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주의 선물
이 웅 재
생일날이었다. 모처럼 집안이 왁자지껄했다. 맏딸 내외가 외손녀, 외손자를 데리고 왔고, 큰아들 내외와 작은아들 내외에다가 우리 부부, 합하여 모두 10명이 생일날이라고 모여서는 서현동에 있는 뷔페식당엘 가서 점심을 먹은 후, 집으로 와서 케이크 커팅을 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생일 축하합니다!”
아직은 친손자 친손녀가 없다 보니까 외손자 외손녀의 앳된 목소리가 가슴 가득 포근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다음은 서영이, 종한이의 선물 배급 순서입니다!”
딸내미가 사회자의 목소리로 알렸다. 이어서 외손녀와 외손자가 말한다.
“가위 가위 보로 선물 받는 순서를 정할 거예요.”
하더니, 둘이 함께 외친다.
“가위 가위 보!”
8명이 가위 바위 보를 했다. 그런데 외손녀 서영이의 단호한 목소리가 거실을 흔들었다.
“가위 가위 보라고 했잖아요? 바위를 낸 사람은 맨 꼴찌쪽이에요.”
그런 것도 있었나? 말인즉슨 옳다. 분명히 ‘가위 가위 보’라고 했다. 처음 들을 때에는 아마도 잘못 말한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란다. 결국은 가위와 보의 대결이었으니, 우승 그룹은 가위를 낸 사람들, 공교롭게도 나와 아내였다. 다음 준우승 그룹이 보를 낸 사람들, 그리고 바위를 낸 사람들이 꼴찌 그룹이 되었다. 다음은 그룹끼리의 대결이었다.
이번엔 외손자 종한이가 구령을 붙였다.
“가위 바위 보!”
구령이 변했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다. 공교롭게도 생일을 맞은 내가 1등을 했다. 선물들이 내 앞에 진열되었다. 모두가 손수 만든 조그마한 종이 박스에 들어 있었다.
“이게 1등 한 사람 선물이에요!”
외손녀가 그 중 하나를 내게 건넸다. 나는 그것을 받아 펴 보았다. 박스 속에는 박스가 또 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박스 속의 박스, 드디어 내 생일 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선물은 나를 갑자기 부동산 재벌로 만들어 주었다. 금수강산 3천리가 모두 내 것이 된 것이다. 선물은 바로 지도, ‘대한민국의 지도’였다. 총천연색으로 된 사방 5cm 정도 되는 귀엽고 앙증스런 대한민국 지도였다. 내 생애 이렇게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아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선물을 줄 생각을 했을까? 고맙기 그지없었다.
다음은 아내에게 선물이 주어졌다. 아내에게는 ‘금일봉’이라고 쓰인 종이 박스였다. 아내가 박스를 뜯었다. 역시 속에 다시 작은 박스가 들어 있었다. 또 풀었다. 또 박스가 들어 있었다. 그렇게 다섯 번째인가를 풀었더니, 드디어 세종대왕이 나왔다. 1993년도 발행의 백 원짜리 동전이었다. 그 해에 제 엄마가 대학을 졸업했다고 설명까지 덧붙였다. 한 마디로 상당히 신경을 써서 선물들을 만들었다고 보여서 정말로 고마웠다.
다음은 3, 4등 차례였다. 3등은 큰아들, 그러니까 큰외삼촌이었고 4등은 작은외삼촌이었다. 3등에게 주어진 선물은 ‘별표’였다. 말하자면 오늘의 스타라는 뜻인 듯했다. 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 많은 별들을 ‘요것은 내 별, 조것은 네 별’ 하고 이름을 붙여 보지만 실제로 소유하지는 못하지 않았던가? 인터넷을 할 때, 즐겨찾기도 별표로 표시되어 있는 것, 즐겨 찾는 대상이 바로 스타인 것이다. 재미있는 수수께끼도 있다. ‘10사람이 한 줄에 4명씩 5줄을 설 수 있는 방법은?’ 그게 바로 별 모양으로 서는 것이다.
4등은 ‘하트 표’였다. 사과를 반으로 쪼갠 모습의 하트 모양은 잘 익은 사과의 빛깔인 붉은 빛을 띤다. 이브가 아담에게 주었다는 선악과, 흔히들 그것을 사과라고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래서 사랑의 표시로 인식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장의 모양도 그와 비슷해서 정열을 상징하기도 하는 하트를 받은 작은외삼촌도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5, 6등은 딸내미와 사위였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되겠는데, 그들에게는 장난감 팔찌와 반지였다. 팔찌는 8자 모양이 연이어진 모양의 것이었는데, 8자 모양은 무한함을 나타내는 표지(∞)가 아니던가? 무한하게 자신들을 사랑해주고 돈도 무한하게 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까? 반지의 의미도 비슷하다. 반지는 그 생김새가 원형이므로 처음과 끝이 없이 무궁함, 영원함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사람에 따라서는 손가락별로 반지의 의미를 구별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너무 인위적인 해석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
7, 8등은 처음에 바위를 냈던 꼴지 그룹으로 외숙모 2명이 여기에 해당되어서 ‘꽝’이었다. 말하자면 선물이 없었다는 말이다. 아무리 장난삼아 하는 내기였기는 하지만, 아무런 선물도 못 받는 것이 안쓰러워서 아내가 대신 자그마한 선물을 주었다. 바로 골무와 바늘꽂이였는데, 며느리들은 그것이 다른 선물들보다 훨씬 더 좋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렇게 케이크 커팅을 끝내고 케이크를 사람별로 나누어서 접시에 담아 나누어 주었는데, 선물을 주도했던 서영이, 종한이가 살판이 났다. 그래서 내가 한 마디 했다.
“얘들아, 너희는 아까 식당에서 점심 먹을 때, 저녁까지 다 먹었잖아?”
그랬더니 외손자 녀석, 금세 얼굴이 시뻘게지며 씩씩거리더니 곧바로 대답할 말이 생각났는지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이건, 간식인데요.”
그래, 그래, 간식도 많이 먹고 쑥쑥 탈 없이 빨리빨리 자라다오. 나는 대한민국을 몽땅 선물로 준 외손자, 외손녀가 대견스러워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15.3.8.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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