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절대 권력 앞에서

거북이3 2018. 4. 12. 16:17


18.1.27.절대 권력 앞에서(개작, 12매).hwp :월간 “좋은수필” 2018-3(80호). pp.143-146.


18.1.27.절대 권력 앞에서.hwp


                    절대 권력 앞에서

                                                                                                                 이 웅 재


  “아침에 수영 갔다 오다가 편지함에 들어있는 것, 가지고 들어왔는데 왜 없지?”

  집 근처에 있는 NC백화점이나 홈플러스, 또는 DS마트 등에서 집집마다 보내는 전단지 얘기다. 너저분한 것이 싫어서 쓸데없는 종이류는 그때그때 ‘박스’를 하나 비치해 놓고 가져다 버리는 것이 습관이 된 나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눈치다.

  “나는 안 가져다 버렸는데….”

  그럴 때면 일단 부정을 해 놓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박스’를 수색한다. 성공하면,

  “언제 가져다 버렸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면서 전단지를 건네면 된다. 수색을 하여도 없을 때면,

  “결단코 내가 버린 게 아니라니까….”

  큰소리를 쳐가면서 다른 곳을 찾아본다. 그러다가 아내가 가지고 갔던 백 속에서라도 나올라치면,

  “그것 보라니까….”

 해 가면서 승자의 여유만만함을 마음껏 즐길 일이다.

  그러한 꼼수를 부리는 내 주머니에는 항상 100원짜리와 500원짜리 동전이 준비되어 있다. 카트용이다.

  “수요일에는 NC백화점에서 물건을 싸게 파는 날이에요.”

  “새농에서 오늘 용추쌀을 할인 판매하는 날이에요.”

  평서형이다. 그런데 내겐 모두 명령형으로 들린다. 그래서 얼른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아내를 따라 백화점이나 마트로 간다. 산 물건들을 가져오려면 카트가 필요하고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동전인 것이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DS마트에서 토마토를 싸게 판대요.”

  아침 일찍 수영장엘 갔다가 오는 아내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보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속으로 중얼거려 보긴 하지만, 답은 벌써 나왔다. 바로 그 ‘어쩌라고?’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벌써 그 ‘어째야’ 하는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카드 줘!”

  토마토는 암 예방은 물론 비만, 고혈압, 당뇨병 등에도 좋은 건강식품이 아니던가? 유럽에서는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 얼굴이 파랗게 된다.”는 속담까지 있다고 할 정도다. 더군다나 술을 좋아하는 내게는 아주 좋은 안주감이기도 하지 않은가? 더더구나 토마토는 혈중 알코올 농도를 낮춰주고 알코올 분해 시간도 단축해 준다고도 하는 음식이니, 토마토를 사오는 일은 불감청이언정 고소원, 나는 두말없이 가서 토마토를 사 왔다.

  아내는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 없다. 이럴 때 사용하라고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있는 것일 게다.

아내는 가끔 의문형의 어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소리 때문에 편안하게 TV를 볼 수가 없으면, 나는 슬그머니 내 방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내 방에도 자그마하기는 하지만 내 전용 TV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내의 의문형 어법이 등 뒤에서 들린다.

  “밥 안 먹고 왜 방으로 들어가요?”

  그건 “밥 먹어요!” 하는 소리렷다? 그러나 명령형은 사용하질 않는다. 방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은 잽싸게 식탁으로 그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는 지당하신 말씀이라는 표정으로 수저를 들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물김치가 아주 시원하고 맛있네.”

  무조건 맛있다고 해야 한다. 음식이 예상 외로 짤 때도 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이젠 아내도 아마 늙어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음식이 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매우 짠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조금 짠 듯한 느낌인데…”라는 식의 미완의 어법을 사용해서, 아내 스스로가 “그래?” 하면서 본인이 확인하게끔 해 주어야만 한다. 이런 건 철칙이다. 법 위의 법, 헌법인 것이다. 절대 권력 앞에서는 ‘예스 맨’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요즘 정치를 통해서 잘 배우고 있지 않은가?

아주 추운 날이었다. 내 임플란트를 해준 치과가 양평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거기까지 갔다가 오는 중이었다. 온몸이 꽁꽁 얼었는데, 귀가 중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쯤 오느냐고 묻기에 모란이라고 했더니, 더 이상 말없이 전화를 끊는다. 왜 그랬을까 궁금해 하면서 집에 도착하였더니, 따끈따끈한 꽃게탕을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예스 맨’으로 살았기 때문인 것이다.

  세상의 남편들이여, 절대 권력 앞에서는 ‘예스 맨’이 되어, 감읍할 줄 아는 사람이 될지어다. (18.1.27. 개작 12매)



      절대 권력 앞에서

                                                                                                                              이 웅 재

  “아침에 수영 갔다 오다가 편지함에 들어있는 것, 가지고 들어왔는데 왜 없지?”

 하면서 아내가 나를 쳐다본다. 집 근처에 있는 NC백화점이나 홈플러스, 또는 DS마트 등에서 집집마다 보내는 전단지 얘기다. 너저분한 것이 싫어서 쓸데없는 종이류는 그때그때 ‘박스’를 하나 비치해 놓고 가져다 버리는 것이 습관이 된 나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눈치다.

  “나는 안 가져다 버렸는데….”

  그럴 때면 일단 부정을 해 놓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박스’를 수색해 본다. 수색에 성공하면,

  “언제 가져다 버렸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면서 전단지를 건네면 된다. 수색을 하여도 없을 때면,

  “결단코 내가 버린 게 아니라니까….”

  큰소리를 쳐가면서 다른 곳을 찾아본다. 그러다가 아내가 가지고 갔던 백 속에서라도 나올라치면,

  “그것 보라니까….”

해 가면서 승자의 여유만만함을 마음껏 즐길 일이다.

  그러한 꼼수를 부리는 내 주머니에는 항상 100원짜리와 500원짜리 동전이 준비되어 있다. 카트용이다.

  “수요일에는 NC백화점에서 물건을 싸게 파는 날이에요.”

  “새농에서 오늘 용추쌀을 할인 판매하는 날이에요.”

  평서형이다. 그런데 그 말들은 내겐 모두 명령형으로 들린다. 그런 말을 들으면 얼른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아내를 따라서 백화점이나 마트로 가야 한다. 산 물건들을 가져오려면 카트가 필요하고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 100원짜리나 500원짜리 동전인 것이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DS마트에서 토마토를 싸게 판대요.”

  아침 일찍 수영장엘 갔다가 오는 아내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보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러나 답은 벌써 나왔다. 바로 그 ‘어쩌라고?’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벌써 그 ‘어째야’ 하는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어지는 아내의 말이 뜻하는 바는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척!’이 아니겠는가?

  “수영장에서 나올 땐 마트에 들러서 온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하고 수다 떨다가 그만 깜빡했지 뭐야….”

  그래, 그랬겠지? 게다가 ‘토마토’란다. 해서 말한다.

  “카드 줘!”

  가서 사 오겠다는 뜻이다. 토마토는 위암, 폐암, 전립선암 예방은 물론 비만, 고혈압, 당뇨병 등에도 좋은 음식이라고들 하는 건강식품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 얼굴이 파랗게 된다.”는 속담까지 있다고 들었다. 더군다나 술을 좋아하는 내게는 아주 좋은 안주감이기도 하지 않은가? 더더구나 토마토는 혈중 알코올 농도를 낮춰주고 알코올 분해 시간도 단축해 준다고도 하는 음식이니, 토마토를 사오는 일은 불감청이언정 고소원, 나는 두말없이 가서 토마토를 사 왔다.

아내는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 없다. 이럴 때 사용하라고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있는 것일 게다.

  “카트 끌고 왔어요.”

  이 말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라는 말이다. 중간에 손잡이가 부러진다든가 해서 엘리베이터라든가 아파트 현관 같은 곳을 온통 오물 범벅으로 만들면 안 되니까 카트에 실어서 안전하게 버리라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가끔 의문형의 어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소리 때문에 편안하게 TV를 볼 수가 없으면, 나는 슬그머니 내 방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내 방에도 자그마하기는 하지만 내 전용 TV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내의 의문형 어법이 등 뒤에서 들린다.

  “밥 안 먹고 왜 방으로 들어가요?”

  그건 “밥 먹어요!” 하는 소리렷다? 그러나 명령형은 사용하질 않는다. 방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은 잽싸게 식탁으로 그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는 지당하신 말씀이라는 표정으로 수저를 들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물김치가 아주 시원하고 맛있네.”

  무조건 맛있다고 해야 한다. 음식이 예상 외로 짤 때도 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이젠 아내도 아마 늙어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음식이 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매우 짠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조금 짠 듯한 느낌인데…”라는 식의 미완의 어법을 사용해서, 아내 스스로가 “그래?” 하면서 본인이 확인하게끔 해 주어야만 한다. 이런 건 철칙이다. 법 위의 법, 헌법인 것이다. 절대 권력 앞에서는 ‘예스 맨’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요즘 정치를 통해서 잘 배우고 있지 않은가?

  ‘예스 맨’의 위상을 한번 점검해 보자. ‘벽돌깨기’의 일종인 가장 기본적인 컴퓨터 게임 ‘DX Ball’을 한창 신나게 하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내 방으로 들어와서는 ‘말없이’ 따끈한 커피를 건네준다. 그럴 땐 나도 ‘말없이’ 받아 마셔야 한다. 말은 없지만 표정은 당연히 ‘감읍’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주 추운 날이었다. 내 임플란트를 해준 치과가 양평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거기까지 갔다가 오는 중이었다. 온몸이 꽁꽁 얼었는데, 귀가 중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쯤 오느냐고 묻기에 모란이라고 했더니, 더 이상 말없이 전화를 끊는다. 왜 전화를 걸었을까 궁금해 하면서 집에 도착하였더니, 따끈따끈한 꽃게탕을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감읍’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세상의 남편들이여, 절대 권력 앞에서는 ‘예스 맨’이 되고, 감읍할 줄 아는 사람이 될지어다. (18.1.27.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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