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문화 체험기 39․끝)
‘어떤 반찬을 먹을 것인가’ 하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 웅 재
4월 28일(화) 약한 비.
이제 독일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로 간다. 라인 강의 지류인 네카어(Neckar) 강변에 있는 대학도시요 관광도시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있는 곳이다.
독일은 한국인에게 특별한 정을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나라다. 아마도 다음의 서너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통일이 되었지만, 한때는 같은 분단국으로서의 동병상련지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그 첫째이다.
다음은 오늘의 한국을 있도록 만들어준 은인의 나라로 여긴다는 점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우리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피눈물 나는 삶의 애환을 실감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조국근대화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패전 후의 독일을 일으켜 세운 ‘라인 강의 기적’을 우리는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받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독일은, 작년에도 메르켈 총리가 “나치 만행을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며 머리를 숙여 46번째의 사죄를 함으로써, 반성은커녕 역사 지우기에 나서는 일본 아베 정권과 대조가 되기 때문에 더욱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러한 반성의 연장선상이라고도 여겨지는 난민 수용도 우리들에게는 상당한 호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군사 분쟁 및 내전, 종교 박해 등으로 인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특히 최근에는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의 각국으로 유입되는데, 대부분의 나라들은 난민 유입을 꺼리는 편이었지만 독일은 그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독일 국민들이다. 그들은 난민이 도착하는 기차역까지 나와 꽃과 초콜릿 등을 건네며 환영했다. 가수나 배우 등 인기스타들이나 기업들까지도 난민 지원을 위한 자선 공연이나 이벤트를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독일에는 이웃 프랑스와 대비하여 보았을 때, 아랍계나 터키계의 이민족들이 많다. 이민자 인구를 보면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다. 이런 것이 바로 독일을 독일답게 만드는 힘이다.
뿐만 아니라 독일인들은 지극히 자연을 사랑하는 민족이기도 하다. 산지가 거의 없는 프랑스와는 달리 국토의 30% 정도가 산지라서 비교적 나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발칸(산맥)에서 원목을 수입하여 사용할 정도로 녹화에 애를 쓴다는 점도 독일에 대한 ‘좋아요’라는 평점을 매길 요인이 아닐까 싶다.
하이델베르크는 근처에서 많이 생산되는 블루베리의 일종인 ‘하이델베렌(heidelbeeren)’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說)을 생각하면, 이곳 사람들은 시력이 매우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이곳 사람들은 미적인 감각도 뛰어나서 모든 집들이 아주 예쁜 모습이었다.
우리는 먼저 카를 데오드르(Karl Theodor) 다리로 갔다. 이 다리는 원래 목조였는데, 홍수와 화재로 자주 유실되자 새로 건축한 것이란다. 아치 모양의 다리 끝 부분에는 뾰족한 모양의 탑이 서 있고 다리의 입구에는 원숭이 상과 데오도르의 입상이 있다. 수표(水標)도 보인다. 네카어 강에 놓인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한다. 사람들은 원숭이 상의 얼굴 빈 곳에 머리를 디밀고 사진들을 찍는다. 여기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모두 원숭이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혼자 빠지면 뭔가 밑지는 것 같아서 나도 원숭이가 되기로 하고 한 장을 찍었다. 원래 인간은 원숭이에서부터 진화한 것이라고도 하니 본래의 나로 되돌아간 듯한 야릇한 감정이 들었다.
이 다리를 건너 북쪽 언덕의 중턱쯤에는 철학자의 길이라고 하는, 계단이 많은 산책길이 있단다. 헤겔, 야스퍼스, 괴테 등 많은 철학자와 문학가들이 사색과 작품 구상을 하며 자주 찾던 길이다. 이 길과 데오도르 다리에서 바라보는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의 전망이 아주 좋다지만, 시간이 없어서 철학자의 길은 걸어보질 못했다. 나는 역시 철학자가 될 인물은 못 되는가 보았다. 밥을 먹다가도 이 반찬을 먹을 것인가 저 반찬을 먹어야 하나 하는 쓸데없는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다음은 20유로의 선택 관광이었다. 하이델베르크 고성(古城) 투어였는데 말이 선택 관광이지, 거기에 따라 나서지 않는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겨자라도 먹고서 울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심정으로 따라 나섰는데, 그러길 천만 다행이었다.
성은 시내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걸어서도 갈 수 있지만 우리는 등산열차(Funicula)를 타고 터널을 통과하여 올라갔다. 축조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높은 산허리에 있었는데 점차 확장되었다고 한다. 허물어진 성채의 한 쪽에는 쌍둥이 천사상이 있었다. 성을 설계한 건축가의 쌍둥이 아들이 공사 현장에서 죽었는데 꿈에 천사가 되어 나타났다고 하여, 이를 기리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부조라고 한다.
성의 프리드리히(Friedrich) 관 지하에 있는 와인 창고에는 와인 22만 ℓ를 저장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 통이 있었다. 성 자체가 고지대에 있었으므로 전쟁 때 식수가 부족할 것을 대비하여 와인을 채워놓았던 것이란다. 고지대의 성곽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식수다. 고구려의 성곽을 보면 반드시 우물을 발견할 수 있는 곳에 성을 쌓았다. 졸본산성(卒本山城)의 경우, 해발 820m에 축조된 성인데도 180여 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하이델베르크 성을 관람한 이후에는 MJ백화점에도 들렀다. 그래야 여성 분들에게 ‘좋아요’를 받을 수 있으니까. 서유럽 문화 탐방기는 여기서 마감된다. 이젠 프랑크푸르트 (Frankfurt) 공항으로 가서 대한항공을 이용하여 인천공항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16.5.6. 15매 사진 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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