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 문화 체험기 3)
금백조로
이 웅 재
다음 우리는 섭지코지로 향했다. 차를 몰아 가는 길 옆으로는 승마체험장을 비롯하여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馬]들이 많이 보였다. 아내가 말했다.
“왜 저렇게 말들이 많은 거지?”
아마도 승마체험에 사용되는 말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 왜 말들을 많이 기르는가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조금 번잡한 동네를 지나다 보면 ‘말고기’라고 쓰인 간판들을 볼 수가 있다. 그러니까 말고기를 식용으로 사용한다는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말고기가 고급요리로 대접받는다. 일본인들도 말고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말고기를 별로 먹지 않는다. 과거에는 더러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군 연산군은 정력에 좋다고 말의 음경을 육회(肉膾)로 즐겨 먹었다고 한다.
말고기는 쇠고기보다 부드럽고, 지방질이 적으며 고소하다고 한다. 말을 식용으로 대중화하기에는 값이 너무 비싸다. 비싸서가 아니라, 나는 ‘말육회, 말불고기, 말곰탕…’ 등의 이름 자체가 도대체 식욕을 불러일으키지를 않는다. 더군다나 요즘 정유라 때문에 말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중이라서 사람들에게 먹히는 말들이 불쌍하게만 여겨진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리의 렌트카는 섭지코지 주차장엘 도착했다. 오래간만에 다시 와 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차에서 내리니, 너무 했다. 처음 찾았던 ‘삼양검은모래해변’에서보다도 바람은 더욱 거셌다. 섭지코지는 언덕 위에 있었고, 바람막이가 될 만한 게 별로 없다. 하나 더, 그동안 여러 번 가 본 곳이기도 했기에, 그만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한 마디 하였더니,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 동의를 한다.
해서 우리는 ‘금백조로’로 내비게이션을 찍었다. ‘금백조로(金白鳥路)’, 상호는 주소에다가 ‘가든’ 하나를 더 붙이고 있었다. 이름 자체가 그럴 듯한데, 음식이 또한 먹을 만하다는 것이어서 잔뜩 기대를 하고 들렀다.
금백조로의 양 옆으로는 억새꽃들이 하늘거리는 멋진 길들이 있고, 근처에는 오름이 많다. 그 오름들 중에는 당오름도 있다. 당이 있어 당오름인데 그 당에는 농경의 신인 금백조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서울 남산에서 태어나 오곡의 씨앗을 가지고 제주도에 들어와서 한라산에서 태어난 수렵과 목축의 신인 소로소천국과 결혼을 하여 아들 18, 딸 28을 두었고 그 아들 딸들에게서 태어난 손주가 368명이라고 한다. 368이라는 숫자는 제주도에 있는 오름의 숫자와도 같다고 하니, 묘한 일치가 아닌가 싶다.
메뉴를 보니 금백조로정식이 25,000원, 옥돔정식이 15,000원, 오늘의정식이 8,000원 등이었다. 너무 싼 것을 골라 먹는 것도 뭣하고, 제일 비싼 것을 먹기도 그렇고 해서 중간쯤의 것을 선택해야겠다고 옥돔정식을 먹겠다고 했더니, 모두들 금백조로정식을 먹자고 한다. 아무래도 상호 이름이 들어간 것이 이곳의 대표음식이 아니겠나 싶어서들 그러는 것 같아서 그냥 우물쭈물 동의하고 말았는데, 알고 보니 옥돔정식이 제일 비싼 것이었다. 금백조로 정식은 2인용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가끔 가다 엉뚱한 실수를 범하기가 일쑤이니, 역시 매사에 재빠르지 못한 ‘거북이’란 별명이 꼭 제격이 아닌가 싶다.
금백조로 정식에는 생선구이도 나왔는데, 그게 옥돔인 것 같다고들 했지만 내가 먹어본 바의 옥돔은 조금 동글납작한데 요놈은 약간 길쭉했다. 전복뚝배기도 있었는데 역시 내가 먹어보았던 전복과는 맛이 좀 달랐던 것 같다. 전복과 거의 비슷한 놈에 ‘오분자기’라는 것이 있어서 긴가민가 싶었다. 아무래도 나는 맛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 싶다. 새우 비슷한 놈이 밑반찬으로도 나오고 전복뚝배기에서도 나왔는데, 새우보다는 가재가 아닐까 싶은 것이 껍질이 너무 단단해서 별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제일 맛있게 먹은 것은 제육볶음이었느니, 역시 내 입맛은 별로 믿을 것이 못 되는가 보았다.
어쨌든 배는 불렀고, 입가심으로 커피도 한 잔씩 했다. 음식점에서 무료 커피를 제공하는 나라, 대한민국은 정말로 괜찮은 나라다. 서구 어디를 가더라도 무료 커피를 주는 음식점은 보질 못했다. 어디 커피뿐이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삼계탕 집에서는 인삼주도 무료로 준다. 아는 사람과 함께 갔더니, 아예 조그마한 주전자 하나를 통째로 서비스하는 바람에 그만 까뿍 취해서 귀가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커피에 생각이 머무르게 되자 우리는 아예 ‘커피박물관 Baum’을 탐방하기로 했다.
입장료는 무료였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입장객이 별로 없었다. 아마도 번화가에서 뚝 떨어져 있는데다가 날씨가 좋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었다. 야외정원도 괜찮았다. 날씨가 따뜻하고 시간이 넉넉한 때라면 박물관 뒤쪽의 ‘솔밭공원’과 그 오른쪽 옆 ‘바람의 숲’을 산책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좀더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박물관 뒤쪽 올레 2코스 길을 걷는 여유도 가져봄 직하다.
커피는 ‘향’으로 마신다. 더하여 맛을 음미하는 것이 요체다. 그러니 매우 분위기를 타는 음료다. 국물을 마시듯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마시는 것은 ‘하객(下客)’이다. 막걸리나 숭늉을 마시듯 하면 몰개성적인 맛을 준다. 소주처럼 단숨에 ‘꼴까닥!’ 하는 것은 더더구나 몰취미한(沒趣味漢)으로 손가락질을 받을 수가 있다.
커피는 또한 다른 사람의 것을 한두 모금 빼앗아 먹는 맛이 일품이다. 특히 마누라의 것이라면 금상첨화다. 조계종 못 미쳐엔 ‘끽다거래(喫茶去來)’라는 간판이 하나 있다. ‘차 마시러 오세요’ 하는 말이다. 커피는 차[茶]의 일종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이때의 ‘來’ 자는 뜻이 없는 허사(虛辭)다. 허사를 시종처럼 이끌고 다니는 커피는 그래서 귀한 음료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요즘 커피 값은 너무 ‘비싸다’. (17.1.28. 15매, 사진 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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