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房(이웅재 칼럼⑨, 월간 『스포츠 한국』72년 11월호, pp.78~79.).hwp
☆茶房
(이웅재 칼럼⑨, 월간 『스포츠 한국』72년 11월호, pp.78~79.)
「녜? 녜. 7시까지 ○○다방으로 나오라구요? 녜, 알았읍니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다방은 상식(常識)이다. 현대인의 상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사가 되려면, 숙녀가 되려면, 누구나 포켓 속에, 아니면 핸드백 속에 몇 개의 다방 전화 번호가 적혀 있는 수첩 하나쯤은 휴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걸 숫제 머리속에 집어넣고 무슨 시험 예상 문제처럼 달달 외우는 천재들(?)도 허다하다. 참으로 놀라운 실력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새로 이사 간 제 집의 번지수는 몰라도, 옛날 중국의 어떤 멀건이처럼 이사 갈 때, 마누라를 잊고 간다든지, 아예, 제가 이사갈 걸 잊어버리는 수는 있더라도 다방의 전화 번호만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무슨 신주(神主) 모시듯이 말이다. 그래서 다방은 현대인의 성지(聖地), 현대인의 종교로 군림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그래도 자기 자신을 타인과 연결시켜 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 다방이고 보면, 마냥 다방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방이 없으면, 아니 다방에 드나들지 않으면, 그는 타인들과 연결되어 있는 그 실오라기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록 위선에 가득찬 대인 관계인 세상에서일지라도 모든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원한다. 사실, 미워할 수 있고, 타기할 수 있는 상대라 하더라도, 곁에 있어 주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모두 자기 껍질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햇빛도 쐬지 못한 채, 영양 실조에 걸려, 마치 쟈코메티의 그 콩나물을 닮은 인간의 동상(銅像)과 같아질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방이란 현대 사회의 필수적 존재로 되어버린 것이다. 옛날엔 궁중에 큰 연회가 있을 때 다주(茶酒)와 다과(茶菓)를 공급하던 그 상류 사회의 기호물이 시대에 따라 이젠 대중화, 민주화해 버린 것이다.
원래 차(茶)란 것은, 풀 초(竹) 밑에 사람 인(人) 자 하고, 나무 목(木) 자를 쓴 것으로 보아 사람이 풀이나 나뭇잎을 달여서 먹는 것을 나타내 주는데, 사학자 문 일평(文一平) 씨의 호암전집(湖岩全隻)을 보면, 벌써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중국에서 전래, 그 성행은 그로부터 180여년 후인 흥덕왕(興德王) 3년(828)에 대렴(大廉)이 당에서 차종(茶種)을 가져다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이후부터라고 한다. 신라인들 중에서는 주로 승려 계급에서 애호되었고, 고려에서는 속간(俗間)에 유행되었으나 그때에도 물론 특권층의 애호물이었는데, 이조에 들어와서는 점점 차를 멀리하여 차 마실 줄 모르더니, 오늘날에 와서는 다시 대중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원래부터 차를 마시는 법도는 있었으나, 그것이 사라져 갔다가 그후 세계의 열강들이 우리 나라에 침을 흘리게 될 때부터 다시 차 마시는 법은 부활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니, 차란 외로울 때, 괴로울 때 마시는 것이었던가!
임어당(林語当)의 「생활의 발견」에서 보면,「혼자서 차를 마시면 이속(離俗)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둘이서 마시면 한적(閑適)이라고 일컬어지며, 세 명이나 네 명이 함께 마시면 유쾌하다고 말해지고, 대여섯 명이 마시면 저속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고, 일곱 명이나 여덟 명이 어울려 마시면, 경멸하는 뜻에서 박애(博愛)라 불리워지게 마련이다」고 했으니, 조용히 혼자 마시는 차는 명상에도 좋지만, 세상사가 귀찮아질 때, 이속(離俗)하고픈 생각에서 마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방이란 이렇게 일종의 휴게실로서의 의미를 가졌는가 하면, 젊은 남녀들의 밀회 장소로서도 매우 적합한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얼굴만 서로 쳐다보아도 배고프지 않은 마음이 가득 차 있을 때」이니, 단 둘이 마주 앉아 서로 눈싸움이라도 하면서, 혹은 나란히 앉아 사랑하는 이의 그 보드라운 손을 만지작거리는 즐거움, 그 손길 아래로 느껴지는 감미로운 살결의 감촉을 만끽하면서 즐기는 밀회, 인생에 그러한 맛도 없어서야 무슨 재미로 살아갈 것이랴!
「 사랑과 스캔들은 차의 최상의 감미료이다」라고 H.피일딩도 「여러 개의 마스크를 쓴 사람」에서 말했다.
차라면 여러가지 종류가 있겠으나 우리들의 머릿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코오피」이리라. 그 시꺼멓고 쓰디쓴 맛에 질겁을 하던 우리가 미군 진주 이래 그 맛을 조금씩 보기 시작하더니 이젠 아예 차의 대명사로 사용하여 다방을 「코오피 하우스」로까지 부르고 있는 것이다.
「코오피는 감수성, 다시 말해서 주의력을 예민하게 한다. 판단력을 발달시키고 활동력을 고무시킨다. 그리고 창작력을 자극한다. 새로운 생각이 차례차례 떠 오르지만 그 생각을 되풀이해서 다시 생각하는 신중성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죽음 따위는 물론 달아나 버린다.」고 모레쇼트는 말한다.
조용하게 혼자 다방에 앉아 있노라면 정말 모레쇼트의 말이 진실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뚜우우-」 뱃고동 소리라도 들으면서 이별의 장(章)을 펼치고, 남은 시간을 홀로 앉아 추억을 열심히 만들다가 「이제 폐점 시간이 되었읍니다.」말하는 레지의 목소리에 찻잔 속에 고요히 침잠된 사념을 들어 아쉬운 듯 마셔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진미를 모른다고 말한대서 지나친 억설이라고 할까.
때로는 사업가들의 상담(商談) 장소로, 또 때로는 아유자(阿諛者)들의 아첨의 장소, 뇌물증여의 장소, 끔찍한 범죄 예약의 장소에서 인질극의 대표적인 공포의 장소로서 이용되지 않는 바 아니지만, 어찌 그러한 이유로 해서 다방을 반대할 용기가 생기랴!
「 코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코오피 찻잔보다 더 검은 얼굴로서 최후의 심판날을 마지하게 될 것이다.」라고 외친 코오피를 반대하던 영국 승려들의 말은 잊어도 된다. 그 말은 이젠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밖에 없는 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구상(構相)의 장소, 연락의 장소, 세태 연구의 장소의 의미에다가 시간이 길어서 주체할 수 없는 자들의 타임‧머신과 같이 시간을 흘려 보낼 수 있는 장소이며, 집으로 모셔가기 힘든 손님들을 맞아 대화의 가교를 놓을 수 있는 간이 응접실 용도까지 겸하게 되는가 하면, 서로 이름만 알고 얼굴을 모르는 야릇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곳도 되고, 심지어는, 급한 사람들이 「지금 변소」로(거꾸로 읽어서)에는 갈 수 없어 헐레벌떡 뛰어들어 시원스레 용무를 마치고는 미안한 김에 코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몇 분 동안 자리를 지켜주는 장소도 되는 것이다.
그뿐인가? 음악 감상실로 애용되기도 하고, 일 없는 사람들의 놀이터로도 되고 선을 보기 위한 쑥스러운 장소도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약혼 장소로서 전세를 내어 하루쯤 사용해 볼 만도 하다. 해프닝식으로 말이다. 자리에 앉아 있던 손님들을 정중히 모시고, 「지금부터 ××군과 ○○양의 약혼식이 있겠습니다.」뮤직 박스에서 어나운스멘트가 있고, 약혼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한 곡 틀면서, 즉석 손님들에게 O.B 맥주나 한 병씩 써비스하곤 간략하게 식을 마친 후, 약혼자들은 정답게 팔짱 끼고 퇴장, 대기했던 택시로 사라지면, 얼마간 얼떨떨했던 손님들은 하나 둘 제 볼 일 찾아 다방 문을 나설 것이고, 그들은 카운터를 지날 때, 그 계산대 앞쪽에 별로 클 필요는 없지만 밉지 않은 글씨로, 「오늘 요금은 안 받습니다.」라는 표지를 보고,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손을 뽑으면서, 「무척 행복해지라구.」 속으로 축하하며 빙긋이 웃고 나간다면, 그거 얼마나 좋은, 훌륭한 약혼식일 것이냐.
누군가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모가지가 늘어날 때쯤엔, 레지들의 그 미끈한 종아리의 곡선이라도 감상하면 되고, 그래도 지루해지면, 혹시 그 사람, 왔다간 건 아닐까 메모꽂이에 가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그 멋진 장편(掌篇) 사설들을 훑어볼 수도 있쟎은가?
「3분 기다리다 4분 늦을 당신을 못 만나고 먼저 실례합니다.」「왔었노라, 5분 전에. 기다렸노라, 35분 동안. 그리고 가노라, 12시 30분에.」 그래도 그 정도는 아직 뱃짱을 부릴 능력이 없는 자들이고, 「쳇! 내가 어디 당신 만나러 왔었던 줄 아세욧! 당신이 날 보구프댔으니까 나왔었지.」하는 발뺌식 변명이 그 또한 재미 있지 아니한가? 「저, 절, 절교!」라는 건 「저절(로) 절교」에서 잘못 해서 “로”자가 빠져버린 것은 아니렸다?
「무슨 차로 드릴까요?」
「차(茶)는 무슨 차(車), 아침부터 기운이 있어야지 차를 들지.」 싱거운 사람들도 있지만, 다방은 궁정에서 시작해서, 대중화 되어 왔고, 이제는 너무 흔해져서 가끔 지나친 상혼(商魂)이 튀어 나오는 것이 좀 서글프다고나 할까.
이 희승씨의 「다방」이란 시를 보자.
『커피 한 잔, 엽차 석 잔에 온 하루 세 얻어도 좋은 거리의 응접실/ 어느 손님이나 거부할 줄 모르는/ 인심이 한없이 너그러운 지대/ 밀수품의 처분도 여기에서/ 탈세의 「빠게인」도 여기에서/ 건곤일척(乾坤一擲)!/ 정상배의 거래도 여기에서/ 가다가는 애정의 선을 디디고 넘어/ 일생의 운명을 흥정하는 자유 시장/ 나체보다 투명한 매끄러운 각선/ 하이힐에 얹혀 맴도는 「레지」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방에 들어서면 꽃을 볼 수 있었다. 때로는 시들어 빠진 꽃이라도. 그래도 그것은 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화(仮化) 조각만 제 세상 만난 듯하다니……세상이 그토록 삭막해졌단 말인가, 이제는 다방이 그만 생겨도 좋겠다. 그리고 사람의 체온보다 ±25°의 커피맛을 내기에나 신경을 써 주었으면. 역시 커피 맛은 커피 보틀에서 끓인 것보다 남비 커피가 제격이다.
쌉싸름한 그 맛은 꼭 11월의 향기, 가는 1년을,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우리 다방에 들려 오손도손 커피맛이나 보자.
※2020.3.22.입력. 원고지 25매.
지금 보니, 1970년대의 다방은 이런 곳이었구나 하는 새로운 감회를 느끼게도 하는 글이란 생각입니다.
‘풀 초(竹)’에서 ‘艸’가 아닌 ‘竹’으로,‘호암전집(湖岩全隻)’에서 ‘集’이 아닌 ‘隻’으로, ‘가화(仮化)’에서 ‘花’가 아닌 ‘化’로,‘구상(構相)’에서 ‘想’이 아닌 ‘相’으로 한자 표기가 잘못된 점은 편집자의 잘못으로 여겨지며,
‘우리 나라’,‘머릿 속에’,‘흘려 보낼’‘재미 있지’등이 띄어져 있는 것과 ‘여러가지’가 붙여져 있는 점 등은 아마도 필자의 잘못이었을 가능성이 많고,
‘있쟎은가?’,‘되었읍니다’,‘써비스’‘뱃짱’, ‘오손도손’등은 당시의 표기를 따랐기 때문으로 보이고,
‘마지하게 될 것이다’, ‘아니렸다?’는 편집자의 실수로 보이며,
‘이조에 들어와서는’의 ‘이조’라는 표현은 당시에 많이 사용하던 표현이라서 필자가 무의식적으로 쓴 것 같고,
‘코오피’와 ‘커피’란 표기가 함께 이루어져 있는 점은 누구의 잘못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웅재 칼럼("스포츠 한국",1972~)'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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