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재 칼럼("스포츠 한국",1972~)

소식 (이웅재 칼럼⑫, 월간 『스포츠 한국』73년 3월호, pp.78~79.)

거북이3 2020. 7. 2. 16:37
20.7.1소식(이웅재 칼럼⑫, 월간 『스포츠 한국』73년 3월호, pp.78~79.).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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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이웅재 칼럼⑫, 월간 『스포츠 한국』73년 3월호, pp.78~79.) 사람들은 누구나 소식을 좋아한다. 소식이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마력(魔力)이 있는 것일까. 어렸을 때, 집 앞을 지나치고 있는 우체부 아저씨를 보면, 웬일인지 가슴이 설레며 혹시 내게도 한 장의 편지쯤 전해주고 갈른지도 모른다는 부푼 기대를 품어보곤 했던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경험은 아니었으리라. 조금 자란 다음에도 그러한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편지요―.」 얼마나 반가운 소리였던가. 가슴 속 모든 환희가 일시에 생동하게 만들어 주던 그 화안한 소리. 누구에게설까 하는 그 아기자기한 궁금증. 내게도 편지가 온다는 가슴 뿌듯한 충만감. 그것이 전해줄 미지의 사연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감. 해서 우체부 아저씨는 「고마운」우체부 아저씨로 불리우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기쁜 일로만 꽉 차 있을 수는 없다. 게다가 현실이란 우리들과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좀처럼 어떤 감흥을 안겨주기가 어렵다. 그러니 우리는 자연 자신을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현실에서, 무언가 탈출구를 찾아 비약해 보려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이다. 우연히 어떤 좋은 일이 나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대체로 그것은 하나의 공상이 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것. 어디선가, 누군가가 내게 가져다 줄 행복을 공상 속에서나마 놓치고 싶지 않고, 그것이 마음의 어느 한 구석을 영원히 차지해 버리고 말게 되는 것이다. 소식을 반기는 것은 바로 그 잠재의식이 빼꼼히 고개를 쳐드는 것, 조금도 탓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바람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할 것이랴! 옛날부터 우리의 부모님들은 「속으면서」 한세상을 살아나온 것이다.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하는 그 내일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 속에서 머리칼 한 오라기를 희게 물들이면서, 백발이 성성해지도록 끈기 있게 잘도 참으면서 살아온 것이다. 대륙의 한 귀퉁이에 약소 민족으로서 지내면서도 그 내일에의 기대로 말미암아 반만년이란 오랜 세월을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치욕에 몸을 떨면서도 끈기있게 역사를 지켜온 것이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다른 나라의 어머니들보다 빨리 늙는다. 하지만 다른 어떤 나라의 어머니들보다도 그 모성은 강인하다. 조그맣고 가난한 나라, 가난하기에 더욱 흩어져서 살기 힘들었던 것이고, 대가족이 살고 있는 시집에 가서는 그 집대로의 경제적, 사회적 구조인 가통을 따라야 했던 것인데, 낯선 가통이 처음부터 익숙할 리는 없어 출가해서 3년간은 벙어리요, 귀머거리요, 장님으로 지내야만 했던 그 슬픈 개인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마음껏 울고 싶을 때도 울 수가 없는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서 불을 지피면서 반은 연기 때문이고, 반은 슬픔 때문인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고, 그 눈물 자국이 보일세라 행주치마로 꼭꼭 눈물을 찍어내다 보니, 행주치마는 마를 새 없고 치맛단이 눈물로 해서 썩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자니 주름살은 어째 볼 도리없이 늘어가게 되는 것, 삼종지도의 마지막, 아들놈에게 대한 기대 하나뿐으로 참으며 참으며 그 숱한 나날을 주름살을 파면서 살아온 것이다. 消息의 한자를 풀어보면 「水(氵)小月 自心」이 된다. 「물가에 작은 달(상현이나 하현이겠지)이 비칠 때 홀로(自) 서서 한없는 생각(心)을 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 말이다. 즉 고독한 상태에서의 기다림을 바라는 낱말이 「消息」이란 어휘인 것이다. 「작은 달」은 앞으로 둥글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나타내 준다. 그러니까 어떤 가능성을 바라면서 기다리는 것이 소식인 것이다. 인생은 따지고 보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을 위해서 끈기있게 기다리는 우리의 조상, 우리의 어머님들은 우리의 역사를 끈질기게 지켜온 것이다. 고독하게, 그러나 내일의 가능성을 위해서 이렇게 오늘날까지 버텨 온 것이다. 소식이란 고독하기에 기다리는 것이다. 세상에 그 하고많은 사람들, 그들 속에서 지내려면 그들과의 계속적인 관계 유지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속에는 그래서보이지 않는 줄이 굉장히 많은 것이다. 여기 저기 연결되어 있는 그 관계의 줄(線)에 의해서 「나」라는 존재는 사회 밖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편지가 온다는 것은, 소식이 찾아 준다는 것은 나에게 또 하나의 대사회적인 줄이 연결된다는 것이고, 그만큼 사회속에 적응되어 간다는 의미를 띄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세상에는 관계의 줄로 미만(彌滿)되어 있는 것이다. 소리란 音波로 되어 있고, 전기는 電波로, 빛은 光波로 되어 있다. 그 波란 것은 일종의 줄(線)인 것이다. 우리의 思考란 것은 腦波(텔레파시) 작용에 의한다고 한다. 쌍동이의 뇌파는 서로 비슷해서, 어느 한 쪽이 아픔을 느낄 때, 다른 한 쪽도 그 아픔을 함께 느낀다는 신비스러운 얘기들을 우리는 가끔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오늘은 집에서 무슨 일이 꼭 벌어졌을 것이라는 이상한 영감(貢感)에 사로잡히는 때가 있다. 그것도 뇌파의 작용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젼의 싸이클을 맞춰 전파를 잡음으로써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 사람들의 뇌파의 싸이클을 맞출 수 있는 기계 장치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는 알고 싶은 상대방의 마음 속을 손쉽게 파악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쨌든 세상은 선과 선의 복합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관계의 줄을 하나하나 끊어버리면 우리는 갑자기 「던져진 물체」로서 남는다. 실존주의에서 얘기하는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고독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그러한 자유를 양 손에 거머쥔 채 지나친 풍경은 바라볼 수 있지만 앞에 펼쳐질 일들은 알아볼 수 없는 역사라는 고속 도로 속을 혼자서 달려야하는 고독. 그건 우릴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고, 두려움을 느끼게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런것을 느꼈을까. 「고독을 사랑하는 자는 야수든가 아니면 신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야수라면 인식의 과정을 지니고 있지 않으니 괜찮을 테고, 신이라면 전지전능하니까 고독하다 해도 자신의 일은 자신이 처리할 수가 있으리라. 우리들의 선조들도 가끔 가다 사회가 불안하다던가 하는 이유로해서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속세에서의 관계의 줄을 끊고 부정과 부패와 이별을 하겠다는 그 생각들은 때에 따라서 옳을는지도 모른다. 柴扉에 개 즛난다(짖는다) 이 山林에 그 뉘 오리? 댓닙 푸른 대 봄ㅅ새 울(우는) 소리로다. 아헤야, 날 推尋오나든(오거든) 採薇가다(고사리를 캐러 갔다고) 해여라. 「介蛬集」에 실려 있는 介蛬 姜 翼의 시조 一首다. 사회의 그 관계의 줄을 모두 끊고 淸風明月을 벗삼아 山村으로 들어가 유유자적하는 그의 생활 태도는 어쩌면 부럽기까지 하다. 혹시 자기를 찾아오는 어떤 손님이 있으면 채미 갔다고 하라는 그의 말은 세속에 어떠한 관계의 줄도 원하지 않는다는 탈속한 마음이 아닌가? 신에게로 접근하는 깨끗한 선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바로 그러한 생각은 신선 사상과도 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해서 우리 선조들은 즐겨 도학을 찾지 않았던가? 그런 은근한 멋과 맛, 그것은 또한 우리 민족의 특성 중 하나가 아닌가?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그런 소극적인 은근함에서 떨쳐 일어나야 할 때다. 「처용가」에 보이는 그 「체념」의 사상을 불식하고, 「홍길동전」에 보이는 그 혁신 사상을 가지고 조국 근대화의 과업, 유신의 과업을 완수할 때가 된 것이다. 좀더 적극적인 생활 태도를 가지자. 편지야 너 오느냐, 네 임자는 못 오드냐. 長安道上 넓은 길에 오고가기 너뿐일까. 日後란 너 오지 말고 네 임자만 오래라. 지은이 미상의 시조다. 소식을 바란다는 것은 사회 속에서 「관계의 줄」을 가지겠다는 「자기 인정감」의 잠재적 의식의 표출이라 본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연한 기다림일 뿐만 아니라, 대사회 관계에서 도피해 가는 소극적인 사고 방식보다는 훨씬 바람직한 적극적인 사고 방식이라 믿어진다. 그런데 그러한 사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행동 체계로서 정립한다는 것은 얼마나 환영할 만한 일인가. 편지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편지의 주인공인 임이 오기를 바란다는 그 실명씨의 시조는 「恋歌」로서도 격조가 높은 것이지만, 생활 철학으로서도 본받을 만한 마음의 표출이 아닌가?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희망을 가지고 적극적인 생활을 하자.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듯 즐거운 마음으로 내일의 삶을 맞아들이자.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다. 해보지도 않고 체념하는 자세는 구세대의 유물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지나친 自制를 불식하고, 용기와 자신을 가지고 모든 일에 임하는 참신한 생활 태도를 가지도록 하자. ※2020.7.1.입력. 원고지 23매. ※‘갈는지도’가 표준인데, 필자와 편집자 누구의 잘못인지 모르겠다. 필자의 경우, 최근에는 ‘-는지’를 ‘-른지’로 표현하는 일은 없지만, 당시에는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불리우게’의 2중 피동은 필자의 잘못된 버릇에서 비롯된 잘못이리라. ‘것이다’의 남용은 이미 몇 차례 언급한 바가 있는 필자의 좋지 못한 습관이었다. ‘약소 민족’을 띄어 쓴 것, 반대로 “끈기있게”와‘도리없이’를 붙여 쓴 것도 필자의 잘못으로 보인다. ‘사회속에는’,‘그래서보이지’를 붙여쓴 것은 아마도 편집자의 실수로 보이고, ‘여기 저기’를 띄어 쓴 것은 당시의 관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띄고’를 ‘띠고’라 쓰지 못한 것은 필자의 실수임이 틀림없다. ‘쌍동이’를 “쌍둥이”로 표기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당시의 표기법을 따른 것이 아닐까 싶다. ‘영감(靈感)을 약자로 쓴 ’灵感’이 ‘頁感(혈감)’으로 된 것은 누가 보아도 편집자의 실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텔레비전’을 ‘텔레비젼’이라고 쓴 것이나 ‘사이클’을 ‘싸이클’로 표기한 것, ‘마음 속’을 붙여 쓰지 않고 띄어 쓴 것 등은 당시의 일반적 표기를 따른 때문으로 보인다. ‘고속 도로’를 띄어쓴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에 처음으로 개통된 것이므로 당시로서는 아직 맞춤법상 붙여 쓰도록 되기 전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달려야하는’과 ‘그런것’을 붙여 쓴 것은 편집자의 잘못일 터이다. ‘불안하다든가’가 아닌 ‘불안하다던가’로 표기한 것은 필자의 잘못이요, ‘이유로해서’를 붙여 쓴 것과 ‘푸른 대’를 띄어 쓴 것은 분명 편집자의 실수다. ‘介蛬集’, 介蛬,은 ‘介庵集’과 ‘介庵’의 잘못으로 편집자의 실수요, ‘벗삼아’를 붙여 쓴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姜 翼’을 띄어 쓴 것은 당시의 표기를 따른 때문이다. ‘편지야~오래라’까지의 시조를 한 행씩 띄어서 구분하지 않은 것은 분명 편집자의 실수일 터수요, ‘사고 방식’을 띄어 쓴 것은 필자의 잘못된 습관 때문이라 여겨진다. ‘한걸음’을 붙여 쓴 것은 다시 편집자에게 그 잘못을 물을 일이다. ※다음은 밑줄 친 부분에 대한 설명도 함께 볼 수 있도록 2단으로 배열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소식을 좋아한다. 소식이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마력(魔力)이 있는 것일까. 어렸을 때, 집 앞을 지나치고 있는 우체부 아저씨를 보면, 웬일인지 가슴이 설레며 혹시 내게도 한 장의 편지쯤 전해주고 갈른지도 모른다는 부푼 기대를 품어보곤 했던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경험은 아니었으리라. 조금 자란 다음에도 그러한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편지요―.」 얼마나 반가운 소리였던가. 가슴 속 모든 환희가 일시에 생동하게 만들어 주던 그 화안한 소리. 누구에게설까 하는 그 아기자기한 궁금증. 내게도 편지가 온다는 가슴 뿌듯한 충만감. 그것이 전해줄 미지의 사연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감. 해서 우체부 아저씨는 「고마운」우체부 아저씨로 불리우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기쁜 일로만 꽉 차 있을 수는 없다. 게다가 현실이란 우리들과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좀처럼 어떤 감흥을 안겨주기가 어렵다. 그러니 우리는 자연 자신을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현실에서, 무언가 탈출구를 찾아 비약해 보려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이다. 우연히 어떤 좋은 일이 나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대체로 그것은 하나의 공상이 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것. 어디선가, 누군가가 내게 가져다 줄 행복을 공상 속에서나마 놓치고 싶지 않고, 그것이 마음의 어느 한 구석을 영원히 차지해 버리고 말게 되는 것이다. 소식을 반기는 것은 바로 그 잠재의식이 빼꼼히 고개를 쳐드는 것, 조금도 탓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바람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할 것이랴! 옛날부터 우리의 부모님들은 「속으면서」 한세상을 살아나온 것이다.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하는 그 내일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 속에서 머리칼 한 오라기를 희게 물들이면서, 백발이 성성해지도록 끈기 있게 잘도 참으면서 살아온 것이다. 대륙의 한 귀퉁이에 약소 민족으로서 지내면서도 그 내일에의 기대로 말미암아 반만년이란 오랜 세월을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치욕에 몸을 떨면서도 끈기있게 역사를 지켜온 것이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다른 나라의 어머니들보다 빨리 늙는다. 하지만 다른 어떤 나라의 어머니들보다도 그 모성은 강인하다. 조그맣고 가난한 나라, 가난하기에 더욱 흩어져서 살기 힘들었던 것이고, 대가족이 살고 있는 시집에 가서는 그 집대로의 경제적, 사회적 구조인 가통을 따라야 했던 것인데, 낯선 가통이 처음부터 익숙할 리는 없어 출가해서 3년간은 벙어리요, 귀머거리요, 장님으로 지내야만 했던 그 슬픈 개인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마음껏 울고 싶을 때도 울 수가 없는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서 불을 지피면서 반은 연기 때문이고, 반은 슬픔 때문인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고, 그 눈물 자국이 보일세라 행주치마로 꼭꼭 눈물을 찍어내다 보니, 행주치마는 마를 새 없고 치맛단이 눈물로 해서 썩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자니 주름살은 어째 볼 도리없이 늘어가게 되는 것, 삼종지도의 마지막, 아들놈에게 대한 기대 하나뿐으로 참으며 참으며 그 숱한 나날을 주름살을 파면서 살아온 것이다. 消息의 한자를 풀어보면 「水(氵)小月 自心」이 된다. 「물가에 작은 달(상현이나 하현이겠지)이 비칠 때 홀로(自) 서서 한없는 생각(心)을 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 말이다. 즉 고독한 상태에서의 기다림을 바라는 낱말이 「消息」이란 어휘인 것이다. 「작은 달」은 앞으로 둥글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나타내 준다. 그러니까 어떤 가능성을 바라면서 기다리는 것이 소식인 것이다. 인생은 따지고 보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을 위해서 끈기있게 기다리는 우리의 조상, 우리의 어머님들은 우리의 역사를 끈질기게 지켜온 것이다. 고독하게, 그러나 내일의 가능성을 위해서 이렇게 오늘날까지 버텨 온 것이다. 소식이란 고독하기에 기다리는 것이다. 세상에 그 하고많은 사람들, 그들 속에서 지내려면 그들과의 계속적인 관계 유지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속에는 그래서보이지 않는 줄이 굉장히 많은 것이다. 여기 저기 연결되어 있는 그 관계의 줄(線)에 의해서 「나」라는 존재는 사회 밖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편지가 온다는 것은, 소식이 찾아 준다는 것은 나에게 또 하나의 대사회적인 줄이 연결된다는 것이고, 그만큼 사회속에 적응되어 간다는 의미를 띄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세상에는 관계의 줄로 미만(彌滿)되어 있는 것이다. 소리란 音波로 되어 있고, 전기는 電波로, 빛은 光波로 되어 있다. 그 波란 것은 일종의 줄(線)인 것이다. 우리의 思考란 것은 腦波(텔레파시) 작용에 의한다고 한다. 쌍동이의 뇌파는 서로 비슷해서, 어느 한 쪽이 아픔을 느낄 때, 다른 한 쪽도 그 아픔을 함께 느낀다는 신비스러운 얘기들을 우리는 가끔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오늘은 집에서 무슨 일이 꼭 벌어졌을 것이라는 이상한 영감(貢感)에 사로잡히는 때가 있다. 그것도 뇌파의 작용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젼의 싸이클을 맞춰 전파를 잡음으로써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 사람들의 뇌파의 싸이클을 맞출 수 있는 기계 장치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는 알고 싶은 상대방의 마음 속을 손쉽게 파악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쨌든 세상은 선과 선의 복합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관계의 줄을 하나하나 끊어버리면 우리는 갑자기 「던져진 물체」로서 남는다. 실존주의에서 얘기하는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고독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그러한 자유를 양 손에 거머쥔 채 지나친 풍경은 바라볼 수 있지만 앞에 펼쳐질 일들은 알아볼 수 없는 역사라는 고속 도로 속을 혼자서 달려야하는 고독. 그건 우릴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고, 두려움을 느끼게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런것을 느꼈을까. 「고독을 사랑하는 자는 야수든가 아니면 신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야수라면 인식의 과정을 지니고 있지 않으니 괜찮을 테고, 신이라면 전지전능하니까 고독하다 해도 자신의 일은 자신이 처리할 수가 있으리라. 우리들의 선조들도 가끔 가다 사회가 불안하다던가 하는 이유로해서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속세에서의 관계의 줄을 끊고 부정과 부패와 이별을 하겠다는 그 생각들은 때에 따라서 옳을는지도 모른다. 柴扉에 개 즛난다(짖는다) 이 山林에 그 뉘 오리? 댓닙 푸른 대 봄ㅅ새 울(우는) 소리로다. 아헤야, 날 推尋오나든(오거든) 採薇가다(고사리를 캐러 갔다고) 해여라. 「介蛬集」에 실려 있는 介蛬 姜 翼의 시조 一首다. 사회의 그 관계의 줄을 모두 끊고 淸風明月을 벗삼아 山村으로 들어가 유유자적하는 그의 생활 태도는 어쩌면 부럽기까지 하다. 혹시 자기를 찾아오는 어떤 손님이 있으면 채미 갔다고 하라는 그의 말은 세속에 어떠한 관계의 줄도 원하지 않는다는 탈속한 마음이 아닌가? 신에게로 접근하는 깨끗한 선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바로 그러한 생각은 신선 사상과도 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해서 우리 선조들은 즐겨 도학을 찾지 않았던가? 그런 은근한 멋과 맛, 그것은 또한 우리 민족의 특성 중 하나가 아닌가?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그런 소극적인 은근함에서 떨쳐 일어나야 할 때다. 「처용가」에 보이는 그 「체념」의 사상을 불식하고, 「홍길동전」에 보이는 그 혁신 사상을 가지고 조국 근대화의 과업, 유신의 과업을 완수할 때가 된 것이다. 좀더 적극적인 생활 태도를 가지자. 편지야 너 오느냐, 네 임자는 못 오드냐. 長安道上 넓은 길에 오고가기 너뿐일까. 日後란 너 오지 말고 네 임자만 오래라. 지은이 미상의 시조다. 소식을 바란다는 것은 사회 속에서 「관계의 줄」을 가지겠다는 「자기 인정감」의 잠재적 의식의 표출이라 본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연한 기다림일 뿐만 아니라, 대사회 관계에서 도피해 가는 소극적인 사고 방식보다는 훨씬 바람직한 적극적인 사고 방식이라 믿어진다. 그런데 그러한 사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행동 체계로서 정립한다는 것은 얼마나 환영할 만한 일인가. 편지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편지의 주인공인 임이 오기를 바란다는 그 실명씨의 시조는 「恋歌」로서도 격조가 높은 것이지만, 생활 철학으로서도 본받을 만한 마음의 표출이 아닌가?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희망을 가지고 적극적인 생활을 하자.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듯 즐거운 마음으로 내일의 삶을 맞아들이자.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다. 해보지도 않고 체념하는 자세는 구세대의 유물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지나친 自制를 불식하고, 용기와 자신을 가지고 모든 일에 임하는 참신한 생활 태도를 가지도록 하자. ‘갈는지도’가 표준인데, 필자와 편집자 누구의 잘못인지 모르겠다. 필자의 경우, 최근에는 ‘-는지’를 ‘-른지’로 표현하는 일은 없지만, 당시에는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불리우게’의 2중 피동은 필자의 잘못된 버릇에서 비롯된 잘못이리라. ‘것이다’의 남용은 이미 몇 차례 언급한 바가 있는 필자의 좋지 못한 습관이었다. ‘약소 민족’을 띄어 쓴 것, 반대로 “끈기있게”와‘도리없이’를 붙여 쓴 것도 필자의 잘못으로 보인다. ‘사회속에는’,‘그래서보이지’를 붙여쓴 것은 아마도 편집자의 실수로 보이고, ‘여기 저기’를 띄어 쓴 것은 당시의 관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띄고’를 ‘띠고’라 쓰지 못한 것은 필자의 실수임이 틀림없다. ‘쌍동이’를 “쌍둥이”로 표기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당시의 표기법을 따른 것이 아닐까 싶다. ‘영감(靈感)을 약자로 쓴 ’灵感’이 ‘頁感(혈감)’으로 된 것은 누가 보아도 편집자의 실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텔레비전’을 ‘텔레비젼’이라고 쓴 것이나 ‘사이클’을 ‘싸이클’로 표기한 것, ‘마음 속’을 붙여 쓰지 않고 띄어 쓴 것 등은 당시의 일반적 표기를 따른 때문으로 보인다. ‘고속 도로’를 띄어쓴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에 처음으로 개통된 것이므로 당시로서는 아직 맞춤법상 붙여 쓰도록 되기 전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달려야하는’과 ‘그런것’을 붙여 쓴 것은 편집자의 잘못일 터이다. ‘불안하다든가’가 아닌 ‘불안하다던가’로 표기한 것은 필자의 잘못이요, ‘이유로해서’를 붙여 쓴 것과 ‘푸른 대’를 띄어 쓴 것은 분명 편집자의 실수다. ‘介蛬集’, 介蛬,은 ‘介庵集’과 ‘介庵’의 잘못으로 편집자의 실수요, ‘벗삼아’를 붙여 쓴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姜 翼’을 띄어 쓴 것은 당시의 표기를 따른 때문이다. ‘편지야~오래라’까지의 시조를 한 행씩 띄어서 구분하지 않은 것은 분명 편집자의 실수일 터수요, ‘사고 방식’을 띄어 쓴 것은 필자의 잘못된 습관 때문이라 여겨진다. ‘한걸음’을 붙여 쓴 것은 다시 편집자에게 그 잘못을 물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