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문예지 "한국작가",2020.가을호,pp.32~33.
그 이름, 영원히 남겠지
이 웅 재
금강산과 첫 대면을 했을 때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바람에 길이 막혀 구룡폭포를 볼 수가 없었다. 해서 한여름에 다시 찾았다. 금강산 호텔 앞 금강원에서 식사를 한 다음 나오는 길이었다. 식당 앞쪽은 서너 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계단 옆쪽으로는 시멘트가 깨어졌던지 새로 덧발라 양생(養生) 중이었다.
거기 초등학교 상급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 하나가 나무지팡이를 가지고 낙서를 하고 있었고, 부모는 그것을 대견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은연중 얄미운 생각이 들어서 그 곁으로 가서 낙서해 놓은 글씨를 보면서 말했다.
“이거, 뭐라고 썼지?”
“최… 아무개?”
“어이구, 저런…. 그 이름, 영원히 남겠지?”
그래도 조금은 너무 하지 않은가 생각해서 ‘더러운 이름’이라고까지는 하질 않았다. 아이는 한 동안 생각을 해 보는 듯한 눈치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이름자를 지팡이로 직직 그어 지워놓았다.
그것을 본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나를 보고 말했다.
“잘못 하셨어요.”
“왜?”
“어린 아이가 무슨 생각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그런 아이 마음에 흠집을 내 주었잖아요?”
그래, 그랬다. 낙서를 한 것은 잘못이었다. 그렇다고 그 잘못을 깨우쳐주는 방법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비교육적이었다. 나는 낙서를 했다가 지워버린 그 아이보다도 내가 더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금도 그 마구 지워버린 이름자가 씌어졌던 시멘트가 그대로 남아 있을까? 이젠 다시 가 볼 수 없는 곳이라서 더욱 궁금해지면서, 미안했던 마음이 갑절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원고지 5매)
[약력] 이웅재(李雄宰)
*전 동원대학 교수(학술정보센터장 역임)
*중앙고전문학회장, 중앙어문학회장 역임
*현재 “수필문학” 상임편집위원장
*수필집『지리산의 유혹』,『믿음직한 남편되기』등
♣leewj1004@hanmail.net 010-754-6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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