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국내)

순인력(順引力)을 부러워하다가…

거북이3 2017. 4. 1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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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인력(順引力)을 부러워하다가…

                                                                                                                     이 웅 재


  버스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거칠 것 없는 속도감은 사람의 마음을 시원스럽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주춤한다. 왜 그러지? 안전벨트는 매고 있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다. 앞에 달리던 차들의 꽁무니가 온통 빨간 불로 바뀌면서 깜빡대고 있었다. 버스가 1차선에서 2차선으로, 그리고 다시 3차선으로 차선을 바꾼다. 시야를 파고드는 1차선의 상황들, 끔찍했다. 자가용 한 대는 옆구리가 무참하게 부서진 채 가로로 누워 있고, 그 옆쪽에도 어슷비슷한 정도로 파손된 또 한 대, 그리고 2차선에도 그보다는 조금 나아보이는, 그러나 역시 심각한 정도로 찌그러진 자가용 한 대가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그 앞쪽 1차선에는 오른쪽 범퍼 쪽이 나간 관광버스가 한 대 보인다. 형태로 보아서 아무래도 끼어들기를 하려던 자가용을 추돌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것은 어쨌든, 저 버스는 내가 동천역 버스환승센터에서 기다릴 때 몇 분 전에 지나가던 ‘○○여행사’의 버스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여행사 직영 버스는 아닌 듯싶었다. 차체 자체에 회사 이름이 새겨진 것이 아니라 앞부분에 ‘○○여행사’라는 횡단막(橫斷幕)이 붙어 있던 것을 보니 그랬다. 보통 전세버스를 빌려서 운행을 할 때에는 탑승자들에게 1만 원 정도의 보험료를 받는데, 저 버스는 운행 거리로 보아 아직 보험료를 다 받아서 인적사항과 함께 보험사로 보낼 시간은 되지 못한 듯 여겨져서, 내 일은 아니지만 더욱 걱정이 되었다.

  우리 관광버스의 가이드가 말한다.

  “벌써 저 사고 기사가 인터넷에 떴어요!”

  아내는 그 소리를 듣더니 곧장 문자 보내기에 여념이 없다. 평소에 늘 교통사고에 주의하라던 두 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문자였다.

  “우리 앞에 가던 차였어! 아빠 엄마는 무사하니까 걱정들 붙들어 매시라고.”

  가이드가 다시 말한다.

  “23명이 다쳤다네요. 안전띠 안 매신 분들은 빨리 매도록 하세요.”

  안전띠, 중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여행객들로 만원이었다. 동천역에서 버스에 오르자 가이드가 맨 앞자리에 앉으란다. 운전기사 바로 뒤의 1,2번 좌석이었다. 예약을 할 때에는 4번째인가라고 했는데 웬 횡재인가? 아내는 늘 앞좌석을 선호한다. 그런데 앞좌석 중에서도 운전기사의 바로 뒷좌석이라니? 유사시 아무래도 운전하는 사람이 즉각적으로 안전을 위하여 반응하다 보면 그 자리가 가장 안전한 자리라고 하질 않던가? 소원대로 그 자리엘 앉았다. 그런데 그 자리엘 앉는 사람은 싫든 좋든 봉사를 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 배식을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커다란 스티로폼 속에 비닐에 싸여 있는 밥을 퍼서 플라스틱 쟁반에 담아 가이드에게 주면 가이드가 거기에 반찬 3가지를 더 얹어서 ‘뒤로 전달’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 모르시는 말씀일랑 하질 말아야 한다. 밥을 푸는 사람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밥이 모자라거나 하면 낭패인 것이다. 전에 그냥 받아먹기만 할 적에는 그런 저런 걱정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쉽게 보이는 일이라도 직접 맡아서 해 보면, 난감한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요 일시적이고도 조그마한 집단의 단 한 끼 식사에서도 그렇거늘, 한 가정의 매끼 식사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라면 식구들이 먹고 지내는 일에 얼마나 신경을 써야 할 것인가? 한 회사의 사장이나 회장은? 좀 더 나아가 한 국가를 통솔해 나가야 하는 대통령쯤 된다면, 모든 국민들이 걱정 근심 없이 의식주 생활을 영위해 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심초사를 해야 할 것인가?

  배불리 먹고 등 따습게 잘 수 있게 하여 준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또 뼈저리게 느끼면서 배웠다.

  그렇게 배우고 또 배우면서 목적지인 진안 마이산(鎭安 馬耳山)에 도착하였다. 마이산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암벽에 벌집처럼 생긴 구멍 형태를 지니고 있는 타포니(tafoni) 지형으로 된 곳이다. 이곳에는 이갑룡(李甲龍) 처사가 쌓았다고 하는 만불탑(萬佛塔)이 있는데, 이 탑은 세찬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석질에 순인력(順引力)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와 같은 순인력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여 발생하는 허구많은 문제점들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순인력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다음 여행지인 후백제 견훤(甄萱)이 아들인 신검(神劍)에게 유폐당했다는 김제 금산사(金堤 金山寺)를 찾아가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나는 곧 나의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하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요즘 한창 말이 많은 최 아무개의 국정 농단을 생각해 볼 때 너무도 쉽게 순인력을 발휘하여 생기는 부적절한 관계도 문제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정말로 세상살이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로구나 하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석가불을 모신 대웅전이 없는 대신 약 12m가 되는 미륵불이 모셔진 미륵전이 이 절에서는 본당의 구실을 하고 있었다. 석가불은 현세불, 미륵불은 미래불이다. 현세불보다 미륵불을 더 정성스레 모시는 금산사는 그러니까 미래에 대한 소망을 더욱 중시하고 있는 사찰이다. 온갖 불의와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있는 현세에서는 미래를 위한 덕업을 쌓는 것이 더욱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미래불을 믿는 신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굳히면서, 최근 분당에 새로 창건된 대광사(大光寺)의 17m나 된다는 미륵불도 한 번쯤은 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여 보았다.

  이렇게 4월 10일의 벚꽃 여행은 마감되었다. (17.4.12.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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