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국내)

쪽샘지구 1

거북이3 2016. 5. 26.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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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샘지구 1

                                                                                                                                        이 웅 재

   오래간만에 경주엘 가게 되었다. ‘아름여행사’에서 회원초특가인 19,000원에 5,000원짜리 온누리상품권까지 덤으로 끼워 주는 상품이었다. 서울에서 경주까지의 편도 교통비 정도도 못 되는 ‘헐값’인 까닭은 신라 왕족 및 귀족들의 집단묘역에 있는 고분군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홍보하기 위한 행사라서 유관기관의 지원을 받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그곳이 바로 쪽샘지구였다.

   종합운동장역에서 7시에 버스를 타야 해서 5시 50분경 집에서 나와 야탑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이른 시간이라 빈자리가 많았다. 늦잠꾸러기인 나는 저절로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버티면서 앞좌석에 탄 사람들을 일별했다. 그리고 놀랐다. 평소 같으면 어디를 가나 여성들이 더 많았는데 지금 이 시간엔 그 반대였다. 양쪽 경로석에는 똑 같이 남자 2사람, 그리고 일반석에는 좌로부터 남자 5명, 가운데 좌석에는 남자 3명과 여자 3명 동수였고, 오른쪽 좌석에는 남자 4명 여자 2명이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남자가 16명, 여자가 5명으로 여자는 남자의 1/3도 못 되었다. 내가 앉은 쪽도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단연 남자가 훨씬 많았다. 게다가 넥타이 부대는 딱 한 사람밖에 없는 점도 특이했다. 아무래도 사무직의 출근 시간으로는 이른 시간이 되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나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집합장소에 도착하여 버스를 탔다.

   서부역에서부터 타고 온 친구 내외의 덕분으로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아까 지하철과는 정반대였다. 언제 어디서나 보아 왔듯이 여자가 대부분이었다. 지하철과 버스에 탄 남녀의 성비가 의미하는 바를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느긋하게 두 눈을 감았더니, 조금 있다가 가이드 총각이 마이크를 잡고 나직나직하게 낱말들을 꿰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토대로 해서 쪽샘지구가 어떤 곳인지를 알아본다.

   쪽샘이란 지명은 이곳에 쪽빛 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쪽샘지구가 위치한 도심 한복판인 황오동 일대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신라 고분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바로 옆에 있는 대릉원(大陵園)에만 천마총(天馬塚)과 황남대총(皇南大塚) 등 널리 알려진 무덤을 비롯하여 무려 23기의 대형 고분이 자리 잡고 있어서 놀랄 만한 유물이 출토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서 진시황릉 병마용갱(兵馬俑坑)의 발굴조사처럼 전 과정을 개방하여 발굴조사 자체를 관광자원이 되도록 하기 위한 계획이란다.

   그는 말했다.

   “발굴현장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관광을 목적으로 한 사람들이 볼 때 눈요기를 할 수 있는 볼거리로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일 터였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물 한 병씩’만을 제공한다고 했다. 보통 국내 버스 여행에서는 버스가 출발하여 얼마 안 되면 아침밥을 제공하는 것이 상례인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는 ‘공적인 선언’이었다.

   “한 분에게 물 한 병씩만 드립니다.”

   그런데 ‘유성기(留聲機)’가 고장이 났나? ‘발굴현장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와 ‘한 분에게 물 한 병씩만 드립니다.’라는 말은 계속 반복이 되었다. 아마도 한 10번쯤은 반복을 하는 것 같았다. 반복은 강조법에 해당한다. ‘그래, 알아들었다.’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의 말은 계속 무미건조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그것이 아주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키도 훌쩍 큰 총각이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있는 것이 왜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묘하게 긁어 놓는 것인지? 그의 말을 듣고 여자 분들이 정신없이 깔깔거리며 웃어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총각은 자기소개를 한다.

   “제 이름은 아무개인데요, 나이는 서른이고요. 그러니까 저를 부르실 때 제발 ‘아저씨’라고 부르지는 말아 주세요.”

   “그러면 뭐라고 불러요?”

   “오빠라고 부르시는 분들도 더러 계신데 그러면 제가 갑자기 나이를 한꺼번에 먹어야 하잖아요? 그러면 체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뭐라고 불러요?”

   이번에는 손님들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냥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이러구러 단 한 번밖에 쉬지 않는 선산휴게소엘 도착하였다. 총각 가이드가 또 마이크를 잡았다.

   “화장실 가실 땐 집문서나 인감증명서 같은 중요한 물건들은 직접 가지고 내리세요.”

   휴대하고 있는 가방 따위는 그대로 두고 다녀오라는 말을 신라 시대에는 그렇게 표현하였던 모양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엉뚱하게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설봉호(雪峰號)를 타고 캄캄한 밤중에 북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왜 정신은 말똥말똥해지던 것인지? 선창을 통해 바깥 풍경을 응시해 보았지만, 어둠만이 나를 상대하고 있었는데도 그냥 계속 바깥만 바라보면서 ‘내 어렸을 적 고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또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여행길에 끌어들여서 함께 가던 친구가 힘들게 한 마디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집문서와 인감증명서 같은 중요한 물건들을 어디 어디에 보관해 두었다는 얘기까지 하고 나왔어.”

말하자면 일종의 유언까지 해 두었다는 말일 터였다. 북쪽으로 간다는 것이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았던 때의 아픈 기억이었다.

   “출발은 9시 반입니다.”

   이 멘트 역시 강조법이 사용되어 계속 반복되었다. 그러니 시간을 어기는 사람은 하나도 있을 수 없었다. 반복법이 그토록 강조의 효과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무미건조한 멘트가 그렇게 사람을 웃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16.5.26.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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