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 자동센서
이 웅 재
한창 술자리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띠익-”
나는 깜짝 놀랐다. P라는 친구가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놀란 것은 나 혼자뿐이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의외라는 표정이기는 했지만, 나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그런 것으로 보아 다른 친구들은 가끔 그런 상황을 겪었던 모양이었다.
“오늘 같은 날, 무슨 ‘띡-’이야!”
친구들은 P를 힐난하고 있었다.
그날은 나를 환송하는 자리였다.
나는 여름방학이 다가올 때쯤 제대를 했다. 그러니 어디 들어갈 만한 학교가 없었다. 군대 입대 전 충무(지금은 통영)에서 1년, 부산에서 1년씩 사립 여학교 교사로 지내온 터라 천상 다시 학교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이 아니고, 2학기가 시작될 무렵에 제대를 하게 된 데다가, 이제는 지방 생활을 접고 서울에 정착을 하려고 하다 보니 마땅히 들어갈 만한 학교가 없었던 터, 할 수 할 수 없어 서울에서 출근이 가능한 가까운 지방인 안양에 직장을 잡았었는데, 그곳에서 한 학기를 지내고 새 학년도부터는 서울로 학교를 옮기기로 한 나를 송별하기 위한 자리였던 것이다.
“오늘은 그냥 즐겁게들 마시자구….”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고, P가 발성한 ‘띡-’하는 소리는, 그래서 없던 일이 되어버리고 모두들 만취한 다음에야 자리를 마쳤었다.
사나흘쯤 후였던가? 나는 재직증명서를 떼기 위하여 안양으로 갔다. 근무하던 학교엘 가 보았더니 P는 결근하고 없었다. 그래서 찜찜한 마음으로 물었다.
“P씨는 왜 안 보여?”
한 친구가 대답했다.
“결근했어.”
“결근?”
“그래, 자네 송별연이 있던 날, ‘띡-’하는 소릴 들었지?”
“그래, 들었지.”
“그게 그 친구의 자동센서였거든.”
“무슨 소리야?”
“그 소리가 나온 이후엔 그 친구, 한 잔이라도 더 마시면 반드시 사달이 난다구….”
“그럼, 쌈박질이라도 해서 경찰서 유치장에 가 있는 거야?”
“그러면 다행이게….”
“?”
“그만 엉뚱한 상점의 대형 유리를 주먹으로 쳐서 하마터면 손목이 잘릴 뻔했지. 그래서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라구…. 자동센서, P씨만 가지고 있는 특이하고도 유일한 것이지.”
그러고 보니, 내게도 비슷한 ‘자동센서’는 있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듯이 나는 매일같이 술을 마신다. 오디주, 복분자주, 오미자주 등도 빠지지 않는 메뉴의 하나지만, 주로 ‘매실주’를 담가서 머그컵으로 한 잔 정도씩을 마신다. 머그컵의 용량을 계량해 보았더니 2홉들이 소주 1병과 비슷했다. 그러다 보니 ‘알코올’ 중독에 빠지진 않을까 하는 것이 늘 걱정이었다. 요즘 뒤늦게 서예 공부를 시작한 것도 술 때문에 붓글씨의 획, 특히 세로 획이 제대로 그어질 수 있을까를 알아보기 위한 의도도 있었는데, 글쎄,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아직까지도 이렇게 별 문제가 없는 것은 그 ‘자동센서’ 덕분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 자동센서는 바로 ‘편도선염’이었다. 내 편도선염은 좀 특이한 편이다. 학교가 직장인 나는 해마다 2월 겨울방학 때쯤이면 지독한 편도선염에 걸리곤 한다. 열이 펄펄 나면서도 일주일 정도는 두꺼운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흥건하게 땀을 뻘뻘 흘리고 나서야 낫는다. 그 동안에는 토옹 입맛이 없어진다. 입맛뿐만이 아니고 술맛도 없다. 그러니 저절로 단주(斷酒)가 되는 것이다. 바로 알코올 중독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내 몸속의 자동센서가 작동을 한 셈이다.
이런 자동센서는 P라든가 나에게만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이와 유사한 자동센서를 다들 가지고 있다. 단지 그것을 자동센서라 인식하지 못했거나, 또는 알고도 활용하지 않고 있을 뿐일 따름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외부 자극에 의한 우리 몸의 반응 현상 중에는 ‘감능작용(感能作用)’이라는 것이 있다. 어제 A라는 시간에 B라는 지점을 지나가다가 화장실엘 들러 소변을 보았다고 치자. 그러면 오늘 그 시간에 그 장소를 지나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소변을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디 그런 것뿐이랴? 우리가 흔히 생체리듬이라고 말하는 식욕, 수면욕 등이 발동하는 것도 시간과 장소에 매우 민감하게 작동을 한다. 이런 것하고는 달라 보이는 성욕, 명예욕, 부귀욕 등도 사실은 제어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한 것이다. 사람에 따라 억제하거나 조정하려는 노력이 다를 뿐이다. 말하자면 그런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여 하고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몸속 자동센서를 열심히 찾아내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보고, 그런 것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여 당해게 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들을 멀리 해야할 것이다. 내 경우만 해도 술과 관련된 자동센서는 ‘편도선염’뿐만이 아니다. 술을 마시다가도 이제 좀 그만 마셔볼까 생각을 할 때에는 화장실로 가서 칫솔에 치약을 듬뿍 묻혀 좌우로 상하로, 혓바닥과 입천장까지 깨끗하게 닦고 나면 더 이상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거짓말같이 싸악 사라지곤 한다.
우리 몸속의 자동센서,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그것을 찾으려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모든 사람들의 삶은 새롭고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모되어 갈 수가 있을 것이다. “띡-” 소리까지는 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16.9.12.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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