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시절보다도 못한 출산 휴가
이 웅 재
다음은 중앙일보 8월 29일자의 ‘애 낳기 힘든 나라’라는 소제목의 신문기사이다.
“지난해 출산율은 1.24명이다.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정부는 그동안 출산율을 높이려 환경 개선에 연간 10조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출산 인프라가 붕괴되고 있다. 전국 54개 시·군·구에 산부인과가 없어 2만 명의 임신부가 인접 시·군으로 가는 ‘출산 난민’ 신세다. 승용차가 없으면 만삭에 오토바이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100리를 간다. 애 낳으러 가는 길이 고행길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 돼 버렸다. 지방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도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출산과 육아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고, 더더구나 교육비 및 결혼 비용 등 고비마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라도 직장 여성이 출산을 하게 될 때, 충분하지 못한 출산 휴가 한 가지만이라도 합리적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세조 때 최항(崔恒), 노사신(盧思愼), 강희맹(姜希孟) 등이 집필을 시작하여 성종16년(1485)에 간행한, 조선 시대 통치의 기준이 된 최고의 법전(法典)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보면, 계집종이 출산을 하게 될 경우에도, “臨産一朔 産後五十日 給假 夫則産後給假十五日”(출산에 임해서 한 달 그리고 산후의 50일 동안 휴가를 주고, 그 남편에게도 산후에 15일의 휴가를 준다.)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을 보자. 여성 근로자의 출산휴가 기간은 90일이며, 2008년 6월 21일부터 아내가 출산하면 출산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남편도 3일의 출산 휴가를 낼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출산 당사자의 경우에는 대동소이하다고 하겠으나, 그 남편의 휴가일에는 커다란 편차가 있다. 어째서 3일 간의 휴가밖에는 주지 않는 것인가? ‘당사자에게만 배려해주면 되지 무슨 남편에게까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핵가족이 대부분인 현대에 출산 당사자를 보살펴줄 사람은 그 남편 말고는 별로 없을 것이다. 출산한 사람이 직접 시장엘 다녀오고, 밥 해 먹고, 빨래하고 하는 일을 직접 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단군신화(檀君神話)』를 보자. 환웅(桓雄)이 호랑이와 곰에게 신령스런 쑥 한 자루와 마늘 이십 매를 주며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사람이 되리라.”고 하였는데,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서 먹고 기(忌)하기 스무하루[三七日]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견디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스무하루’는 출산 후, 설거지통에 손을 넣는다든가 찬 물로 빨래를 한다든가 하여서는 안 되는 기간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그리고 백일은 바로 출산 휴가와 맞먹는 기간이라고 할 수가 있다. 『단군신화(檀君神話)』에서는 직접적인 출산을 말한 것이 아니라서 그 남편의 휴가일수가 언급되지 않았으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규정과 일맥상통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기사 한 꼭지 (입력 2009.07.09 19:56)를 보자. “세종, 노비에게도 출산휴가 100일 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박현모 선임연구원은 최근 계간 ‘정신문화연구’ 여름 호에 기고한 ‘세종은 백성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였나’라는 논문에서 여자 노비의 출산휴가 제도 개선과 여성 노비의 출산휴가를 100일로 늘리고 노비의 남편에게도 한 달 간의 휴가를 주는 정책을 시행한 점을 들면서,
“박 연구원은 ‘세종은 제생원(濟生院) 제도를 보완해 버려진 아이들을 구호하도록 했다. 버려진 아이를 기르려는 사람이 있으면 문서에 기재해 뜻대로 기를 수 있게 했다. 또 여자 노비들…출산휴가를 100일로 늘렸고 출산 1개월 전부터 산모의 복무를 면제해 주도록 했다. 그 남편에게도 한 달 간의 산후 휴가를 주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고 하였다.
이런 점들을 보면, 현재의 근로기준법은 출산 당사자의 경우에는 조선조의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비슷하지만, 그 남편의 휴가일수는 천양지차라 할 수가 있겠고, 세종대왕 때의 경우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지고 있는 형편이니, 조선조보다도 못한 현재의 출산 정책(휴가일 하나만 가지고 보더라도)을 가지고 어찌 출산율을 높이겠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합리적으로 재조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2012.8.29. 원고지 14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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