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문화 체험기(3)

3. 박항서 감독의 마중과 플루메리아꽃과의 재회

거북이3 2019. 12. 3. 13:56



(베트남 문화 체험기 3)

      3. 박항서 감독의 마중과 플루메리아꽃과의 재회 

                                                                                                             이 웅 재

 

  비행시간은 셈치(-)’의 계산으로는 3시간 남짓 걸렸다. 11:10에 출발하여 14:15경 도착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시차 2시간을 계산에 넣어야 되겠지만, 그런 것까지를 다 계산해 넣는다면 그게 어디 셈치다운 계산법이겠는가? 해서 셈치로서는 적당한 비행시간이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걸 가능하게 해 준 것은 바로 위스키. 기내식을 먹으면서 나는 위스키 한 잔을 주문했는데, 글쎄, 그것만으로 시차(時差) 2시간을 무시해 버리기에는 약했다. 해서 나는 내 옆 좌석의 여성 동승자 두 분에게 SOS를 보냈다. 결국 위스키 석 잔에다가 입가심용 와인 한 잔의 덕분으로, 내게서는 그 시차가 무화(無化)되어 버렸다.

  다낭공항엘 도착하니, 아직도 해가 댓발이나 남았다. ‘룰루랄라였다. 입국장 심사대서 대기하던 나는, 고개를 들다가 화들짝 놀랐다. 정면으로 박항서 감독이 나를 맞아주는 것이 아닌가? 대문짝만한 신한은행의 광고판 속에서 박 감독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웬만한 외교관들로서도 해낼 수 없는 외교적 성과를 이루어내었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나는 그걸 온몸으로 실감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의 매직이 쭈욱 계속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우리는 먼저 호텔에 짐을 풀어놓기로 했다. 공항을 조금 지나서 달리다 보니 한강(Han River)이 나왔다. 이름 자체가 반가웠다. 다낭에도 한강의 기적이 이루어지기를 빌었다. 한자로는 瀚江이라고 쓴단다. 이 한강에는 몇 년 전 ()다리가 놓였고, 밤이 되면 무지개 빛깔로 번갈아 점등이 되어 볼 만한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우리가 사흘 동안 묵을 호텔은 ‘STELLA MARIS BEACH’였다. 나는 이삼헌 시인님과 함께 맨 위층 1507호에 배정을 받았는데 전망이 좋았다. 창문 밖으로 시원한 미케(My Khe, 美溪) 비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월남전 동안 미군 휴양지로 사용되던 곳이라고 한다. 그렇게 마음에 쏙 드는 곳은 쉽게 얻어질 수 없는 법이라서, 우리는 한동안 우왕좌왕해야 했다. 우리의 방은 1507호였는데 그 숫자 표기를 얼핏 알아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셈치임을 또 한번 증명하고 말았다.

  하긴 베트남 사람들도 우리가 쓰는 숫자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식당에서는 객실 번호를 써놓고 들어가야 했는데, 내가 쓰는 숫자를 못 알아보는 것이 아닌가? 해서 아예 객실 카드키의 종이 커버에 쓰인 숫자를 보여주니 그제야 고개를 주억거렸다. 특히 ‘7’자의 표현이 서로 좀 달랐다.

  객실은 깨끗하여 마음에 들었지만, 두어 가지에 문제가 있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세면대가 거실에 있어서 아무리 주의를 해도 주변에 물방울이 튀었다. 왼쪽 옆으로 2개의 작은 수건을 말아놓는 등의 배려는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거실에 물방울이 튀게 되는 세면대 배치는 잘못이지 싶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일이었는데, 책상 위의 필기구가 연필로 되어 있다는 점도 못마땅했다. 연필은 집어갈 염려가 없다.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호텔 책상의 필기구로는 볼펜을 사용한다. 그 볼펜에는 호텔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그 볼펜은 일종의 호텔 홍보용으로 쓰이기도 하는 것이라서, 투숙객들이 집어가기를 바라는 물건이다.

  손님의 편의를 꾀하고 격조 높은 서비스 제공을 위하여 객실 등 호텔에 무료로 준비해 놓은 각종 소모품 및 서비스 용품들, 곧 욕실에 비치된 비누, 샴푸, 바디용품, 린스, 치약, 칫솔, 면도기 등의 비품들을 어메니티(amenity, 편의용품)라고 하는데, 이런 것들을 고객이 가져가면 호텔 입장에서는 고객이 호텔에 머물었던 것을 좋아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니, 챙겨가도 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볼펜이 아닌 연필을 보니 정나미가 떨어졌다. 호텔을 나와 제일 먼저 간 곳은 참박물관이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참파왕조 전문 박물관이다. 참 왕국은 2세기 말엽부터 18세기 초반까지 존재했던 인도네시아계인 참(CHAM)족이 세운 왕조로, 19세기 초에 이르러 베트남에 흡수되며 사라져버린 왕국이다. 이 왕국은 많은 사원과 탑, 방대한 예술품을 남겼는데, 인도의 영향 및 힌두교 신앙이 강하게 드러나는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유물들을 간략히 보도록 하자. 먼저 중생을 피안으로 인도한다는 타라(TARA) 여신의 청동상이 눈길을 끌었다. 큰 가슴과 잘록한 허리가 전형적인 여성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음, 얼굴만 코끼리 모습을 하고 있는 상업과 학문의 신인 가네샤(GANESA)을 보면서는 역시 인도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전시품 중에는 목이 없는 석상들이 많았다. 상대국의 번성했던 문화를 무화(無化)시키려는 의도에 가슴 한복판이 뻥 뚫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사실 나는 박물관 전체의 분위기를 야릇하게 자아내고 있는 꽃나무에 관심이 컸다. 박물관 들어가는 곳에 피어 있는 노란색의 긴 나팔모양을 하고 있어 '황금트럼펫(Golden Trumpet)'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알라만다(Allamanda)에 첫 마음을 빼앗겼고, 이어서 정원을 대표하고 있는 많은 플루메리아 나무에 마지막 마음을 도둑맞았던 것이다. 샤넬 No.5의 원료가 되기도 하는 이 꽃나무는 괌에서도, 필리핀에서도 보았던 나무였다. 하지만 이곳의 플루메리아에는 제대로 꽃이 피어 있는 것들이 없어서, 나중에 가보았던 닭성당 마당의 화분에 담겨 있는 꽃 사진으로 대신한다. 나중에 보니 이 플루메리아는 뜨득황릉, 응우옌 왕조의 왕릉, 티엔무 사원과 근처의 궁중음식점 등 가는 곳마다 나 여기 있어요하고 내게 알은체를 하고 있었다. (19.12.2.15. 사진 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