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문화 체험기(3)

1. 추억을 마시다(프롤로그)

거북이3 2019. 11. 2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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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추억을 마시다(프롤로그)

                                                                                                                                               이 웅 재

    

 술시(戌時)가 되었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가 술시라는 것을 모르는 술꾼들은 없다. 바로 그때가 술 마시기 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그래서 戌時[]가 되는 것이다. 술꾼들에게는 가장 ()스러운 시간이다. , 이것도 술꾼들에게는 ()스러운 시간으로 각인된다.

  그래서 경건한 마음으로 오늘의 술시를 맞이하였다. 모처럼 이번 베트남 다낭 여행의 막바지에 내 마음에 꼭 맞는 상품 하나를 사 왔는데, 그것이 바로 술이었다. 가격은 어마어마했다. ‘40이나 되었다. , 그렇지? 여기서 ‘40이라는 건 베트남 화폐인 (Dong)’으로 그렇다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은 거의 무심하게 치부하는 듯했지만, 내겐 그게 어마어마하게 다가오는 숫자였다. 나는 수학에는 약하다. ‘산수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도 오십보백보, 그보다도 다시 한 단계 낮은 용어인 셈본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나는 그 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해진다. ‘셈본이란 말을 산수수학보다 낮은 말 정도로 치부하는 행태도 더욱 마음에 안 드는 일이지만, 어쨌든 숫자 자체가 ‘40이라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숫자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해 보라. ‘단십백천만의 단계도 넘어선 십만단계에 놓인 숫자이니,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일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내게는 음치(音癡), 기계치(機械癡), 길치(-)’에 이어 또 하나의 ‘-()’자가 덧붙는다. 바로 셈치(-)’인 것이다. 해서 나는 결혼을 하자마자 가계(家計)는 아내에게 맡겨 버렸더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이란 돌고 돌아서 돈이라고 했다던가? 말하자면 펑펑 써야지만 다운 이 될 것인데, ‘셈치(-)’에게는 불행하게 돈을 돈답게 쓰는 법에도 취약하기 그지없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나 할까? 평생을 선생으로 살았으니 더욱 그렇다. 요사이의 선생이야 개밥의 도토리, 2 학생에게도 꼼짝 못하는 존재라고들 하지만, 예전엔 안 그랬다. 내가 선생으로 지낼 때에는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일 때라서 학생은 물론 학부형들께서도 깍듯이 대접을 해 주곤 하였었다. 가정방문을 의무적으로 하여야 하던 때, 혹시라도 자식 놈이 선생의 말을 말같이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 특히 고관대작의 자리나 대기업의 사장님들께서는 자식 놈에게 아무 날 담임선생님을 집으로 모셔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선생이 대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맨발로 나와서 맞곤 하였다. 아버지가 저처럼 쩔쩔매니 자식 놈아,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엄부일교(嚴父一敎)’였던 것이다. 그러니 셈치에 선생이 직업인 내가 돈을 펑펑 쓰는 일일랑 평생 배워보질 못한 일이 아니었던가?

  그런 내가 ‘40만 동이나 주고 베트남의 술 1병을 사 왔다. 하긴 다낭에서 제일 맛있다고 하는 라루(Larue)’맥주 1캔 값이 포장마차와 비슷한 간이음식점에서 600원 정도인 점을 감안한다면 원화 2만 원 정도면 비싸긴 비싼 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이며 베트남을 최초로 통일하였고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녔다는 응우옌 왕조의 제2대 황제가 마셨던 술이라서 그럴까? 그 황제는 5척 단구인데도 따로 황후를 두지 않고 부인 500~600명을 두었는데, 매일같이 5명의 부인과 합방(合房)을 하였다니 대단한 정력가라고 하겠다. 태자는 78, 공주는 64명이나 되었다지, 아마? 응우옌 왕조는 건국 당시의 국호인 비엣남(월남)을 다이난(대남)으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베트남에서 응우옌이라는 성씨는 베트남 전체 인구의 약 40% 정도가 된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김씨 성보다도 훨씬 많은 인구를 지닌 성씨라고 하겠다. 도수는 37, 상당히 독한 편으로 스무 가지 이상의 약초가 들어간 술로, 살짝 십전대보탕 비슷한 한약 냄새를 느낄 수 있는 양주라고나 할 수 있을 듯하다.

  그 황제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즐겨 마셨다는 술을 지금 내가 마신다. 술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나니 민망하기 그지없다. 술 이름마저도 민망주였다. 하지만, 민망민망하다민망은 아니요, 황제의 연호가 민망(Minh Mạng:明命)’이었을 뿐이라는 변명을 덧붙여야만 할 것 같다. 500여 명의 부인, 그러니까 후궁이겠는데, 글쎄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은 부인의 이름까지는 그만두고라도, 얼굴이라도 기억하고 지냈을까 하는 쓰잘데기 없는 걱정이 들었다. 게다가 그건 우리나라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도 들었다.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에게는 3,000의 궁녀가 있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민망 황제는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적에는 100여 명의 부인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도 하니, 글쎄 이런 말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애민정신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뜬금없는생각도 해보았다.

  안주 역시 베트남 산()이다. 필리핀에 갔을 때 마트에서 건조망고를 사다가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나름대로 안주감 등용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서, 좀 사다가 술안주로 삼을까 했었는데, 가이드 분께서 일반 마트에서의 망고가 얼마나 비위생적인지를 강조, 강조하는 바람에 사지를 못했었다. 그런데, 민망주를 파는‘JOJO’였던가에서 판매하는 망고는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어서 그런 가격이라면 굳이 베트남에서 사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사질 않았었는데, 우리 회장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1봉지씩을 사 주시는 바람에, 고맙고 고마운 마음으로 민망주를 보좌하는 안주로 임명을 하여, 그의 보좌를 받으면서 얼콰하게 취하니, 갑자기 세상이 모두 내 수중에 들어있는 것만 같아지기 시작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난 35일의 추억을 마셔 버렸다. (19.11.25.15, 사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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