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재 칼럼("스포츠 한국",1972~)

『담배』 (이웅재 칼럼⑤, 국배판 월간 『스포츠 한국』72년 7월호, pp.78~79.)

거북이3 2020. 3. 29. 17:09


『담배』 (이웅재 칼럼⑤, 국배판 월간 『스포츠 한국』72년 7월호, pp.78~79.).hwp



      『담배

                                (이웅재 칼럼, 국배판 월간 스포츠 한국727월호, pp.78~79.)

 

  「이라는 말이 있다. 그와 비슷한 말에 이 있다. 때로는 이은 서로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사전적인 뜻으로도 온갖 사물의 진미(眞味)라고 한 대문이 있는가 하면, 사물에 대한 재미스러운 느낌이라고 설명한 조목이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말을 억지로라도 구별을 해 보란다면, 혀로써 느낄 수 있는 느낌이며, 그 혀로써 느끼는 맛 이외의 모든 사물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은 굉장히 넓은 뜻을 지니고 있는 한국적인 단어인 것이다. 외국어로 번역하기도 힘든 (개개의 멋에 대한 번역은 쉬우나 일반적 통념으로서의 멋이란 말에 대한 번역이 힘들다는 뜻이다.) 이 낱말은 무척 매력적인 단어라 하겠다. 이 어령 씨의 말을 빌어 본다면, 이란 일정한 격식, 특정한 경향, 그리고 일반적인 질서와 그 규칙을 깨뜨리게 될 때생긴다는 것이다. 곧 질서를 깨뜨리는 일종의 파격에서 멋은 생겨난다는 것이다.

  태초에 천지는 카오스(Chaos)(혼돈)의 상태였었다. 그것이 차츰 코스모스(Cosmos)(질서, 조화)의 상태로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질서나 조화에서 차츰 미적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코스모스꽃의 어우러진 개화(開花)를 보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 바로 그 조화에서 얻어지는 미적 감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코스모스의 꽃은 혼자 피어있는 것보다는 여럿이 어우러진 모습에서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사람들이란 아주 이상스런 존재여서, 항상 변화를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질서나 조화에서만 생겨진다고 느끼고 있던 미적 감각이라는 것이 이란 낱말과 함께 서서히 변화된 것이다. 모든 사물이 전부 질서와 조화를 가지게 될 때, 거기에서는 이미 개성이 드러나 있지 않게 되자, 희소 가치가 사라져 버리고 대신 그 질서나 조화 속에서 약간의 파격(破格)을 대하게 될 때, 거기서 어떤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생겨난 것이다. 피 천득 씨는 그의 수필에서 수필은 청자 연적이라고 하고 그 청자 연적에 그려져 있는 연 꽃잎 하나가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을 이루었을 때, 거기서 우리는 수필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은 조화에서 파격의 아름다움으로 변천해 온 것이다.

  파스칼의 팡세에 이런 귀절이 있다.

  「심심풀이란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없으면 맥이 빠질 정도로 필요한 것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가 일어날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든가, 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든가, 서러움의 자료가 없어지곤 하면 권태가 뿌리박고 있던 마음의 오저(奧底)에서 발생하는 그 독소를 가지고 전 정신을 충일하고야 만다.

  참말로 권태란 무서운 것이다. 권태란 쓸데없는 생각을 낳는다. 팡세에서는 주로 왕의 입장을 자주 들어, 자기를 위협하고 있는 재난이나, 장차 일어날 수 있는 반역이나, 나중에는 피치 못할 죽음이나 병환 등을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다고 하였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인간이란 천부적인 그 유한성으로 인해 비극적인 존재이고 보면, 권태란 자연히 자신의 비극적 상황을 하나하나 따져보게 되는 때문으로 점점 더 그 비극의 시궁창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에서의 탈출 방법이 바로 심심풀이인 것이다. 오락」「리크레이션」「여가 선용」―이 모든 현대인들의 기호품은 따지고 본다면 전부 이 심심풀이의 한 종류인데, 그것은 모두 획일화 되어가는 질서 조화에의 약간의 반역인 것이다. 인간이면 어차피 느끼게 되는 천부적인 유한성그것은 바로 그 질서의 일부분이라 할 것이니, 부여받은 질서를 풋볼 차듯 발길로 내질러 버릴 수는 없으니, 기껏 파격의 아름다움을 느낌으로써, 그 비극적 질서를 잊어버리자는 것이 바로 심심풀이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심심풀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얼마나 인간적인 것인가.

  서론이 너무 길었지만, 담배라는 것을 나는 무척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담배 무용론자들이 없는 바 아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방식의 심심풀이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만일 다른 방법의 심심풀이도 없이 담배의 무용론은 들고 나온다면, 그는 틀림없이 비관적인 인생의 측면만 계속 들여다 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그는 곧 인생에 염증을 느끼게 될 것이고, 어쩌면 그 결과로 자살이라도 감행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자살자가 속출하는 강가에 잠깐만!이라는 패말을 써 붙임으로써 수많은 자살 예정자들을 구출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닌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중에는 자살자가 적다는 통계는 또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담배를 피우는 목적은?하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서슴 없이 심심풀이로 피웁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심심풀이로 피우는 담배쯤 못 끊고 어찌 큰 일을 성취할 수 있을까?하고 묻는다면, 그대는 오늘부터라도, 심심풀이야 말로 나를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스승이라고 대답하라. 기계에 기름이 마르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듯이 심심풀이란 인생에의 윤활유요, 활력소인 것이다.

 

  「이 담배는 당신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읍니다.

  외국에서 담배갑에 인쇄한 표어라고 한다. 판매를 위한 담배에 그러한 귀절을 써 놓았다는 것도 우스운 얘기지만 그 귀절이 마음에 걸려 담배를 끊은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사람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담배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은, 살아 있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몰리에르의 쥬앙에 나오는 말이 거니와, 마아크 트웨인은 담배를 끊는 다는 것은 내가 격은 일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천 번이나 끊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담배의 효용론을 거론하기에 이른 것이다. 김 동인 씨의 연초의 효용이 그렇고, 임 어당(林語堂)생활의 발견에서도 담배를 예찬한다. 오죽하면 애연소서(愛煙小叙)를 쓴 오 상순 씨는 그 호를 공초(空超)라고까지 했을까.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몇 대의 담배를 피웠다. 담배만큼 나의 사랑을 받는 애인도 아마 드물 것 같다.

  추사 김 정희는 一読 二好色 三飮酒를 얘기했다지만, 나는 거기에다가 喫煙하나를 더 보태고 싶어진다.

  기다란 담배를 물고 가다가 타고 가야할 버스가 왔을 때, 아무 미련 없이 휙 버리고 차에 오르는 맛은 그대의 멋이 될 수 있고, 또 밤새워 친구와 다정스런 얘기를 하다가 찾아 피우는 꽁초의 맛 또한 그대로의 진미가 있는 법이다. 다방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며 성냥불을 부욱 그어대어 담배에 불을 붙이는 사람을 보라. 얼마나 으젓하고 품위가 있어 보이는가. 또는 기다리다가 지쳐서 연신 담배만 뻐끔뻐끔 빨아대는 청년을 보라.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인가. 그만큼 담배는 그 사람의 감정 자체를 우리에게 솔직하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손가락 사이로 타 들어가는 담배 연기, 재털이 위에서 기다란 재를 매달고 그대로 꺼져 버린 담배의 모습, 이마에 굵은 주름을 잡으며 지그시 담배를 피워문 중년 신사의 표정어찌 담배를 유해하고 무용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때로는 담배 한 가치가 귀중한 군대 졸병시절에 사무실 군데 군데 놓여 있는 장교들의 재털이를 가리켜 사병복지센터라고 명명했던 옛 기억이 새로와진다. 식후 불연이면 소화불량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담배는 우리와 인연을 깊게 하고 있다.

전매 수입을 올려주자는 얘기는 아니다. 천천히 담배를 피우며 사색에 젖어 들 수 없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자는 말이다. 좀더 인생의 맛을 알고, 생활의 멋을 기르자는 것이다.

  현대처럼 삭막한 세상에서, 요즘같이 각박한 현실에서 그러한 마음의 여유, 그러한 인생의 맛, 그러한 생활의 멋을 지니고 살아가자. 그러면 우리에게는 좀더 아름다운, 좀더 풍요로운 미래가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맞아줄 것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필자:경성중고등학교 교사>

 

2020.3.29.입력. 원고지 22.

말 할 수, 수 밖에, 획일화 되어가는, 심심풀이야 말로, 큰 일, 말이 거니와, 끊는 다는과 같은 띄어쓰기가 잘못된 것들은 편집자의 잘못이라 생각되고,

구절, 재털이, 있읍니다, 새로와진다와 같은 표기는 당시의 맞춤법에 따른 현상이라고 보인다.

격은(겪은)’과 같은 맞춤법의 잘못도 편집자의 잘못으로 보이고,

서슴 없이, 틀림 없을, 군데 군데와 같은 띄어쓰기의 잘못은 어느 쪽이 잘못한 것인지를 구분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이다.

배가된다고 생각된다와 같은 2중 피동은 필자의 책임임이 분명하다.

 

거의 끝 분분쯤에 나오는사색에 젖어 들 수 없는에서의 없는있는이라야 할 것인데, 글쎄,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중에는 자살자가 적다는 통계는 또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라 했는가 하면, 심심풀이로 담배를 피운다면서 그 심심풀이란 인생에의 윤활유요, 활력소인 것이라는 억지를 부린 것을 보면, 당시의 나는 누가 무어라 해도 담배 예찬론자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한 담배를 나는 40여 년 넘게 피우다가, 20043월경 끊은 모양이었다. 훨씬 뒤에 쓴 내 글,“. 금강산 기행을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잘 끊었다.


『담배』 (이웅재 칼럼⑤, 국배판 월간 『스포츠 한국』72년 7월호, pp.78~79.).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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