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검은 눈동자-를 듣고서(71.10.10.).hwp
책을 정리하다 보니 예전에 써 놓았던 글 몇 꼭지들이 싯누런 노트에서 뒹굴고 있는 것이 있기에 내 젊었던 시절에는 어떤 식으로 글을 썼는지 참고로 하려고 여기에 올린다. 이 글은 1971년(30세 때) 쓴 글이다.
(대한교육연합회 선정 KBS 연속 방송극) “검은 눈동자”를 듣고서
이 웅 재
현직자로서 “검은 눈동자”를 계속 들어 보았다.
회를 거듭해 갈수록 그 시간을 기다려지게 되는 것은 작자의 문학적 재질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교단에 선 지 2년여, 그나마 3년간 군에 다녀온 나는 햇병아리 교사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느끼는 건 교사라는 개념이 차츰 발달해가는 사회와 함께 자꾸 변질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우선 사회 일반의 인식으로서, 발전성 없는 직업이라는 동정과, 한편으로는 철저한 기업주의라는 손가락질을 들 수 있겠다. 그 두 가지는 서로 상반되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떨어질 수 없는 연관성을 지닌 야누스의 모습인 것이 사실이랄 수 있겠다. 그래서 교사는 점차로 교육자의 위치에서 교직자의 위치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책임 소재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그것을 교육 외적인 요인과 그 내적 요인으로 양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사이 교육주간을 맞아 교육 공해를 없애자는 운동은 주로 그 외적 요인을 제거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사실은 그 내적 요인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볼 때, 우리는 좀더 많은 공해 요소들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다.
제한된 지면이라 일일이 열거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관점에 선다면 이 작품은 너무 상식적이며 유형적인 요소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할 수 있겠다. 역시 한정된 횟수를 감안했을 터이고, 게다가 작품 제작 의도도 일종의 목적의식을 가진 작품이 아닐 수 없다는 면을 감안해서 작자를 탓하지는 않겠다. 의욕적인 제2, 제3의 작품을 계속 발표함으로써 좀더 교육에 대한 내외의 인식을 새롭게 하여 주길 바라면서, 아닌 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위선적인 ‘체병’에 걸려있는 주인공 강 선생의 마지막 건투를 빈다.
구체적인 감상을 적지 못한 점 못내 아쉽다. (71.10.10.)[17.10.9.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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