아가씨는 ‘겸손, 평범’을 꽃말로 가지고 있다는데, 아무리 보아도 우리 산당화 아가씨는 평범해 보이질 않는다. 이름이 비슷한 산다화(山茶花)는 동백나무다. 아마도 동백보다는 조금 은은하고 청초한 느낌을 주는 꽃이기에 ‘아가씨나무’라는 별명을 얻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2012.4.25. 원고지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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