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신부가 주례사를 하는 혼례식
이 웅 재
신랑 신부의 어머니가 손을 잡고 입장한다. 결혼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결혼식, 언제부터 결혼식이 되었는가? 결혼이란 말은 원래 혼례, 또는 혼인이었는데…. 그러니까 결혼이란 말은 일본식 표현이었는데, 그게 온통 안방마님 몰아내고 안주인 행세하는 작은 마님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젠 그게 굳어버린 말이 되어 있는 실정이니 쓰지 않을 도리도 없는 실정이다.
그뿐이랴? 결혼식에는 으레 주례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들 알고 있다. 때문에 나도 가끔은 그 귀찮은 주례를 설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주례, 그거 우리 예전 혼례식에선 없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자잘한 의식까지도 덧붙어 생겨나서 사람들을 아주 피곤하게 만든다. 때에 따라서는 그런 것들 때문에 결혼식 자체를 매우 부담스럽게 여기게까지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가끔 신랑이나 신부의 아버지가 직접 주례역을 맡는다든가, 아예 주례 없이 사회자만으로 결혼식을 치른다든가 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어서 산뜻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주례 앞에 서 있는 신랑 신부의 위치도 따진다면 대부분 엉터리라고 할 수가 있겠다. 예기에 나오는 ‘남좌여우(男左女右)’란 말은 남면(南面)하고 있는 임금이 보는 위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북향(北向)을 하는 신하의 입장에서는 좌우 개념이 정 반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동쪽이 좌측이 되어야 옳은 방향이라는 말이다. 춘향전에 나오는 전라좌도, 전라우도 하는 말을 보면 그걸 분명히 알 수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서서 치르는 결혼식은 웬만해선 보기가 힘들다.
장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천하대장군’이 남면해서 바라볼 때의 좌측, 일반적으로는 오른쪽 또는 동쪽이 되어야 하고, ‘지하여장군’은 그 반대라야 하는 것이다. 가끔 그것이 뒤바뀐 경우가 있어서 주인에게 그 잘못을 바로잡아 주기도 하지만, 글쎄, 그걸 얼마나 믿고 따라줄지는 의문이다.
신랑 신부의 어머니가 손을 잡고 입장한다. 곱게 차려 입고서 말이다. 그 어머니들이 시집가는 것 같다. 한껏 맵씨를 낸 걸음걸이로 입장한 어머니들이 좌우로 갈라지더니 양쪽에 있는 촛대에 불을 밝힌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들린다. ‘저거 하나에 10만원씩이래.’
그래, 그렇다. 언제부터 저런 풍습이 생겼나? 저건 순전히 결혼식장 측에서의 돈벌이를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이벤트일 뿐인데, 이젠 거의 굳어져 버린 결혼식 풍습이 된 듯싶은 광경이다. 앞으론 또 어떤 풍습이 생겨날 것인가? 신랑 신부의 아버지가 함께 입장하는 일은 안 생기려나? 그런 일이 아직 생겨나지 않는 까닭은 신부 아버지가 신부 손을 잡고 입장해야 하는 식순이 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이끌고 입장한다. 웨딩마치가 장내의 구석구석을 가득 메운다. 걸음은 느려야 한다. 보내기 싫다는 의미다. 20여 년을 넘게 길러 왔는데, 엉뚱하게 신랑이라는 작자에게 넘겨줘야 하는 일이니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는 표시다.
사람을 인수인계하는 일,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우리는 그것을 모른 체하고 있다. 남녀평등도 마땅치 않아서 양성 평등이란 말을 쓰는 시대인데, 어찌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신랑에게 인수인계를 하는가? 완전히 가부장적인 관습을 어째서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묵묵히 이어가고 있는가?
신랑 신부의 어머니들이 행하는 이벤트도 필요 없는 일이요,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신랑에게 인수인계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될 일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그냥 신랑 신부가 서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입장하면 충분할 것을….
어느 혼례식에서는 신랑 아버지가 주례를 맡아 하면서 ‘가정이 화목하려면 신랑은 아내되는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말하더란다. 어찌 보면 정곡을 찌른 말이 아닐까 한다. 최소한 그것은 그 말을 한 사람의 오랜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임에 틀림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 옛날부터 한 가정의 안주인은 그 집의 주부였다. 광 열쇠를 가지고 가정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은 바깥양반이 아니었다. 사랑양반은 쌀값도 몰라야 하는 것이었다. 요즈음은 어떤가? 그래도 십여 년 전까지에는 월급봉투라는 것이 있어서 남자들이 한 달 동안 애써 일했던 대가를 만져볼 수 있기라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원천적으로 월급은 한 푼도 만져볼 수가 없게 되지 않았는가? 그건 고스란히 통장으로 입금이 되어 버리고, 그 통장의 관리는 그 집의 안주인이 하게 되어 있는 것이 상식이다. 그 안주인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여야지만 용돈이 조금이라도 낙낙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낙낙해질’ 수가 있다는 말을 허술히 보아 넘기면 안 된다. 그것은 ‘넉넉하다’는 말의 작은 말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주례사, 그거 신랑이, 혹은 신부가, 아니면 신랑 신부가 교대로 하면 안 될까? 결혼을 축하해 주려고 온 사람들에게 우리는 앞으로 이러이러하게 살겠습니다, 우리의 평생 계획은 이런 것입니다, 라고 알리는 말로서 주례사를 대신한다면 그야말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아니면, 신랑이 구애의 노래를 부르고 신부가 그에 대한 답가를 불러주는 결혼식은 어떨까?
혼수비라고 하여 신부집에서 신랑집으로 보내는 ‘돈’, 그리고 그 일부를 신부집으로 되돌려 보내는 일, 그거 온전히 인신매매식 발상이 아닌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풍습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슬그머니 그런 것들이 결혼식 풍습으로 자리잡아 가게 된 것이다. 혼수감을 많이 팔기 위한 업자들의 농간에 휘말려 돈이 없는 사람은 결혼식 한 번 치르는 것이 어마어마한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신랑 신부가 주체가 되어서 행해지는 결혼식, 축하해주고 축복받고, 그래서 행복을 향해 소박한 첫발을 디딜 수 있게 해 주는 혼례식을 보고 싶다. 요샌 들러리라는 것을 보기 힘들어졌지만, 하객들이 들러리가 되고 신랑 신부가 중심이 되어 행해지는 혼례식을 진정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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