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제방(百花齊放) 1(산수유[생강나무],매화)
이 웅 재
4월 초까지도 눈발이 오락가락하며 날씨를 종잡을 수가 없어 혹시 금년에는 봄이 오질 않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4월 15일 전후하면서부터 갑자기 화창한 봄 날씨가 계속되면서 온갖 꽃이 서로 다투어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말 그대로 백화제방(百花齊放)이었다. 그동안 추위 때문에 피지 못했던 꽃들이 한꺼번에 피었기 때문이다. 그전 같으면 순차적으로 피었을 꽃들이 다투어 피어난 것이다. 백화제방(百花齊放)이라는 말은 지난날의 문학작품들 속에서 흔히 대면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실제로 백화제방의 경관은 보기가 힘들었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대로변으로는 산수유, 매화가 서로 앞다투어 노란 꽃과 하얀 꽃을 선보이고 있었다. 먼저 산수유부터 인사를 나누기로 한다. 평소에는 매화보다도 조금 일찍 피기 시작한다는 산수유가 아니던가? “남자한테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고….” 근래에 많이 듣고 보던 멘트다. 정말 그렇게 좋은 것일까, 궁금해서 알아보니, 어린아이들의 야뇨증을 다스리며, 노인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요실금 증상에도 효능이 있단다.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하고 관련시켜서는 조루현상이나 발기부전 등에도 효과가 탁월하단다. 아니, 남자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좋고 어린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좋단다. 그러니까 남녀노소 모두에게 좋다는 거다. 아무래도 금년 가을에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산수유마을엘 찾아가서 그렇게 좋다는 산수유를 한 두어 말쯤은 사 와야 할까 보다.
가을이면 가지마다 새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산수유는 굳이 산수유마을까지 가지 않아도 아파트 단지 내에 무진장으로 널려 있기도 하다. 그 소유주가 내가 아니기에 떳떳하게 따기에는 문제가 좀 있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조루현상이나 발기부전에도 좋다는 것, ‘남자에게 정말 좋은데…’로 알려졌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만인이 보는 앞에서 마음 놓고 채취하기에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그래, 그냥 산수유마을을 방문하기로 하자. 다시 다른 생각 가지지 말기로 하자. 산수유의 꽃말이 불변이요, 지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수유’ 하면 함께 떠오르는 나무가 있다. 바로 ‘생강나무’다. 전문가가 아니면 그 둘을 구별하기가 수월찮다. 산수유는 그 꽃이 가지 끝에 달려 있는데, 생강나무는 가지 줄기에 옹기종기 매달려 있는 점이 차이점이라고는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니 그것만 가지고는 구분할 수가 없다. 그 줄기가 산수유는 거친 편이지만 생강나무는 좀 매끈한 편이라는데, 그것 가지고도 충분히 구분할 수 있을는지는 의문스럽다. 아무래도 꽃나무에 대해서는 무식한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 완전 무식한 방법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장 분명한 구별법이 아닌가 싶다. 그냥 가지를 꺾어 보는 거다. 그래서 생강 냄새가 나는 놈이면 생강나무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생강나무는 산에서 자생하면서 이른 봄을 독차지하는 나무다. 공원이나 과수원, 또는 가로수나 아파트 단지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십중팔구 산수유라고 보면 된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노란 동백꽃’이 생강나무를 가리킨다는 것은 이젠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들 있다. 생강나무는 개동백, 산동백 등으로도 불리는 것이다. 그 씨앗으로 짠 기름을 동백기름이라고 하여, 옛날에는 사대부 집 귀부인들이나 내로라하는 기생들이 즐겨 사용하던 최고급 머리 기름이었다.
다음은 매화에게로 향한다. 조선 초기의 학자인 강희안(姜希顔)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이라는 일종의 원예서에서 꽃의 등급을 9등품으로 나누었는데, 이때 매화는 1등품으로 분류되었다. 온갖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매화를 불의에도 굽히지 않는 꿋꿋한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보았던 것이다. 옛 선인들의 시화(詩畵)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는 매화는 그 꽃말이 ‘고결, 기품’이다.
그래서일까? 퇴계(退溪) 선생도 매화를 끔찍이 사랑했다고 한다. 선생이 48세에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그곳에서 18세의 관기 두향(杜香)을 만난다. 두향은 시화(詩畵)뿐만 아니라 가야금에도 능하였다고 한다. 퇴계는 이런 두향을 귀여워하였는데 1년이 채 못 되어 경상도 풍기군수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단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두향은 떠나는 퇴계 선생에게 수석 2점과 매화 화분을 정표로 드렸다고 한다. 이후 선생은 두향이 준 매화를 두향을 보듯 사랑하고 가꾸며 매화를 시제로 하여 많은 시를 남겼다. 선생은 매화를 절군(節君)이나 매군(梅君) 또는 매형(梅兄)이라 불러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였다고 한다.
매화의 열매 매실(梅實)은 그 맛이 달면서도 시다. ‘梅’의 고자(古字)가 ‘某’인 것은 바로 매화의 그 단맛을 나타내주기 위한 글자인 까닭이다. 곧 ‘甘木’의 합성자였던 것이다. 이 매실이 최근 인기 절정에 이르게 된 것은 1999-2000년에 방영되었던 MBC 드라마 “허준(許浚)”의 덕이었다. 거기서 매실의 효능을 과장한 것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매실의 효능을 과신(過信)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나도 해마다 매실 10kg 정도를 사다가 매실주와 매실즙을 담갔었는데, 매실주를 담글 때 주의할 점은 술을 담근 지 3개월쯤 되면 반드시 매실을 건져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매실의 독성이 우러나와서 좋지가 못하다. 아예 술을 담글 때부터 감초(甘草)를 넣어 담가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감초는 맛을 달게 할 뿐만 아니라 독성을 제거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약재는 나무나 나무뿌리들, 그리고 열매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는 어느 정도 독성이 있기 마련이다. ‘약방의 감초’는 말은 그래서 생겨났다.
산수유와 매화, 백화제방은 이제 시작이 되었을 뿐이다. (2012.4.22.원고지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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