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잇속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세 가지

거북이3 2012. 9. 1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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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세 가지

 

                                                                                                                               이 웅 재

 

살다 보면 없어도 될 것 같은 것이면서도 없으면 불편한 것들이 있다. 요사이 핸드폰이 바로 그런 물건의 대표주자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누구나 거의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별로 그 필요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물건들도 있다. 말하자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있다는 말이다. 내게도 그런 것들이 세 가지가 있다.

그 하나가 손목시계이다. 없어도 될 것 같은 핸드폰을 다들 가지고 있으니, 굳이 시계가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시간이 바뀔 때마다 “한 시에요!” 또는 “두 시에요!” 하고 음성으로 알려주는 핸드폰도 있는데 귀찮게 시계는 왜 차고 다니느냐는 말이다. 웬만한 건물에는 모두 시계가 있고, 지하철이나 버스정거장에서도 시간을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파트 현관에도 어김없이 시계가 있어서 외출할 때나 귀가할 때마다 시간을 알려주고 있는데 손목시계가 왜 필요한가 말이다.

몇 천만 원짜리 고급시계로 ‘나는 이렇게 잘 나가는 사람입니다!’ 하고 광고를 하고픈 속물이 아니라면, 꼭 손목시계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길을 가고 있는 도중이라도 시간을 알고 싶으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될 일인데, 시계를 차고 다녀야만 할까? 전에는 별로 그러지 않았지만 요새는 스마트폰인가 하는 제법 값이 좀 나가는 핸드폰이 대세라서 “핸드폰 좀 빌려주세요!” 하면, ‘별 쓸개 빠진 사람 다 있네!’ 하면서 콧방귀도 뀌지 않을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몇 시인가요?” 하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야박하게 “시간을 가르쳐 줄 수가 없소!” 하고 그냥 가 버리는 사람은 보지를 못하였다. 나는 그래서 단언한다. 손목시계는 없어도 된다고.

없어도 그만인 것 또 한 가지는 손수건이다. 청춘 남녀라면 혹시 야외에 나가서 바위나 나무 등걸 위에 앉으려고 할 때, 잽싸게 상대방을 위하여 손수건을 펴 주어서 그 위에 앉게 하는 배려 상 필요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 같은 늙은이가 새삼스레 연애를 할 것도 아닌데, 손수건은 가지고 다녀 무엇하나? 그럼 간질간질하면서 코가 질질 나올 때라든가 재채기가 나서 가래침이라도 튀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거야 뭐 휴지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요즈음에는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늙수그레한 아주머니들이 겉봉에 ‘○○카바레’나 ‘☓☓노래방’ 또는 ‘△△주유소’ 같은 상호가 적혀 있는 손바닥만 한 휴지를 억지로 떠맡기다시피 공짜로 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나 같이 심장이 약한 사람은 그걸 안 받은 재간이 없다. 그걸 나누어주는 일은 일종의 알바인데, 그네들에게 자선을 베풀지는 못할지언정 어떻게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있을 것이냐? 어찌 생각하면 그걸 받아주는 행위야말로 일종의 훌륭한 선심 쓰는 행위가 아닐 것인가? 나에게 손해가 나지도 않는 일인데, 아니 내게 도움을 주는 일인데,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받자, 받자, 그렇게 받다 보니 이 주머니, 저 주머니에 휴지가 가득하다. 최근에는 그 선전용 휴지도 한 단계 질적인 향상을 해서 그냥 휴지가 아니라 물티슈를 주는 일이 만아졌다.

물티슈, 그것 참 여러 모로 편한 물건이었다. 손에 무엇이 묻었다든가 양복에 점심 먹다가 흘린 찌개 국물 자국도 완전하게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눈가림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울 수가 있어서 편한 물건이었다. 음식점의 물수건은 살균 처리가 제대로 안 되어 세균이 득실득실하다고 겁주는 연구 발표들이 있어서 께름칙해도, 물티슈야 조금도 께름칙할 건덕지가 없어서 좋다. 그러니 주는 대로 받자. 알바 줌마가 좋고 내가 굳이 손수건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데, 주는 대로 받자. 손수건은 코 몇 번 풀고, 가래침 몇 번 닦아내면, 그 다음에는 꺼내기가 면구스러워지지 않던가? 그러니 아예 가지고 다니지를 말도록 하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또 한 가지. 그건 돈지갑이다. 예전처럼 세종대왕님을 정중히 모시고 다녀야 할 때에는 돈지갑이 꼭 필요했었다. 그런데 요새는 수표가 아니더라도 신사임당님 몇 장만 넣어가지고 다니면 충분한데, 돈지갑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사실은 신사임당도 별로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어딜 가나 카드 한 장이면 모든 계산이 다 끝날 수가 있는데, 현찰을 뭉텅이로 가지고 다니는 건 세련된 신사 숙녀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지 않을까? 그러니 돈지갑도 주머니에서 추방시켜 버리자. 별로 내세울 만한 정도로 돈이 많은 처지도 못 되는 형편이니 돈지갑 얘기를 길게 늘어놓는다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밖에 없어 자질구레한 얘기는 접기로 한다.

있어도 그만인 것에는, 당신만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건 바로 마누라다. 젊었을 적에야 하루도 얼굴 못 보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더랬다. 4,50대가 되어서도 마누라가 있어야 직장생활을 하는 데에 지장이 없었다. 피곤해서 늦잠 자는 거, 출근 시간 되었다고 깨워주질 않나, 이틀이 멀다 하고 와이셔츠를 다려주질 않나? 요즘에는 월급봉투가 없어져서 그 기분이 반감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통장으로 월급이 입금되는 날에는 전날 저녁에 한 잔 얼큰히 취해가지고 들어와도 잔소리를 꼭꼭 동여매 두고, 아침에는 해장국까지 끓여주는 사람이 마누라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젠 월급 받는 처지에서도 벗어나 있는 몸, 도무지 반겨주는 기색이 없는 마누라가 무슨 필요가 있을 것인가?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 벨이 요란스레 울린다. 마누라다. 수영장엘 갔으면 수영이나 할 것이지, 또 무슨 잔소리를 하려고 그러나? “여보, 지금 비가 엄청 많이 오고 바람도 심하게 불어요. 그러니까 반팔 입지 말고 양복 상의를 입고 나가세요.” 그래서 아파트 9층에서 1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9층으로 올라와서 우산 들고 양복 상의를 입고 1층으로 내려가야 하는 번잡함을 줄이게 되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마누라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인 것 같다. 아니, 잘못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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