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많이만 낳으라고…

거북이3 2016. 10. 2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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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만 낳으라고…

                                                                                                                              이 웅 재

   낳으란다. 낳기만 하란다. 취직도 힘든데 많이만 낳으란다. 청년 실업률이 12%가 넘는다고 아우성인데도 낳으라기만 한다. 청년 공시생만 22만 명이 넘는다고 혀를 끌끌 차는데도 무조건 낳으라고만 한다. 내 집 마련이 얼마나 힘든지 뻔히 알면서도 낳아야지만 된단다. 낳기만 하라는 사람들, 그들은 말한다.

   “인구가 5천만 이상이라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모두들 그 말을 금과옥조로 생각하고 믿는다. 의심 조금도 해 보지 않고 철석같이 믿는다. 과연 그럴까? 6‧25의 잿더미에서 오늘날과 같은 11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 인구 5천만 이상이라서 가능하게 되었던 일인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되던 1962년의 우리나라 인구는 2,650만 명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나라는 2,650만 명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나라는 인구 억제 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둘만 낳자’,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고 하더니 드디어 젊은 남성들에게는 ‘정관수술’을 권장하기에 이르렀고, 자식을 많이 낳는 사람은 개나 돼지처럼 본능밖에 모르는 짐승 취급받기가 일쑤였지 않았던가?

아파트가 한창 선호되던 그 시절, 입주 신청에 불임 수술자를 우대하였는가 하면 ‘산아제한’이라는 영화까지 나왔다. 고속 성장을 이루었던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인구는 3,200만 명 정도였다. 인구 억제 정책 속에서도 인구는 계속 불어나서 1983년에는 4천만 명을 넘어서더니, 1988년에는 산아제한 정책마저 중단되고, 2010년에는 드디어 5천만 명을 넘어섰다.

   ‘인구가 5천만 이상이라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에 따르면, 5천만 명을 넘어선 2010년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눈부시게 발전했어야 할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지 않은가? 2010년을 코앞에 둔 1997년에는 이른바 IMF 사태라 부르는 외환위기까지 초래하여 우리의 경제는 완전히 비틀걸음으로 바뀌지 않았는가?

   미국의 서부 개발 시대, 애리조나 주의 고원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사슴의 수를 늘리기 위해 1907년부터 사람들은 정책적으로 늑대를 쏘아 죽이기 시작했다. 늑대의 수가 줄어들자 사슴의 수가 많아지기는 했는데, 그냥 많아진 정도가 아니라 너무 많아져서 탈이었다. 먹어야 할 풀이 부족해진 것이다. 그 결과 1918년부터 고원은 황폐해지면서 1924년에서 이듬해 봄까지 절반 이상의 사슴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인위적인 동물의 개체수를 조정하기 위한 계획이란 이처럼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동물과 인간은 다를 수가 있다. 하지만 인구 문제란 늘리고 싶다고 해서 정책 하나로 늘어나고, 줄이고 싶다고 해서 목표 하나로 줄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인구가 많아진다고 그에 따라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도 지나친 환상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인구가 줄어들 경우에 기존의 사회 인프라인 건물이나 도로, 항만, 또는 사회 조직 등이 쓸모없게 되어 공연한 유지비만 낭비하게 되는 문제도 심각히 대두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많이 낳으라고만 하여서 해결될 일은 아니지 않는가? 최근 여성의 권익이 보장되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과거, 여성들이 주부의 직책으로만 만족하던 시기와는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졌다. 한 마디로 여성들이 바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직장엘 다니랴, 밥하고 빨래를 하랴, ‘워킹 맘 육아 대디’라는 연속극을 보면, 요즘 아이 딸린 워킹 맘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아이 낳는 일이 예전처럼 당연지사로 치부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저출산 문제는 결혼문제입니다.…그런데 양질의 일자리 없인 결혼을 못합니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야 저출산 문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일자리 문제, 정말 심각하다. 더구나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청년 실업은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골칫거리라는 점 누구나 인정을 할 것이다. 청년 실업자들에게는 결혼 자체가 어찌 생각하면 사치일 수도 있는 일이다.

   일자리, 심각하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많은 일자리들을 자동화 기기들에게 빼앗겼다. 통조림이나 맥주 제조 공장 같은 곳을 가보면, 그 넓은 공장에 일하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를 않는다. 대부분의 공정은 모두 기계가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단순 노동뿐만이 아니라, 통장 정리, 현금 입출금 같은 은행의 업무도 대부분 기계들로 대체되어 버리지를 않았던가? 여성들의 세밀한 손길이 필요한 세탁, 청소 같은 일들도 이제는 기계가 척척 해 내는 시대가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얼마 전 이세돌을 가뿐하게 물리친 ‘알파고’가 등장한 이후로 많은 전문가들이 태산 같은 걱정들을 쏟아 내었다. 인공지능은 이제 자동차 운전도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어가고, 각종 로봇이나 드론 등이 인간의 영역을 줄여갈 것이며, 유아 돌보미, 보조 닥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AI 비서, 일기 예보를 위한 기상 분석가를 시작으로 기상 캐스터에 이르기까지 사람보다는 기계가 훨씬 더 적합하다고들 생각한다. 외국어 교육, K팝 율동 선생 등의 직업들도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에게서 하나씩 둘씩 빼앗아가 버리고 말 것이란다.

   그런데도 낳기만 하라고 한다. 인구 5천만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일자리에서 밀려난 노인 인구는 늘어만 가고, 그래서 청년들이 부양해야 할 책임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는데, 웬만한 일자리는 모두 인공지능에게 내주어야만 할 처지다 보니, 청년 실업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가는데도, 낳기만 하라니 답답하고도 안타까울 뿐이다. 실업자 대책, 특히 청년 실업자 대책부터 먼저 세워 놓은 다음에 더 낳으라고 권장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16.10.17.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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