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국내)

(탐라 문화 체험기 2) 외손녀의 어록

거북이3 2017. 1. 24. 10:16

    


      (탐라 문화 체험기 2)   
               외손녀의 어록
                                                                                                                                         이   웅   재

  두둑이 배를 채웠으니 이제는 ‘문화 체험’을 시작하여야 했다. 제일 먼저 간 곳은 ‘삼양검은모래해변’이었다. 해변의 ‘모래사장’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백사장’인데, 이건 ‘검은모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만나기로 했던 것인데, 의외였다. ‘검은모래’는 우리를 반기지 않았다. 그렇게 넓지도 않은 모래사장인데, 사장으로 내려가는 곳에는 비닐이 드리워진 문 같은 것이 있었고 그곳을 지나 사장에 한 발짝을 들여놓았더니, 이럴 수가 있을까?
  바람, 바람이 말이 아니었다. 원래 ‘삼다도’라고 해서 바람이 많은 섬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긴 미리 알아본 일기예보에서는 오늘부터 서울에는 강추위가 몰려온다고 했고, 제주도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고 했었으니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지만, 이건 너무했다. 게다가 모래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모직포로 덮어놓아서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곳 이외에는 순수한 검은모래를 보기도 어려웠고, 스티로폼이나 유리병, 나뭇가지 등의 오물들도 상당히 많이 눈에 띄는 상태라서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관광업이 중요한 시절이 된 요즈음 이건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었다. 나는 가지고 간 목토시를 끌어올려서 눈만 빼곰이 남겨둔 채, 얼굴을 반쯤 가린 상태로 검은모래와의 첫 대면을 가졌지만, 그저 ‘흑사장(黑沙場)’이라는 것도 있구나 하는 기억 하나를 남겨놓는 소득 이외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아니, 하나가 더 있었다. 그러니까 그 흑사장 위쪽의 길가 쪽 언덕에 ‘도깨비고비’가 그 진록색 자태를 과시하며 내 시야를 파고들고 있어서, 한 순간 와락 반가운 느낌을 선사해 준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놈은 지금도 우리집 베란다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질 않은가? 그래서 반가웠다. 아내도 놈을 보더니, ‘이거, 이거…’ 하며 반색을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다음 장소로 옮겼다.
  다음 목적지는 ‘사려니숲길’이었다. 탐방로 입구 주차장에 렌트카를 세워 놓고 셔틀을 타고 3분 정도 가서 내리니, ‘사려니숲길’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일행은 잔뜩 기대를 걸고 숲길로 접어드는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이곳은 분명 걸어볼 만한 길이다. 하지만, 5~6월쯤에 와 보아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그곳의 진가가 드러나는 때가 따로 있는 법이다.
  나는 그것을 캐나다 여행에서 절실히 체험했었다. 내가 퀘벡엘 갔을 때는 4월이었는데도 오밀조밀하게 상가가 밀집해 있는 골목길 옆으로는 치워놓은 눈이 2m 정도 쌓여 있어서 을씨년스럽기만 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뒤에 그곳엘 갔던 딸내미가 찍어 보낸 사진에는 퀘벡의 그 골목이 그렇게 아기자기하게 예쁠 수가 없었다. 그것을 보고 느낀 것은, 여행이란 제철에 다녀야 하는 것이지 돈이 적게 든다고 아무 때나 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는데, 지금의 이 ‘사려니숲길’이 꼭 그짝이었다.
  하지만, 그런 대로 소득은 있었다. 외손자, 외손녀가 희한하게 여기는 길가 흙비탈에서 긁어낸 얼음은 삐죽삐죽하면서도 날카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매우 흥미로워하고 있었다. 실은 그건 서릿발이었는데, 나도 오래간만에 만나보는 모습이었다. 그런가 하면, 파아란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하트 모양의 돌멩이도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일반적으로 산기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조릿대도 이곳의 것은 좀 특이했다. 그 이파리의 바깥 부분이 흰색으로 둘려쳐져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무늬조릿대’라고 임시방편으로 명명을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제주조릿대’였다. 풀이나 나무 따위에 관심이 많은 내게는 소중한 소득이었다. 이름은 알 수가 없었지만, 배배 꼬이면서 자란 나무도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은 것이었다. 판소리『심청가』에서는 놀부의 못된 마음씨를 ‘심사가 모과나무의 아이라’고 하였는데, 모과나무의 뒤틀린 모습은 여기 이 나무에 비하면 말 그대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U’ 자 모양으로 자란 나무도 시선을 끌었다.
  ‘사려니’란 ‘살안이’ 혹은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쓰이는 ‘살’ 혹은 ‘솔’은 신성한 곳이라는 신역(神域)의 산명에 쓰이는 말이라 한다. 즉 ‘사려니’란 ‘신성한 곳’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이곳에는 1천여 종의 수목이 자라고 있다고 하니, 제철에 왔더라면 이 길 하나만으로도 반나절은 넘게 즐기며 걸었을 곳이라는 생각이었다.
  눈발은 그치고 햇님이 빙긋이 얼굴을 내밀었지만, 여기서도 바람은 거셌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의 소리는 유난히 많이 나타나는 까마귀의 ‘까악까악’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숲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혹시나 그 ‘바람소리’나 까마귀의 울음소리라도 잡힐까 싶어서 열심히 핸드폰 사진을 찍어대었으나, 나중에 보니 바람은 몽땅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햇빛이 비치자 외손녀가 하늘을 쳐다본다. 그리고는 한 마디 하였다.
  “하루에 하늘을 세 번만 쳐다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래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하루에 하늘을 몇 번이나 쳐다보았나. 그러나 그런  기억은 거의 없었다. 얼핏, 외손녀가 나를 행복하지 못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 보았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외손녀는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였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어 먹고는 얼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다행이었다. 한여름쯤이었다면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여기서 하늘이 안 보일지도 몰랐는데, 지금은 하늘이 파아랗게 보였다. 그리고, 햇님을 보고 도망치는 바람소리와 ‘까악까악’ 하는 까마귀 소리도 얼핏얼핏 ‘보이는’ 듯싶었다.
  앞으로는 되도록 하늘을 많이 쳐다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려니’의 신성함과 작별을 고하였다.     (17.1.24. 15매)



*이상하게 파일과 사진이 용량 초과라고 등록이 안 되네요. 별도의 '탐라 여행'에 올린 사진을 참고할 수밖에는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