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타 꼬타 고분 꼬타(百花齊放)

매화[백화제방(百花齊放) 2]

거북이3 2014. 7. 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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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백화제방(百花齊放) 2]

                                                                                                                                                                                    이 웅 재

결혼식이 있었다. 붓펜으로 봉투에 ‘축 결혼’이라고 쓴 후, 지갑을 펴서 5만 원권을 꺼냈다. 1장을 넣을까 2장을 넣을까 하다가, 문득 지폐 뒷면에 그려져 있는 그림에 눈이 갔다. 조선시대 최고의 매화 화가로 불린 어몽룡(魚夢龍)의 작품 ‘월매도(月梅圖)’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 그림은 둥근 달과 함께 그림자처럼 자신의 모습을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는 대나무를 배경으로 늙고 마른 가지와 새로 돋아나는 어린가지를 꼿꼿하고도 간결한 형태로 묘사하여 얼핏 은은한 느낌과 함께 깔끔한 맛을 풍기는 멋진 그림이었다.

예로부터 매화는 추위가 채 가시기 전, 봄을 알려주는 꽃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우리의 옛 선비들은 ‘매화는 한평생을 추위 속에 지내면서도 향기는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고 노래하면서 그 기품을 닮으려고 노력했다. 척박한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고 피어나는 매화의 끈질기고 강인한 그 기질이 고결한 기품을 지니고 있는 선비의 품성과 다를 바 없다고 하여 늘 곁에 두고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화라서 그런 것일까? 매화를 가리키는 말은 예상 외로 여러 가지가 있다. 학문을 열심히 하면 매화가 피고, 학문을 게을리 하면 매화가 피지 않는다고 하여 매화를 ‘호문목(好文木)’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여러 가지 꽃들 중에서도 가장 일찍 핀다는 뜻으로 ‘화괴(花魁)’라고도 했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특성을 드러낸 ‘빙자옥골(氷姿玉骨)’도 있다. 비슷한 뜻으로 볼 수 있는 ‘빙혼(氷魂)’, ‘청우(淸友)’를 비롯하여, 봄을 알리는 풀이라는 ‘춘고초(春告草)’ 등도 있다. (안형재, 한국의 매화, 북랜드, 2001.11.30. 참조.)

조선 초기의 학자인 강희안(姜希顔)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꽃의 등급을 9등품으로 나누었는데, 매화는 1등품으로 분류되었다. 온갖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매화를 불의에도 굽히지 않는 꿋꿋한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보았던 것이다. 옛 선인들의 시화(詩畵)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는 매화는 그 꽃말이 ‘고결, 기품’이다.

그래서일까? 퇴계(退溪) 선생도 매화를 끔찍이 사랑했다고 한다. 선생은 48세에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그곳에서 18세의 관기 두향(杜香)을 만난다. 두향은 시화뿐만 아니라 가야금에도 능하였다. 퇴계는 이런 두향을 귀여워하였는데 1년이 채 못 되어 풍기군수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단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두향은 떠나는 퇴계 선생에게 수석 2점과 매화 화분을 정표로 드렸단다. 이후 선생은 두향이 준 매화를 그녀를 보듯 사랑하고 가꾸며 매화를 시제로 하여 많은 시를 남기면서, 매화를 절군(節君)이나 매군(梅君) 또는 매형(梅兄)이라 불러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였다고 한다. 이를 한낱 호사가들의 지어낸 얘기라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마는, 퇴계 선생이 매화를 두고 읊은 시가 100여 수에 달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선생은 매화가 피기 전 섣달 초순에 눈을 감으며 “매화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도 한다.

매화의 열매 매실은 그 맛이 달면서도 시다. ‘梅’의 고자(古字)가 ‘某’인 것은 바로 매화의 그 단맛을 나타내주기 위한 글자인 까닭이다. 곧 ‘甘木’의 합성자였던 것이다. 이 매실이 최근 인기 절정에 이르게 된 것은 1999-2000년에 방영되었던 MBC 드라마 “허준”의 덕이다. 거기서 매실의 효능을 과장한 것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매실의 효능을 과신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나도 해마다 매실 10kg 정도를 사다가 매실주와 매실즙을 담갔는데, 매실주를 담글 때 주의할 점은 술을 담근 지 3개월쯤 되면 반드시 매실을 건져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실의 독성이 우러나와서 좋지 못하다. 아예 술을 담글 때부터 감초를 넣어 담글 일이다. 감초는 맛을 달게 할 뿐만 아니라 독성을 제거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약재는 나뭇가지나 나무뿌리들, 그리고 열매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는 어느 정도 독성이 있기에 ‘약방의 감초’가 필요한 것이다.

여자가 화장할 때에 입술이나 뺨에 찍는 ‘연지(臙脂)’의 유래에도 매화꽃잎이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송나라 무제(武帝)의 수양공주가 신년점(新年占)을 치는 정월 7일에 함장전(含章殿) 다락에 기대어 졸고 있는데 어디선가 매화꽃 한 잎이 날아와 공주의 이마에 들러붙는지라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꽃잎이 붙은 얼굴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궁녀들이 이를 흉내 내어 이마에 붙이고 다녔던 것이 연지의 뿌리라고 한다.(『이규태 코너』 pp.200-201.) 당나라 때 사용된 화장의 명칭에 ‘낙매장(落梅粧)’이라는 말이 있는 것도 이러한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전래된 화투(花鬪)의 2월 매화 열 끗짜리 그림에는 매조(梅鳥)가 나온다. 이를 꾀꼬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름철새인 꾀꼬리는 음력 2월엔 보기가 어렵다. 이 새는 휘파람새다. 관련 전설을 보자.

고려 시절 예쁜 그릇을 만드는 도공이 있었는데 결혼을 사흘 앞두고 약혼녀가 죽었다. 실의에 빠진 도공은 그릇도 만들지 않고 지내다가 하루는 약혼녀의 무덤을 찾아가 보았다. 거기에는 매화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도공은 그 매화나무를 캐어다 뜰에 옮겨 심고 애지중지 정성을 다하였다.

어느 날 그 집에 인기척이 없어 동네 사람들이 찾아가 보니, 도공은 죽고 그 옆에 예쁜 그릇이 하나 있어 열어보았더니 그 속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 나와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슬피 울더라는 것이다. 이 새가 바로 휘파람새라는 것이다. (14.4.28.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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