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우연과 우연이 서로 만나다

거북이3 2015. 1. 2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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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과 우연이 서로 만나다

                                                                                                                                            이 웅 재

  2015년 1월 24일, 토요일이었다. 일기를 쓰는 것이냐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일주일 중에서 가장 느긋한 날이 바로 이 토요일이 아닌가? 그 느긋한 얘기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토요일에도 휴무인 직장들이 많아져서 금요일이 제일 느긋한 날이라고 바락바락 우겨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억지주장이라고 하겠다. 왜? 금요일 근무는 오전만 하는 느긋함이 전혀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토요일’을 ‘반공일’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그 ‘느긋한’ 심정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하루 일과의 시작?’ 그건 ‘신문 읽기’였다. ‘土日섹션’부터 손에 잡혔다. 이것저것 훑어보다 보니 눈에 번쩍 띄는 기사가 있었다. B5면의 ‘동양에서 온 귀한 술…복분자酒에 반한 나이지리아’였다. 엊저녁에도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직접 담근 술 복분자주를 마셨던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 서부의 나이지리아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술을 선호한다니? 갑자기 나이지리아가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더 가까운 곳에 있는 나라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실제적인 거리가 무슨 대수랴? 상당히 가깝게 느끼고 있는 중국은 우리에게 한동안 먼 나라였다. ‘위안부’는 애초부터 없었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일본은 가까운 나라인 줄 잘못 알았던 나라이다.

  복분자주는 “2008년 첫 나이지리아 수출 이후 ‘자양강장에 효과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약 9달러의 비싼 가격에도 인기가 꺾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국 라즈베리(복분자)의 효험’이라는 제목의 설명서를 보면 “성(性)적인 능력을 향상시켜 줍니다. 발기불능 치료에 효과가 있습니다. 전립선 비대증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효능이 있습니다.”라고 되어 있단다.

  “술 마시고 안주 안 먹으면 3대가 망한다는데….”

  나는 나름대로 명언을 하나 만들어 내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아래쪽으로 눈을 돌리니, 어렵쇼? 거기에 안주감이 있었다. 달팽이 박사 권오길 교수가 쓴 ‘넙치’에 대한 기사였다. 한쪽으로 쏠린 넙치 눈은 ‘바다 밑에 납작 엎드려 살기 위한 환골탈태’라는 것이다. 류시화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외눈박이 물고기가 실은 비목어(比目魚)로서 머리 한쪽으로 두 눈이 몰려 있는 광어(廣魚: 넙치)나 도다리를 가리키는 말이요, 광어는 왼쪽에, 도다리는 오른쪽에 눈이 붙어 있어서 ‘좌광우도’라고 하여 구별한단다. 몸이 넓적하게 생겨서 ‘넙치’라지만 한자에 ‘넙치 평(鮃)’자가 따로 있는데, ‘평어(鮃魚)’라는 말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오지 않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놈들은 15㎜쯤 자라면 바다 밑바닥에 엎드려서 생활하는 저서생활(底棲生活)을 하게 되어서 부레가 없어지고, 몸이 납작해지면서 옆으로 드러누워 지내게 되기 때문에 눈도 한쪽으로 쏠린다는 것이다. 당나라 노조린(盧照鄰)의 시에 등장하는 전설의 물고기인 외눈이 ‘비목어(比目魚)’는 자신처럼 애꾸눈인 짝꿍을 만나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는데, 아, 그러고 보니 사랑은 바다의 비목어와 하늘의 비익조(比翼鳥), 땅의 연리지(連理枝)처럼 하여야 되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넙치 가두리양식 기술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우리나라가 넙치 세계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단다. 비린내가 덜한 광어는 보들보들하고 쫄깃한 몸살도 그렇지만, 기름기 밴 쫀득한 뱃살과 지느러미 살이 고소한 것이 진미라고 하니, 광어회에 소주 한 잔이 저절로 생각이 난다. 회를 뜨고 남은 뼈·머리·껍데기를 푹 끓인 서덜탕(매운탕)도 일미라는 말에 목젖 근처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서덜탕’이란 말을 보니 얼큰하고 뜨끈뜨끈한 매운탕 생각도 절로 난다. 음식점에서는 어디를 가나 ‘서더리탕’이었다. 표준어는 ‘서덜탕’인데…. 하기야 그런 게 어디 ‘서덜탕’뿐이랴? ‘아구찜’도 기실 표준어는 ‘아귀찜’이 아니던가? ‘생선의 살을 발라내고 난 나머지 부분. 뼈, 대가리, 껍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 ‘서덜’이다. ‘서덜’이란 말은 ‘냇가나 강가 따위의 돌이 많은 곳’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쉽게 연상되는 것이 ‘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을 가리키는 ‘너덜(너덜겅)’이다. ‘너덜’은 여기서 더 의미 확장이 되질 않아서 생각은 넙치가 ‘비목(比目)’이 된 까닭으로 되돌아간다. 그것은 바로 ‘생존을 위한 적응’이라고 했다. 여기서 1월 22일 자 조선일보 A18면의 대통령 유고를 대비하는 ‘지정 생존자’라는 기사 말이 문득 생각난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을 하던 날, 회의장에는 교통부 장관이 없었다. 그는 ‘지정 생존자(designated survivor)’로 지명받았던 것이다. 혹시 유고(有故)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란다. 지정 생존자로 지명을 받은 사람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그 더러운 기분, 혼자서라도 실컷 취해 버리고 싶지는 않을까?

  술에 취했을 때 택시를 타려면 ‘아빠사자를 기억하라’는 엄미선 인턴기자가 쓴 기사도 B6면에 실려 있었다. 차 번호판에 쓰이는 유일한 한글 중 ‘아‧바‧사‧자’ 네 글자만이 영업용 택시 번호판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글자가 쓰여 있다면 그것은 불법 개조나 대포 차량, 또는 불법으로 영업을 하는 차량이란다. ‘아‧바‧사‧자’는 택시와 버스에, 렌터카는 ‘하‧허‧호’, 택배용은 ‘택’자를 넣으려 했는데 받침 있는 글자는 단속 카메라에 찍히지를 않아서 ‘배’를 사용한단다.

  이렇게 우연과 우연이 만나니, 하나의 스토리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런 재미로 나는 매일같이 ‘신문 읽기’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15.1.29.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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