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빛깔(언어순화 강의)
이 웅 재
반갑습니다. 요샌 중2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들 하기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왔는데, 이렇게 환영해 주시니 그 말이 말짱 헛말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반갑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첫 얘기가 말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오늘은 말과 관련된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말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도 더러는 말을 한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소리를 가지고 기초적인 느낌을 전달할 뿐이지요. 얼핏 보면 앵무새나 구관조 같은 경우, 말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스스로의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말과는 다른 흉내 내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말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람과 말, 한자로 그 둘을 합쳐 놓으면 ‘믿을 신(信)’ 자가 된답니다. 말에서 생겨나는 게 믿음이고,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말이라는 얘기입니다.
조선 건국을 하고 서울에 도성을 쌓을 때의 얘기인데요.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은 한양성곽을 어떻게 쌓아야 할 것인가 고심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많은 눈이 내렸는데, 다른 곳은 눈이 다 녹았지만 특별히 눈이 녹지 않는 곳이 있어서 바로 이곳을 따라 성곽을 쌓고, 4대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대문을 세우면 무너지고 세우면 무너지고 했답니다.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애를 태우던 중 누군가에게서 ‘도성의 모양이 학을 닮았는데, 가운데를 꾹 눌러놓지 않고 성문부터 세우니 날개 한번 퍼덕이면 무너질 수밖에…’ 하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그 말을 따라 보신각을 세운 후 사대문을 건립하였더니 별 탈이 없었다는군요. 사대문은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홍지문(숙정문으로 대신)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으시죠? 바로 그 이름에 ‘인의예지’가 들어 있는 것도 아시지요? 그런데 그 인의예지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중앙에 ‘신’, 곧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면 인의예지가 다 쓸모없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신의, 곧 믿음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는 것 중 하나는 아마도 약속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약속을 하십니까? 약속을 하려면 먼저 ‘내일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는 식의 말을 한 다음,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으로 도장을 찍는다구요? 도장까지 찍는 건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뜻이죠? 그래요, 그것은 바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한 일이지요.
‘내일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는 친구의 말을 믿지 못한다면, 그 시간에 그 장소로 갈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니까 약속은 일단 하고 나면 꼭 지켜야 하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를 말아야지요. 거짓 약속은 안 된다는 말입니다.
거짓말,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언어순화의 제일 첫 번째 지켜야 할 일입니다. 그 외에도 상스러운말 곧 욕설, 속된 말, 지나치게 줄인 말, 문법 어법에 맞지 않는 말, 우리말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외국어로 하는 말, 남이 싫어할 수 있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제 중학교 때 경험을 하나 말씀 드릴까요? 친구 한 명이 늘 저만 만나면 ‘어이, 거북이!’ 하고 별명을 부르는 것이었어요. 매사에 느려터진 제 별명이지요. 전 그게 아주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와는 잘 어울리지를 않았지요. 결국 우리 둘은 중학교 생활 내내 다정스런 친구가 되질 못했답니다. 친구란 커다란 재산 중의 하나인데 두 사람 다 손해가 많았지요. 여러분도 별명은 물론 친구가 싫어하는 말은 될 수 있는 한 하지 말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순화의 대상이 되는 말들을 오늘은 구체적으로 나열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오히려 여러분들이 모르고 있었던 바람직하지 못한 말들을 알려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중학생입니다. 중학생은 통상 만12세에서 14세까지입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중1이 되는 만 12세부터가 사춘기라고 합니다. 사춘기의 특징 중의 몇 가지를 보면,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고 이성에 집착하고 불만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은 매사에 즉흥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사춘기에는 이성에 집착하는 일 말고도 즉흥적이면서도 불만투성이의 나이라는 말이겠지요. 나름대로는 성숙했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으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요. 그 불만, 자칫하면 터져나오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니 중학생의 중간에 해당하는 중2를 ‘가장 무서운 나이’라고 하는가 하면 ‘중2병’이라는 말까지도 생겨나지 않았습니까? 그건 사실 조금 바꾸어 생각한다면 중학생이 되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답니다. 제가 순화의 대상이 되는 말들을 일일이 말씀해 드리지 않는 것도 여러분 스스로가 판단하여 사용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생각해 보시라는 뜻입니다.
저에게 매일같이 좋은 얘기를 보내주는 “따뜻한 하루”라는 이름의 메일이 있습니다. 며칠 전, 그러니까 8월 30일자 메일 내용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독일의 역사학자였던 랑케가 산책하던 중 동네 골목에서 한 소년이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우유배달을 하는 소년이었는데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우유병을 통째로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깨진 우유를 배상해야 한다는 걱정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랑케는 울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얘야, 걱정하지 말아라. 지금은 내가 돈을 안 가져와서 줄 수 없다만 내일 이 시간에 여기 나오면 내가 대신 배상해주마.” 집으로 돌아온 랑케는 한 자선사업가가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 내용은 역사학 연구비로 거액을 후원하고 싶으니 내일 당장 만나자는 것이었습니다. 랑케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만, 순간 소년과의 약속을 떠올렸습니다. 그 자선사업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먼 길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소년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랑케는 망설임 없이 자선사업가에게 다른 중요한 약속이 있어 만날 수 없다며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랑케는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소년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랑케의 편지를 받은 자선사업가는 순간 상당히 불쾌했지만 전후 사정을 알게 된 후에는 더욱 랑케를 신뢰하게 되었고, 그에게 처음 제안했던 후원금 액수보다 몇 배나 더 많은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랑케는 얼핏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었던 소년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메일 편지에서는 랑케가 더 많은 후원금을 받았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는 앞길이 창창한 한 소년을 살려주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값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거짓말의 빛깔은 어떤 것일까요? 그래요, 여러분이 먼저 알고 있네요.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우리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왜 거짓말을 빨간 색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그것도 여러분들이 다들 알고 있네요. 그렇죠. 네거리의 신호등이 빨간 빛깔일 때는 가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빨간색은 위험의 신호이지 않습니까? 거짓말은 위험합니다. 거짓말은 하면 안 됩니다. 안창호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요.
그런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하루 평균 2만5000마디~3만 마디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그 많은 말들 중에서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여러분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바른 말 고운 말만 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겠습니다. 여러분, 믿겠습니다.
(16.9.5. 광명중학교2-3반에서 ‘언어순화’라는 주제로 발표, 45분용 2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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