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늦잠꾸러기이다
이 웅 재
나는 잠꾸러기이다. 잠꾸러기란 시도 때도 없이 쉽게 잠 속으로 빠져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겠는데, 나는 절대 그런 무지막지한 잠꾸러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잠꾸러기라면 부러워지는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나 잠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그런 무신경한 사람이라면, 세상만사 무사태평인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런 사람이라면 더러운 세상살이에서도 티끌만한 근심걱정이 없는 사람일 것이니, 그보다 더 편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매사에 아옹다옹, 티격태격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보다 더 부러울 일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 것인가? 내가 그런 잠꾸러기라면 얼마나 좋을 것이랴!
나는 그렇게 내가 꿈꾸는 잠꾸러기는 못 된다. 나는 늦잠꾸러기이다. 아침 8시나 9시가 되어야지만 잠자리를 빠져나오는 늦잠꾸러기라는 말이다. 어쩌다 무슨 모임에서 1박 2일 여행이라도 가게 되어서 6시쯤 일어나야 하는 일이 있는 날이면, 그날은 하루 종일 온몸이 찌뿌드드한 게 영 ‘아니올시다!’로 일관된다.
늦잠자기의 꿀맛은 늦잠꾸러기가 아니면 알 수가 없는 소중한 맛이다. 잠을 깨우는 엄마에게 “5분만 더!”를 잠꼬대처럼 반복하는 아이들을 보시라. 그들은 그 “5분만 더!”가 세상에서 제일 간절한 소망이다. 그 단순한 소망마저 들어주는 데에 인색한 엄마는 더 이상 ‘자친(慈親)’이 되기를 포기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런 엄마들은 말한다. “아침형 인간이라야 성공을 한단다.”
처칠이 정계에 입문하여 처음으로 하원의원에 출마했을 때란다. 경쟁자가 공격하였다. “처칠은 늦잠꾸러기랍니다. 그처럼 게으른 사람을 의회로 보낸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 말을 들은 처칠은 웃으면서 말했다. “여러분도 나처럼 예쁜 마누라와 산다면 아침에 결코 일찍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처칠은 유권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그는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하지만 이 말은 누군가가 처칠의 유머 감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지어낸 말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처칠은 하루 4시간 정도밖에는 자지를 않았다고 한다.
늦잠꾸러기는 처칠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이나 데카르트였다. 아인슈타인은 매일 11시간씩 잤던 늦잠꾸러기였다고 하고, 데카르트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까닭에 오전 11시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런 명상의 시간 덕분에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할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데카르트는 늦잠꾸러기 최대의 특권이랄 수가 있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을 마음껏 누렸던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고, 따라서 그는 아침잠에서 깨어나서도 느긋하게 ‘뜸’을 들이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으니, 나 같은 사람은 한마디로 부럽기가 그지없다. 쌀이 다 익었다고 맛있는 밥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아낙네들뿐만 아니라 우리 남정네들도 잘 알고 있는 일이 아니던가? 밥도 잠도 ‘뜸’이 들어야만 제 맛이 나는 것이다.
늦잠꾸러기들은 대개 야식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나같이 독작(獨酌)을 즐긴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비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가난했던 시절, 뚱보는 ‘사장님’으로 통했고, 1960~1970년대에는 남양유업에서 주최하는 ‘우량아 선발대회’까지도 있어서 살 찐 사람이 대우를 받았는데, 먹고 살만 하니까 많이 먹는 것은 ‘무식’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죄악’이라고까지들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늦잠꾸러기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아침 식사를 거르기가 일쑤이다. 그것은 ‘무식’한 뚱보로부터 빠져 나오는 방법이요, 손가락질 받는 ‘죄악’에서의 탈출 전략인 것이다. ‘부스스’ 뜸을 들이고 기상을 할라치면, 아침 식사 시간은 이미 지나고 말아서, 뱃속은 헛헛하고 따라서 생리적인 욕구로서는 무엇이든 먹어야만 하겠는데, ‘무식’과 ‘죄악’의 나락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그 욕구를 최대한으로 자제해야 하는 처지, 궁여지책으로 선택하는 방법이 토마토나 사과, 아니면 달걀프라이 하나 정도로 만족해야 할 수밖에는 없는 실정이다.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 얼굴이 파랗게 된다.”는 유럽 속담이 있다고 한다. 토마토를 먹으면 의사가 필요치 않을 정도라는 뜻이란다. 사과는 어떤가? 비타민C가 풍부한 과일로, 천연 항산화 성분이 있어서 면역성을 키워주기도 한다니 얼마나 반가운가? 달걀프라이는? 기실 나는 달걀을 ‘무척’ 그리고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다. 고놈은 부화가 되면 한 마리의 닭이 되지를 않는가? 그러니까 하나의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영양소는 모두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달걀이 아닐까보냐?
우선 달걀은 두뇌 발달을 촉진시켜 주고, 눈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며, 면역력을 향상시켜 주는데다가, 단백질 부족을 해결해 주어서 노인 건강에도 ‘딱’이라지 않던가? 자체적으로 포만감을 불러일으켜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하며, 무엇보다도 치매 예방에 아주 좋다고 하니, 그 이상 더 좋을 수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뿐인가? 한때는 날달걀이 목청을 좋아지게 한다고 해서 음악 시험이라도 보는 날에는 달걀 품귀 현상까지 생겼었으며, 아침나절 다방에서는 달걀노른자를 둥둥 띄운 모닝커피를 마셔야만 ‘레지’들에게서 대접받던 시절도 잊히지가 않는다.
한 가지 덧붙여 보자. 지난 번 유럽 여행 때에는 수상(水上) 도시인 베네치아에서 그 유명한 카사노바가 앉아 커피를 마시던 자리에도 앉아 보았었는데, 바로 그 카사노바가 즐겨 먹던 세 가지 음식 중에는 바로 계란 흰자가 들어 있었다지를 않던가?
늦잠꾸러기의 변(辯), 아니, 아침잠이 덜 깨어서 생긴 착각으로 치부하자. (15.7.26.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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