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수필) 신사역까지만 가겠습니다
이 웅 재
예전에는 ‘오월’을 ‘오월(惡月)’이라고도 하였다. 1·3·5·7·9는 양수(陽數)다. 그 가운데 꼭 중간에 위치한 것이 ‘5’이다. 그래서 ‘오월’은 특히 양기가 강한 달이다. 그래서 오월은 음기(陰氣)를 가지고 그 양기를 중화시켜줄 필요가 있는 달이다. 한마디로 오월은 여성(女性)스러움이 필요한 달이라는 말이다.
메이플라워(Mayflower)는 여성성(女性性)을 대표하는 산사(山査)나무 꽃을 가리킨다. 산사나무는 아가위나무라고도 하는데, 남성성(男性性)을 대표하는 밤나무 꽃과는 대척적(對蹠的)인 꽃이다. 꽃 선물은 짝수로 하지 않는다. 음(陰)과 음(陰)이 만나면 조화가 깨어지기 때문이다. 5월은 여성성의 달이다. 꽃 중의 꽃, 장미는 5월의 꽃이다. 5월 14일은 바로 ‘것이다.
메이퀸(May queen)은 메이데이(May Day)에서 선발했다. ‘May Day(오월제)’는 ‘5월 1일’이었다.(‘노동절’과는 다르다.) 오월은 그렇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성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달이다. 그래서일까? ‘메이데이(Mayday)’는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쓰는 구조신호이기도 하다. 이 말은 항상 세 번씩 연달아 부른다. 노동절과 구분하기 위함이다. 응급구조신호는 ‘Mayday’, 노동절이나 오월제는 ‘May Day’이다.
다시 말하지만, 5월은 여성성의 달이다. 그래서일까? 5월은 ‘사랑의 달’이다. 사랑이란 남성적 우왁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의 옛말은 ‘다솜’이다. ‘다솜’은 ‘따뜻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뜻함의 대표적인 예는 모성(母性)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월에는 특별히 따뜻함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날들이 많다.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동심(童心)을 귀하게 대해 주어야 할 날이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이다. 방정환(方定煥) 선생의 「어린이 예찬」을 보자.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앞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다. 볕 좋은 첫여름 조용한 오후이다.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그 중 고요한 것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 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아니 그래도 나는 이 고요한 자는 얼굴을 잘 말하지 못하였다. 이 세상의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은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 듯싶게 어린이의 잠자는 얼굴은 고요하고 평화스럽다.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존재가 어린이인 것이다.
5월 셋째 주 월요일(금년은 5월 20일)은 ‘성년(成年)의 날’이다. 이제 막 ‘어른’의 일원이 되기 시작하는 날이다. 그러니까 그 이전까지는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고 지내야 하는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어버이날은 원래 1956년 이래로 ‘어머니날’이었다. 그것이 왜 어머니날만 있느냐는 아버지들 때문에 1973년부터 아버지까지도 포괄하는 ‘어버이날’로 변한 것이다. 어버이날은 효심(孝心)을 기리는 날이다.
5월에는 또 ‘스승의 날’이 있다. 5월 15일이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버이에 못지않게 우리를 이끌어주신 스승님에 대한 존경심을 상기하도록 하여 주는 날이다. 앞의 두 날은 부모나 선생이 어린이나 이제 막 성년이 된 젊은이들을 사랑으로 이끌어 주어야 하는 날이요, 뒤의 두 날은 그와는 반대로 어린이나 젊은이들이 부모님이나 스승님에 대한 효심이나 존경심을 다져보아야 하는 날이다. 이 날들의 의미가 올바로 지켜질 때 우리의 사회는 보다 조화로운 사회가 될 수가 있다. 이렇게 가정이나 사회가 제 구실을 다하게 되면, 다음 한 단계 더 넓은 의미의 6월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요즘 가끔 어른들이 어린이나 젊은이들을 두고 예의범절도 모르고 제멋대로라느니 자기만 알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느니 하며 싹수가 없다고들 걱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더러는 그런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지만, 며칠 전 내가 체험한 일을 생각해 보면 그런 걱정은 기우(杞憂)에 불과한 생각이라고 믿는다.
볼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인사동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교대역에서 젊은이 하나가 탔다. 젊은이는 다리를 절뚝였다. 장애인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마도 최근에 다리를 좀 다친 듯싶었다. 그는 비틀비틀하더니 내가 앉아 있는 경로석 옆 출입문 쪽에 덜퍼덕 주저앉았다. 내가 일어서서 자리를 내어주고 젊은이 등을 툭툭 치며 앉으라고 했다. 젊은이가 일어섰다. 그러더니 그는 내 자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전동차의 연결 부분 쪽으로 가더니 기대어 서 있는 것이었다.
‘별 친구도 다 있군.’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나와 같은 생각들을 하는 표정 같았다. 조금 후 고속터미널 역에서 내 앞쪽 경로석에 앉았던 사람이 내렸다. 젊은이가 그 빈 자리에 가서 앉는다. 새로 타는 사람 중에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그쪽으로 왔다. 젊은이가 그 노인에게 말했다.
“신사역까지만 가겠습니다.”
내가 양보할 때에는 몇 정거장 안 되니까 그냥 버텨보자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실상은 무척 힘들었고, 마침 자리가 나는 것이 보이자 더 이상 망설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았던 것 같다. 다시 노인이 그의 앞에 섰고, 그는 불편한 몸이라서 당연히 그 자리에 앉아서 가도 무방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곧 내릴 것이라고 양해를 구하고 있던 것이다.
(2013.4.13. 원고지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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