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문화 체험기 11)
눈 깜짝할 사이에, 그에 못지않게, 그보다 더 빠르게
이 웅 재
달리는 버스에서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일별한다. 빈 거리의 오페라 하우스가 지나가고, 히틀러가 2번이나 입학하기를 갈구했던 미술학교도 뒤쪽으로 사라진다. 저 학교에 입학을 했었더라면 화가로서의 일생을 살았을 것이요, 그 많은 사람들의 학살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의 입학을 허가하지 않았던 심사 교수는 왜 또 하필 유태인이었을까? 그러나 역사는 가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다음은 훈데르트바써 하우스(Hundertwasser Haus)의 관광이었다. 이곳은 원래 스케줄에 없던 곳이었는데 우리 가이드가 서비스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있다는 곳이라서 궁금증이 더해졌다. 훈데르트바써는 1928년 비엔나에서 태어난 화가이면서 건축가이자 반문명주의자이다. 동화책에나 등장할 듯한 알록달록한, 자연을 닮은 훈데르트바써 하우스는 인공적인 직선을 타기한 건축물이다. 온통 울퉁불퉁한 요철로 이루어졌으며 모서리도 이리 삐뚤 저리 빼뚤한 선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아주 강렬한 색채로 겉모습을 꾸미고 있었다. 나로서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자연적인 선을 사용한 집이라면 그 외관도 자연친화적인 빛깔로 단장을 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인데, 어찌 그처럼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지금은 관광명소가 되어 버린 이 집은 시에서 관리하면서 저소득층에게만 입주권을 주고 있는 서민 아파트로, 자손에게 물려줄 수도 있단다. 아무 집이나 구경을 할 수는 없어서 모델 하우스 하나를 공개하고 있었다. 건물의 창문마다에는 왕관 모습의 장식물이 붙어 있었다. ‘시민은 왕이다’라는 뜻이란다. 그렇게 좋은 곳이지만, 가난한 서민층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 흠이었다.
모델 하우스 앞쪽으로는 우리나라 동대문시장과 같은 건물 내부의 시장이 있었다.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셔츠에는 NO KOALAS, NO KANGAROO, 또는 코알라나 캥거루 그림에 큼지막하고 붉은 색의 ×표를 쳐 놓기도 했다. 오스트리아를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란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영부인 오지리댁을 호주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2층의 다락방 같은 작은 가게들에는 여러 가지의 그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하나 살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지금 소장하고 있는 책마저도 처치곤란이라서 정년퇴직할 때에는 거의 전부를 학교에다가 기증하기로 약정해 놓은 판국에 하나라도 물건을 사 모으는 것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진다는 생각에서였다.
다음은 슈테판돔 광장(Stephansplatz). 슈테판 돔은 화재 등으로 건축이 중단되는 등 400년 동안에 걸쳐 완성된 성당이란다. 그 앞 광장에서 마술사 한 사람이 마술을 하고 있었다. 관중 가운데서 여자 도우미를 한 사람 뽑더니 그녀의 가슴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속옷'을 꺼내 들었다. 진짜 그녀의 속옷을 꺼냈을까?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남의 지갑을 슬쩍 하는 사람이 있었다. 2명 한 조였다. 아, 또다시 그보다 더 재빠른 사람들이 등장했다. 바로 경찰관.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 소매치기들을 낚아채더니 금세 수갑을 채워 끌고간다. 그 소매치기들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쯤 보이는 아주 멀쩡한 사내들이었다. 입고 있는 의상도 세련되어 보이고 행동거지도 별로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느 나라나 살아가는 방법은 정말로 다양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식당으로 가면서 가이드가 말했다. 이 나라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나라라고. 명예보다도 돈을 앞세우는 나라로 의사, 변호사, 판․ 검사, 교수보다도 기술자가 우대받는단다. 기술이 부를 창조한다는 신념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사회보장제도가 철저하게 시행되어 의료보험도 무료, 학교도 고등학교까지는 무료란다. 대학도 무료였었는데, 4년 전부터 아주 적은 금액의 등록금을 받는단다. 저금을 할 때에도 수수료를 내야 하는 나라라면 놀라는 사람들이 좀 있지 않을까?
석식을 위하여 900년 전부터 운영한다는 AUSG′STECKT라는 식당으로 갔다. 2,000석의 좌석을 가지고 있단다. 유명인들이 많이 다녀간 곳으로 주인이 있으면 함께 기념사진이라도 찍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주인은 부재였다. 식사 중에 악사가 와서 연주를 해 주기도 했다. 10유로 정도 팁을 주면 된다고 했는데, 아리랑을 비롯하여 한국 음악을 계속 연주해 주는 바람에 그 배 이상의 팁이 뿌려졌다. 식당 앞에 솔잎을 매달고 있어 물어 봤더니, ‘영업합니다’라는 의미란다.
가이드가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여행객들이 하도 졸라서 현지 가이드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단다. 부루스타로 삼겹살 파티를 벌였는데 연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바람에 이웃주민이 신고하였더니, 3분 후에 경찰 및 소방차가 출동하더란다. 신고정신이 투철한 나라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단다. 숙소인 PYRAMIDE 호텔로 가는 길에는 소각장 건물이 있어서 어떻게 시내 한복판에 소각장이 들어설 수가 있을까 하고 모두가 놀랐다. 게다가 이 건물은 훈데르트바써가 설계한 것이라고 했다. 처음엔 훈데르트바써도 빈의 쓰레기 소각장을 디자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 거절했었는데 빈 시가 가급적 쓰레기 소각장에서 매연이 덜 나오도록 최신식 시설을 설치할 것을 약속하자 작업에 응했다고 한다. 현재 이 쓰레기 소각장은 태워 없애는 방법으로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그 쓰레기를 태울 때 생기는 열로 빈 시의 약 6만 가구에 난방을 비롯한 야간 전기 공급을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하였다.
오스트리아, 배우지 말아야 할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었다.
(06. 7. 23. 원고지 15매)
'동유럽 문화 체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유럽 문화 체험기 13) 동화 속 호반의 마을, 할슈타트 (0) | 2006.07.29 |
---|---|
(동유럽 문화 체험기 12)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 미라벨 궁전과 샤프베르크 산 (0) | 2006.07.28 |
(동유럽 문화 체험기 10) 프랑스 풍의 쇤부른 궁전과 비운의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 (0) | 2006.07.24 |
(동유럽 문화 체험기 9) 아우토반을 탄생시킨 무솔리니의 애인이 살던 꼬모, 그리고 히틀러 (0) | 2006.07.23 |
(동유럽 문화 체험기 8)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해 주는 세체니 체인 다리 (0) | 2006.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