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의 여행은 왜 이리 더디기만 한 걸까요?
(서유럽 문화 체험기 4)
런던시장은 2명이다
이 웅 재
차는 계속 달리고 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풍경은 우리나라의 여의도쯤 되는 곳이라는데 그 중심에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이 있다고 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런던은 그레이터 런던(Greater London)이고, 시티 오브 런던은 뱅크 역(Bank Station)을 중심으로 사방 1마일 가량 되는 조그만 동(洞) 정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곳으로, 18세기 이래 영국은 물론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군림하고 있는, 영국이라는 국가보다도 오래된 도시란다. 이곳은 독립적인 사법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어서 로마의 바티칸 공화국과 비슷한 ‘도시 속의 독립된 국가’로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는 지역이다. 역 이름부터가 ‘뱅크 역’이라고 불리듯 250여 개의 외국계 은행의 본사들이 위치해 있어 영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어 때로는 조세회피처로서도 알려진 곳이다. 줄여서 그냥 시티(the City)라고도 부르는데 이때의 ‘C’는 대문자를 써야 한다. 주민은 8000여 명에 불과하지만, 하루 평균 40여만 명의 유동인구가 북적거린다고 한다. 참고로 미국, 일본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을 ‘Subway’라고 표현하지만, 영국에서는 ‘Underground’라고 부르거나 굴착 터널의 모양에서 이름을 딴 ‘Tube’라고 부른다. 영국에서의 ‘Subway’는 ‘지하도’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궁금증이 인다. 런던 시가 2개라면 시장은 몇 명일까? 상식적으로는 2명일 수밖에 없겠는데, 과연 그렇단다. 시티오브 런던에도 따로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월급이 없는 명예직으로 임기는 1년이라고 했다. 그런데 판공비는 적지 않아 40억 달러나 되지만, 그까짓 것(?) 가지고는 택도 없다고 하니 놀랍다. 호칭에서부터 경(卿)이라는 뜻의 ‘로드(Lord)’를 붙여서 ‘로드 메이어(Lord Mayor)’라 부르며, 영국 내에서 여왕 다음으로 의전 서열이 높다고 한다. 여왕조차도 그의 초대를 받아야만 시티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이니, 매력 있는 시장이라는 생각이었다. 외국 국빈이 올 때 행하는 식사 대접에는 몇천 명이나 되는 참석자가 몰리기도 한다는데, 그런 만찬에 한 번쯤 초대받아 보면 얼마나 황홀할까 하는 쓰잘데기(표준어로는 ‘쓰잘머리’라고 하던가?) 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시 오른쪽으로 군함이 보인다. 6‧25때 참전했다는 군함이란다. 반갑다. 그리고 감회가 새롭다. 아니, 혼란스럽다. 나는 6‧25 발발 당시 북한에서 살았다. 그래서 늘 “김구 이승만 타도하자!”를 외치고,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을 노래하며 지냈다. 한마디로 영‧미는 ‘원쑤’였다. 그런데 월남을 하고 보니 영‧미는 ‘우방국’이었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가 된 것이다. 혼란스러웠던 가치관을 겪으며 그래도 오랜 세월을 잘도 버텨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는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영국의 날씨에 대해서였다. 여름에는 4:30쯤 해가 떠서 밤 11:00 정도까지 버틴단다. 한여름이라고 해도 35℃까지 오르는 날은 많지가 않다고 했다. 아침 나절에는 8~15℃ 정도가 되어 오싹오싹 한기를 느끼기 십상, 한낮에도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5분을 지탱하기가 힘들 정도란다. 그래서 겉옷을 입고 나왔다가 더울 때에는 어깨에 걸치거나 허리에 묶고 지낸다는데, 그런 관습이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이지 않은가? 겨울에는 3:00쯤만 되어도 깜깜해진다고 하니, 쉽게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하면서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우산 없이 비가 와도 뛸 줄을 모른다던 ‘영국 신사’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요즈음의 젠틀맨은 양복의 팔꿈치에 가죽을 댄 옷을 입는다는데, 그것도 이미 우리나라에서 한물 간 유행이 아니던가? ‘버러리’ 하면 ‘영국’을 떠올리지만, 지금은 역시 지나간 얘기, 세계인에게 알맞게 변화되어 버린 ‘버버리’는 더 이상 영국 신사와는 무관한 일로, 가격만 엉뚱하게 치솟아버리고 만 일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목적지인 타워 브리지(Tower Bridge)에 도착했다. 런던 시내를 흐르는 템스 강 위에 도개교(跳開橋)와 현수교(懸垂橋)를 결합하여 지은 다리다. 템스 강을 통과하는 배의 통행을 위해 열렸다 닫혔다 하는 다리이다. 한국의 영도대교와는 달리 다리가 들어 올려지는 시간은 비정기적이란다. 완공된 첫 달에만 655번이나 들어 올려졌다고 하는데, 요사이는 1년에 약 500번 정도 들어 올려진단다. 처음에는 수력을 이용해 개폐했지만 지금은 전력을 이용하고 있다. 중간에 보이는 고딕 양식의 탑은 높이가 50m쯤 된다고 한다.
타워 브리지는 런던을 둘로 갈라놓고 있었다. 북쪽은 중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반면, 남쪽은 아주 대조적인 초현대식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어찌 보면 우리나라 강북의 과거와 강남의 현대적인 모습과도 닮은 느낌이다. 남쪽 현대적인 모습을 대표하는 것은 런던시 청사이다. 흔히 유리계란(The glass egg)이라고 불리는 이 건축물은 타워 브리지에서 보면 건물 자체가 남쪽으로 10도 정도 기울어진 기발하고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시각적인 특이함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환경 건축을 추구한 결과라고 한다.
이 다리는 런던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인식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설이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그랬다. 특히 중국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최근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의 결과이리라. 그 다음이 한국인? 일본 사람들을 만나는 건 하늘의 별따기처럼 되어 버렸다. (15.12.26.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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