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거북이3 2018. 4. 1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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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문예” 봄호(73호). pp.41-43.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웅 재


  수영장에 다니는 아내가 동료들끼리 자식 자랑들을 하던 중, 어느 동료 한 사람이 그만 삐끗하게 되어 한 말이라면서 얘기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아들을 붙잡고 조금은 서운한 느낌이 들어서 말했단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아니?”

  이 말은 소위 부모들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꺼내드는 말이기는 하지만, 직접 대놓고 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내가 그애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식으로, 자식에 대한 불만을 제3자를 상대로 하소연하듯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말이다. 그런 성격의 말을 아들 앞에서 직접 대어놓고 했더라는 것이다. 그건 사실 하나의 금기 사항에 속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곧 ‘아차!’ 싶었다는 것이었는데, 어쩔 것이랴? 이미 뱉어놓은 말인 것을…. 기실 여기서 ‘어떻게’라는 말은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없는 확장성을 지니고 있는 말이었다. 무한한 애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기는 하지만, 때로는 온갖 간섭을 다하고 어떤 때에는 야단도 치고, 심지어는 회초리를 들기도 했던 일들이 모두 그 ‘어떻게’라는 형용사의 부사적 기능 속에 들어있을 터였다.

  그러한 엄마의 말을 들은 아들은 당당하게 대답을 하더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엄마들은 모두들 그렇게 키웠어요.”

  이게 돌아온 대답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 엄마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부모들도 모두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자식들을 키우고 있었음은 당연한 일, 그걸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 엄마한테 누구나 다 마찬가지인 걸 가지고 무슨 생색을 내느냐는 투의 대답이 돌아오자, 그 엄마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단다. 그래서 한 마디 덧붙였다는데….

  “그게 엄마한테 하는 대답이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나 더 보탰다고 한다. 처음부터 삐끗하게 된 말은 관성(慣性)의 법칙을 좇아 또다른 금기(禁忌)를 범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어쨌든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아들의 그 다음 대답으로 어떤 말이 나왔을까가 또다시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엄마의 말을 기다렸단다. 아니, 그 엄마의 아들의 대답을 듣기 위해 그 엄마의 입만 쳐다보았단다. 드디어 그 아들의 대답이었다는 말이 그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왜요? 내 처도 우리 아들을 그렇게 키우고 있어요.”

  엄마가 하는 말과 같은 어법으로 ‘그게 아들에게 하는 물음이에요?’ 하는 반문이 나오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내 처도 우리 아들을 그렇게 키우고 있다’는 말, 엄마만 그런 게 아니고, 모든 엄마들, 그리고 그 모든 엄마들에게서 배운 모든 며느리들도 똑같이 자신의 자식들을 ‘금지옥엽’으로 키우고 있다는 말이다. ‘불면 날까 잡으면 꺼질까’ 노심초사하며 키운다는 뜻이다. 너무 소중하여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기 어려워하며 키웠다는 말이다. 엄마들은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그러한 엄마의 심정은 비단 우리나라 엄마들만 그랬던 것도 아닌 모양이다. 중국의 속담에도 ‘吹之恐飛 執之恐陷(취지공비 집지공함)’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은 그런 공을 모르고 제가 잘나서 혼자 자란 것처럼 여기고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은연중에 드러난 말이 바로 “그게 엄마한테 하는 대답이냐?”라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조금은 대충대충 키웠더라면, 오히려 그 키운 공을 제대로 알아줄 수 있었을 법도 한데, 온 정성을 다한 게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 바로 “그게 엄마한테 하는 대답이냐?”라는 말은 아닐까? 그러한 엄마에게, “왜요? 내 처도 우리 아들을 그렇게 키우고 있어요.”라는 대답을 하는 아들을 두고, 그 엄마는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아내는 ‘우리 아들은 어떨까?’ 궁금하기 짝이 없어서 큰아들에게 카톡으로 물었단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질 아니?”

  뜬금없는 질문에 아들은 한동안 대답이 없더니, 한 10분쯤 후에 답이 왔다고 했다.

  “부모님 은혜는 하늘보다도 높고, 바다보다도 깊지요. 그런 걸 뭘 새삼스럽게 물어보세요?”

  말하자면 정답을 보내왔다는 얘긴데, 전혀 감동이 없더라는 것이다. 어디가 잘못 되었을까? 그건 그런 질문을 하는 일 자체가 잘못이기 때문이었을 터이다. 더군다나 수능시험처럼 5지선다형도 아니고, 단답형의 서술적 질문을 하다니? 질문에도 격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질 아니?”와 같은 질문은 아무리 너그럽게 보아주려고 해도 품격을 갖춘 질문이라고는 할 수 없을 듯싶다. 왜? 그런 질문은 이미 정답의 대부분을 미리 확정해 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큰아들의 반응을 말해 주었더니, 그 수영장 ‘알머니’(아주머니+할머니)가 말하더란다.

  “그럼 작은아들에게 물어보지 그래?”

  작은아들은 한마디로 멋대가리가 없다. 제 직업인 한의사답게 증상에 대한 설명이면 끝이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보아서 그건 또다시 증명이 되었다.

  “어디 아프세요?”

  그래, 아프다, 아파. 아프면 어쩔 건데? ‘공진단(供辰丹) 등 보약을 철마다 보내드렸는데, 아프시면 안 되지요.’ 아내의 귀에는   “어디 아프세요?” 하는 소리가 그렇게 들리더란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점을, 모든 엄마들이여, 명심, 명심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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