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국내)

정동진의 배반1

거북이3 2016. 10. 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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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진의 배반1 

                                                                                                                 이 웅 재

   나는 거북이다. 동물을 사람에 비유하면 의인화라고 하던가? 그런데 ‘나는 거북이다’라는 표현은 그 반대, 사람을 동물에 비긴 것이니 은유라고나 할 수 있을 듯싶다. 나는 거북이다. 한 마디로 매사 느려터지다 보니 그런 별명이 고착화되었다. 처음엔 그러한 별명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얼마쯤은 꾸리꾸리했지만, 듣다 보니 면역이 되었는지 요즈음엔 듣고 들어도 무감각하다. 아니, 표현이 조금 부정확한 것 같다. ‘무감각’이 아니라 ‘무덤덤’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어떤 때에는 오히려 나 자신이 ‘내 별명은 거북이입니다’하고 제법 당당하게 말하기까지도 한다.

   그런 거북이가 정동진을 보겠다고 여행을 떠났다. 누구나 다 가 보았던 곳, 특히 새해 해맞이 때면 너도 나도 몰려가던 그 정동진을,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어도 ‘거북이’답게 나는 한 번도 가 보질 못했다. 그리고 그게 무슨 큰 잘못이라도 되는 듯, 나는 아직 정동진엘 가보지 못했다는 말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모처럼 아내가 주선해서 떠나게 된 정동진행을 무척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떠났다.

   그런데,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 앞면에는 ‘정동진행’이 아니라 ‘해안선’이라는 행선지가 씌어져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 정동진보다는 해안선 구경을 우선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싶어 어째서 정동진이 해안선에게 밀려났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여행사에서 제공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텅텅 비다시피 했다. 가이드가 말했다.

   “오늘은 빈자리가 많으니 널널하게 가시기 바랍니다.”

   총 인원이 20명이라고 했다. 기사를 빼면 45인승 버스인 것 같았는데 20명이라니 정원의 절반도 못 되는 편이라서 정말로 널널했다. 언젠가 대학 동창 내외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일행이 8명이었는데 서로 ‘빨리 빨리들 타세요. 자리가 모자라요!’라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야단법석을 떨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날씨는 새벽부터 흐리더니 잠시 햇빛이 나는 듯싶다가 다시 흐려졌다. 따가운 초가을 햇볕보다는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아침잠을 설친 때문에 눈을 지그시 감고 지내는데, 다시 가이드가 말했다.

   “우리가 달리는 길은 새로 난 영동고속도로입니다. 왼쪽으로 대관령 옛길이 보이는군요.”

   구름도 쉬어 간다는 대관령은 영동지방으로 통과하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뜻이겠지만, 사람들은 고개가 너무 험해서 오르내릴 때마다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라는 뜻으로 ‘대굴령’이라고 불렸었다고도 한다.

   “아, 저기 풍력발전기가 보이지요? 저거 얼마나 할까요?”

   글쎄, 내가 보기에는 대단할 것 같지가 않았는데, 웬걸, 하나에 30억 정도나 한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외국에서 주문하여 들여온다고 했다. 바람이 센 곳의 풍경에도 일조를 하고 있어 그런 대로 쓸 만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뜻밖의 고가품이라는 말에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울러 우리가 얼마나 전기를 물 쓰듯 써오고 있었는가를 반성하여 보았다. 길가에 있는 가게들을 보면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는 출입문을 열어놓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음은 물론이요, 한겨울 아파트에서도 러닝셔츠로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요, 심지어는 대낮에도 소등하지 않은 가로등을 볼 수 있는 경우도 흔하지 않던가? 가이드가 다시 말한다.

   “요새 20~30대들은 좌측 목장 구경들을 하러 많이 가지요. 반대로 50~60대 전후의 사람들은 오른쪽 선자령(仙子嶺) 트레킹(trekking) 코스를 찾는답니다.

   한 마디로 20~30대는 애늙은이요, 50~60대는 늙다리청년이라는 것인데 뒤바뀌어도 이렇게까지 되는 것은 아무래도 문젯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가 하면 지방마다 이것저것 축제가 천지인데 특히 ‘먹거리축제’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단다. 축제라니까 사람은 꾸역꾸역 모여들고, 장사꾼들은 ‘이때다’ 싶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때문이란다.

   드디어 묵호항에 도착하였다. 무릉계곡 쪽 식당에서 점심 식사 때 먹으려고 어시장에서 횟감을 떠오는 사람, 건어물들을 사는 사람 등 저마다의 볼 일들을 본 후, 우리는 2000년대부터 드라마 촬영으로 이름이 나기 시작한 묵호등대를 보러 가기로 했다. 벽화마을인 논골담길은 통영이나 서울의 북촌, 동대문 근처 낙산공원의 이화벽화마을과는 또 다른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특히 과거 풍요로웠던 시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멍멍이 동상이 푸근하고 친근한 느낌으로 나를 맞이하여 주었고,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는 등대 근처에서 내려다보는 어느 집 지붕 아래쪽에 있는 바둑이 세 마리의 조상(彫像)도 무척 귀여웠다. 세 마리 중 가운데 강아지가, 앞에 말한 멍멍이 시절과는 조금 사정이 넉넉지 못할 때의 모습인지 천 원짜리 한 장을 물고 있는 모습으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도중에는 2013년 SBS 일일드라마 ‘상속자들’의 차은상이 살던 집이라는 안내판도 보였다.

   등대공원도 다른 곳보다는 여러 가지 볼거리들을 많이 만들어 놓아서 좋았다. 앞쪽 계곡 건너편에는 멋지게 보이는 카페도 있었고, 그곳으로 가는 출렁다리도 꽤나 낭만적 풍경으로 다가왔다. 장동건‧고소영이 이곳에서 ‘연풍연가(戀風戀歌)’를 찍으면서 만나 제주도에서 사랑이 무르익어 결혼에 골인을 했다던가, 달짝지근한 기분이 솔솔 피어오르는 느낌을 만끽하여 보았다. 등대의 모습도 주변의 여러 조각상을 비롯한 자연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웅장하게 솟아 있었고, 그 공원 한쪽에서 내려다보는 묵호 앞바다도 아주 잔잔한 모습으로 정겨웠다. (16.10.3.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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