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제방(百花齊放) 4(조팝나무,제비꽃,민들레)
이 웅 재
이제 슬슬 배가 고파진다. 1960년대까지는 먹고 사는 게 문제였다. 구황(救荒) 식품이 많았던 연유이다. 아예 이팝나무, 조팝나무 하는 나무들도 있었는데, 이팝나무는 남쪽지방에서 더러 가로수로 심는 모양이지만, 중부지방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다. 조팝나무는 큰길가나 탄천 변에서도 자주 만날 수가 있다. 꽃 핀 모양이 쌀밥 같다고 이팝나무, 튀긴 조팝(‘조밥’의 북한어)을 닮았다고 해서 조팝나무였으니, 얼마나 배들이 고팠으면 그런 이름들을 붙여 보았을까?
자디잔 흰 꽃이 멀리서 보면 꼭 조밥을 담아놓은 것과 같아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바라보았을 조팝나무, 향기도 좋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팝나무는 수선국(繡線菊) 또는 조선수선국(朝鮮繡線菊 :Korean Spiraea)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거기에는 슬픈 전설이 따른다.
옛날에 수선(繡線)이라는 이름의 효녀가 있었다. 아버지가 전쟁에 나갔다가 적국의 포로가 되자 아버지를 구하러 적국으로 들어갔으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수선은 아버지의 무덤에서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캐어와 정성을 다하여 가꾸었는데, 이 나무에서 핀 꽃을 수선국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장미과의 팝콘을 닮은 흰 꽃, 얼마나 깨끗하고 깔끔하고 귀엽고 앙증스러운가? 꽃말도 그래서 ‘매력’ 또는 ‘단정한 사랑’이라고 한다.
조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나니, ‘겸손과 믿음의 꽃’인 제비꽃이 나를 반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무렵쯤 꽃이 핀다고 해서, 또는 꽃의 모양과 빛깔이 제비를 닮았다고 해서 제비꽃이라고 한다는데, 흔히들 ‘오랑캐꽃’이라고도 불렀었다. 꽃이 필 무렵이면 소위 춘궁기라서 먹을 것이 궁해진 오랑캐가 자주 쳐들어와서 오랑캐꽃이라고 했다고도 하고 뒤로 뻗은 꿀샘의 생김새가 오랑캐의 뒷머리 채를 닮아서 오랑캐꽃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키가 작아 앉은뱅이꽃, 옹기종기 모여 다니는 병아리를 닮았다 하여 병아리꽃, 꽃 두 개를 합치면 씨름하는 자세가 된다고 씨름꽃, 꽃 두 개를 서로 반대로 얽으면 반지처럼 된다고 하여 반지꽃 등 그 별명도 많은 꽃이다. 서양 쪽의 이름은 바이올렛(violet)인데, 바이올렛은 우리나라 야산이나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비꽃과는 특히 그 잎의 생김새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제비꽃의 꽃잎은 길쭉한데, 서양의 제비꽃은 둥그스름하다. 보랏빛이나 흰 꽃 말고 노란색 제비꽃도 있다는데 보기가 힘들다.
옛날 ‘이아’라는 소녀가 있었단다. 소녀는 양치기 소년 ‘아티스’를 사랑했는데, ‘아티스’를 귀여워하던 미의 여신 ‘비너스’는 아들 ‘큐피드’에게 두 개의 화살을 주고 두 사람을 쏘도록 했다. ‘이아’에게는 영원히 사랑이 불붙는 황금 화살을, 그리고 ‘아티스’에게는 사랑을 잊게 하는 납 화살을 쏘게 했다. 황금 화살을 맞은 ‘이아’는 훨훨 타오르는 가슴으로 ‘아티스’를 찾아 갔지만, ‘아티스’는 그러한 소녀를 본척만척하였고, 소녀는 결국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울다 죽고야 말았다. 그렇게 되자 비너스는 그래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소녀를 작고 가련한 꽃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그 꽃이 제비꽃이란다.
이와는 다른 전설도 전해 온다. ‘제우스’가 ‘이오(Io)’ 라는 처녀를 남몰래 사랑했단다. 그런데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가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여 처녀를 암소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제우스는 처녀를 불쌍히 여겨 그녀에게 먹이기 위한 여물로 이 꽃을 만들어 주고, 그녀의 이름을 따서 ‘이오의 꽃(Ion)’이라고 했다. 제비꽃의 학명 ‘viola’는 바로 ‘Ion’에서 비롯된 것이란다. 나폴레옹은 해마다 결혼기념일에 조세핀 왕후에게 이 바이올렛 꽃다발을 선물했다고 하니, 며칠 있으면 찾아올 결혼기념일에 나도 제비꽃이나 따다가 아내에게 선물을 해 볼까?
내가 너무 제비꽃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나? 그 옆에 있던 민들레가 샐쭉한다. 밟아도 밟아도 또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는 민초(民草)와 같다는 민들레, 한번 싹이 트면 반드시 꽃을 피우고야 만다는 민들레, 그래서 조용필(趙容弼)은 ‘일편단심 민들레’를 불렀다. 민들레꽃은 이른 봄에 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건이 허용되지 않을 때에는 10월까지 기다려서라도 꼭 꽃을 피우고야 만다고 한다. 그러한 오기(傲氣)는 어디서 나왔을까? 그걸 설명해 주는 전설이 있다.
옛날 어떤 나라에 한 임금이 있었다. 그 임금은 아주 얄궂은 운명을 타고났다. 어떤 명령이든 평생에 단 한 번만 내릴 수 있는 운명을. 임금은 항상 그것이 불만이었다. 운명을 점지해 준 것은 하늘나라에 있는 별들이었다. 그러한 비극적인 운명에 고민, 고민하던 임금은 어느 날 자신의 그 단 한 번의 명령을 내리기로 결정을 하였다. 임금은 하늘을 쳐다보며 명령을 내렸다.
“별아! 내 운명의 별아! 모두 하늘에서 떨어져 땅 위의 꽃이 되어라. 내 너를 기꺼이 밟아 주리라.”
명령이 떨어지자 하늘의 모든 별들은 명령대로 모두 땅에 떨어져 노란색의 작은 꽃이 되었다. 임금은 갑자기 양치기로 변해 가지고는 그 민들레꽃들을 밟으면서 양떼들을 몰고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밟히며 밟히면서도 민들레는 양치기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래서 꽃말은 ‘내 사랑 그대에게’이다.
위염에 좋고 암세포를 죽일 뿐만 아니라, 간을 보호하고 머리카락을 검게 만들어 준다는 민들레, 그러한 민들레가 요즘엔 외래종 때문에 몸살이다. 토종 민들레는 꽃받침이 뒤로 젖혀지지 않고 위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외견상 실하다. 서양 민들레는 꽃받침이 뒤로 젖혀져서 아래로 향한다. 실하게 보이는 토종이 어째서 외래종에게 밀려나서 조금은 깊은 산 속 같은 데에서나 볼 수 있게 된 것인지?
민들레에 대한 노래로는 박미경 작사의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라는 가사도 있다. 그런데 ‘민들레 홀씨’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라고들 한다. 홀씨는 포자(胞子)라고도 하는데 꽃을 피우지 않는 민꽃식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홀씨가 아니라 ‘씨앗’이라는 말인데, 바람에 씨를 날리는 점이 홀씨식물과 비슷하여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2012.4.29.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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