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문화 체험기

(서유럽 문화 체험기 17)에티켓, 향수, 하이힐, 파라솔의 유래

거북이3 2016. 2. 7. 13:45

    '체험기 16'의 'Sortie' 사진을 여기 '17'로 옮기고 '16'에는 '해바라기 꽃 가이드' 사진으로 바꿔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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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문화 체험기 17)
              에티켓, 향수, 하이힐, 파라솔의 유래
                                                                                                                                    이   웅   재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는 약 5,000여 명이 상주했단다. 각 지방의 영주들을 이 궁전으로 불러들여 살게 했다는 것이다. 영주들이 다스리던 영지들은 자연히 관리가 제대로 되질 못했고, 따라서 그들의 기반은 점차 약화되어 갈 수밖에 없었다. 바로 루이 14세의 의도였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화장실과 같은 더러운 공간은 격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이름난 오페라 하우스 등에도 화장실은 없었다. 참으려고 해서 참아질 수 없는 생리적인 욕구는 어떻게들 해결했을까?
  게란트(Guerrand)가 쓴 『화장실문화사』를 보면, 루이 14세는 의자형 변기(chaise percee), 귀족들은 휴대용 변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휴대용 변기를 준비하지 못했던 사람은 정원으로 숨어 들어가 용변을 볼 수밖에 없었고, 휴대용 변기의 오물들도 하인들에 의해 으슥한 정원 구석에 버려지다 보니 정원은 오물로 뒤덮이게 되었단다. 그래서 정원 관리인이 출입을 금지하는 주의사항들을 적은 ‘에티켓’이란 팻말을 곳곳에 세웠는데, 이것이 ‘에티켓’이라는 말이 생겨난 유래란다. 지금도 그 넓은 궁전과 정원에는 단 4개의 유료 화장실밖에 없어서 급한 사람들은 ‘출구’를 찾아 나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출구를 뜻하는 ‘Sortie’라는 말이 ‘화장실’을 의미하는 말로 오해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호화롭기 그지없는 궁전은 악취로 골머리가 아팠다. 조금이라도 그 악취를 줄여보려고 정원에는 오렌지 나무를 많이 심기도 하였으나 역부족, 그래서 ‘향수’가 생겨나게 되었단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널려 있는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하여 ‘하이힐’이 유행되었다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집집마다 하루 일과를 시작할 때면, 밤새 용기에 받아두었던 오물을 창밖으로 내던졌는데, 그 오물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하여 파라솔이 생겨났다는 말에 이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루브르 궁전에서 베르사이유로 궁전을 옮긴 이유도 오물 때문에 더 이상 루브르에 머물 수가 없어서라는 황당한 추리까지도 덧붙여지면 이제 벌렸던 입은 다물어지지도 않는다.
  가이드가 복사하여 나눠준 1장짜리 유인물에는 베르사이유 궁전의 안내도가 있었다. 안내도에는 오른쪽 앞에서부터 1번 왕실성당(101), 5번 비너스의 방(204) 등으로 이어져 나갔는데, 방은 모두 19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수신기 사용법’에서는 각 방에 해당하는 번호를 누르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주어진 시간도 충분하지 못하여 앞 사람을 따라가기에 바쁜 판국에 언제 그걸 확인해 가며 들을 수가 있을 것인가? 나는 앞 꼭지에서 말한 바처럼 ‘어휴, 어휴!’를 연발하며 따라만 가고 있었다.
  대충 몇 개의 방만 일별해 본다.
  첫 번째 ‘왕실성당’, 이곳에서는 왕자들의 세례식 등이 거행되었다. 10번째 ‘전쟁의 방’에는 양각되어 있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위엄 있는 모습이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는 11번째 ‘거울의 방’이다. 17개의 벽면에 578개의 거울과 화려한 모습의 샹들리에가 달려 있는 방이었다. 유리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이 거울에 반사되어 천장의 벽화들에 부딪쳤다가 다시 샹들리에로 모여 반사되면 더할 수 없는 황홀한 분위기가 방 전체를 휩싸버리는 매우 화려한 방이다. 거울은 그 당시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거울은 매우 귀하고도 사치스러운 물건이었다.
  이 방은 프랑스를 방문하는 외국 사신이나 귀빈들의 접견실로도 사용되었는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10개의 방을 거쳐 오면서 궁전의 화려함에 놀라 주눅이 들었던 사람들을, 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그런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방이기도 하다. 이제 그들은 감히 이 궁전 주인의 권위에 도전해볼 생각조차 할 수가 없게 된다. 이 방에서는 많은 왕실의 행사가 치러지기도 하였다. 1차 세계대전을 형식적으로 마무리되었던 베르사유 조약도 여기에서 조인되었다. 지금도 이 방에서 중요한 국제회의가 열리곤 한다.
  이 방은 또한 10번째의 ‘전쟁의 방’과 12번째의 ‘평화의 방’을 연결시켜주는 통로이기도 하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가 호화롭기 그지없는 결혼식을 올린 곳이요, 대연회와 무도회장으로 사용되었던 방이다. 창문을 통해서는 아기자기한 정원이 내다보이는가 하면, 무엇보다도 이 방의 중간에서 왼쪽에는 왕의 침실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는 점이 이 방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그 왼쪽이 평화의 방이다. ‘거울의 방’을 중심으로 ‘전쟁의 방’과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이 방에서 ‘왕비의 침실’로 연결이 된다. ‘왕비의 침실’은 마리 앙트와네트가 사용했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침대 옆 벽면에는 ‘소의 눈’이라는 비밀 문이 있다. 이 문을 통하여 왕의 침실로 연결이 된다.
  다시 몇 개의 방을 지나면 근위병실이 나온다. 벽난로 오른쪽에는 왕비의 침실, 세자, 세자비의 방으로 연결되는 ‘왕비의 계단’이 있다.
  다음 방이 ‘나폴레옹기념관’이다. 이 방에는 루브르에 있는 것을 복사해서 그린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 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왼쪽 네 명의 여인 중 나폴레옹의 두 번째 여동생인 두 번째 여인의 옷 색깔이 원본과는 다르게 분홍색으로 그려져 있는 점이다. 공주를 향한 화가의 감정이 은근하게 표현한 것이란다. 나폴레옹이 전쟁에 패하여 유배당해 있을 때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16.2.7.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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