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전 수필

(고전수필 순례 3) 석문(石問)

거북이3 2006. 10. 8. 11:08
 

 (고전수필 순례 3)

     석문(石問)

                                                          이    곡 지음

                                                이 웅 재 해설


 객이 물었다.

 “어떤 물건이 견고․ 불변해서, 천지와 함께 종식(終息)되는 것이 있는데 그대는 아는가?”

 나는 답했다.

 “천지가 정기를 쌓아 만물이 개화(開化)되지 않았는데[屯蒙1)], 오직 사람이 그 영장이며, 오랑캐와 새 짐승은 이에 다음 간다. 그리고 저 높은 산, 깊은 바다가 또한 만물 중에 큰 것이요, 곤충․ 초목과 그밖에 또 크고 작은 동식물이 다 그 가운데 있어서, 이것들을 분운(紛紜)하게 영축대사(盈縮代謝)2)하고 착잡하게 영고계칩(榮枯啓蟄)3)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 그 본말(本末)과 가늘고 굵은 것을 요량할 수 없으며, 한서(寒暑)에도 그 본질을 바꾸지 않고, 고금에도 그 사용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오직 하나 있으니 그것은 돌이다. 그대가 말하는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객이 받았다.

 “그렇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 소이연(所以然)을 말할 수 있겠는가?”

 “태극(太極)이 쪼개지자 양의(兩儀)4)가 서고, 성인이 태어나자 삼재가 갖추어져,〈사람은 사람의 도리를 하니〉이것을 반고(盤古)5)라고 한다. 이때를 당하여 오히려 아직 미개하여 품류가 분간이 없었는데, 반고가 죽을 시기에 와서 비로소 눈[目]은 일월(日月)이 되고, 피는 강하(江河)로, 뼈는 산이 되니, 산이 생길 때에 돌이 그 바탕이 되었다. 그러므로 돌을 산골(山骨)이라고 한

다. 돌이 생긴 지는 이미 오래다. 공공(共工)이 황제(黃帝)와 싸움을 하다가 성이 나서, 부주를 부딪쳐 하늘이 기울어졌는데, 여와(女媧)6) 씨가 돌을 다듬어서 보공(補工)을 하였다.7) 그런 뒤에 일월성신이 그 궤도를 얻었으니 돌의 공이 크도다. 또 두꺼운 땅에 우뚝하게 박히고 위엄 있게 솟아, 큰 바다를 진압하고 높이 만 길이 되게 서 있어서, 흔들어 움직일 수가 없고, 구지(九地)에 깊숙이 잠겨서 물(物)이 침압(侵壓)할 수 없으며, 천지와 더불어 시종을 같이 하니 돌의 덕은 두텁다. …(중략)…”

 객이 붓을 잡아 송(頌)을 짓고는 가버렸다.

 “크고도 지극하도다. 천지 정기로 이 정질(貞質)을 낳았으니 공용(功用)이 한이 없네. 문채도 기이하고 기이할사, 그 경위(經緯)가 빛나누나. 모나게도 다듬고 둥글게도 다듬어서, 귀한 이, 천한 이에게 두루 베푸니, 삼재(三才)에 하나 더해 사재(四才)가 될 수 있고, 온갖 물건 만들기에 족하기도 하구나. 우(禹)임금은 돌을 뚫고 임금이 되었고8)”…(중략)…이 신기한 물건이 때에 따라 그 쓰임이 다르구나. …(중략)…네 공덕을 칭송하니, 내 폐부(肺腑)가 격동되노라. 어진 사관(史官)으로 하여금 만고에 길이 빛나게 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물러나와 그 말을 살펴보니, 이것은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로서 이치가 구비된 줄을 알겠다. 아, 자방(子房)이 공경한 돌은 괴궤(怪詭)한 일9)

가깝고, 승유(僧儒)의 돌에 대한 평은 희학(戱謔)에 가까우며, 기타 제가(諸家)의 말은 다 들어 말할 수 없으니, 다만 객이 송(頌)한 이것만을 가지고 이 편(篇)을 짓는다.


해설: 

 식자들은 세태가 너무 경박해졌다고 탄식을 한다. 유치환의 바위처럼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는 바위처럼 듬직함이 아쉬운 때다. 해서 이곡(李穀1298-1351)의 「석문(石問)을 소개한다. 동문선(東文選) 제 107권 잡저(雜著)에 수록되어 있는 글이다. 잡저는 동문선에 나오는 40여 종의 문장 양식 중의 하나로, “자유로운 형식으로 쓴 글. 작자의 감정이나 사상이 잘 유로되어 있”으며,(한국문학개론 편찬위원회 편. 韓國文學槪論. 혜진서관.1991. p.543.) 장르상 ‘수필적 계열’에 속한다.(동 pp.540-546 참조.)

 이곡의 호는 가정(稼亭), 목은(牧隱)의 아버지다. 일찍이 원나라 제과(制科)에 둘째로 급제, 한림국사원(翰林國史院) 검열관이 되어 중국의 학자들과 교유(交遊)하고 귀국,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었다. 문장이 유창하고 아담하며 뜻이 오묘하여 중국 사람들도 탄복을 했으며,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편년(編年)강목(綱目)』을 증수(增修)했다.

 이규보는 이 「석문」에 대한 답글 「답석문(答石問)」을 짓기도 했다.

 

1)屯蒙(준몽): 천지가 만물을 생성(生成)하는 시초. 屯은 만물의 시초, 蒙은 만물의 어림[幼].

      [예문] 天地屯蒙〈資治通鑑,〉[ : 어려울 준,   蒙: 어두울 몽 ]

2)영축(盈縮/贏縮): 남음과 모자람, 대사= 물질대사

3)영고(榮枯):번성함과 쇠퇴함, 계칩(啓蟄): 봄이 되어 겨울잠을 자던 동물이 깨어나 움직임.

4)양의(兩儀): 양(陽)과 음(陰). 또는 하늘과 땅. ≒이의(二儀).

5)반고(盤古/盤固): 중국에서, 천지개벽 후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전설상의 천자.

6)얼굴은 사람, 몸은 뱀과 비슷한 모습의 여신. 심심해서 진흙으로 제 모습을 본따 사람을  만들었다. 하나하나 빚어서 만들려니 끝이 없어서 흙탕물에 새끼줄을 담갔다가 휘두르는 방식으로 많은 인간들을 만들어 내었는데, 손으로 빚은 인간들은 고귀한 신분이 되었고, 새끼줄을 휘둘러 만든 인간들은 천한 신분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이 계속 존속하게 하기 위해 남녀 성별을 구별해 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나중 공공(共工)의 난 때 보공(補工)을 하였다고도 한다.

7)  염제의 후손인 수신(水神)인 공공(共工)과 화신(化神)인 축융(祝融)이 싸움 끝에 공공이 진다.(본문에서는 황제와의 싸움이라고 했다.) 속이 상한 공공은 머리로 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받아 무너뜨렸다. 때문에  하늘기둥이 부러지고 땅줄이 끊어져, 구멍 뚫린 하늘로부터는 큰 비가 쏟아지고 대홍수가 일어났다. 이에 여와(女媧)가 강 속에서 오색 돌을 따서 불에 녹여 반죽을 하여, 하늘 구멍을 막았다 한다.

8) 우(禹)가 중국의 대홍수를 다스릴 제, 용문산(龍門山)의 돌을 깨어 뚫고서, 홍수가 흘러 빠지게 하였다고 한다.

9)  자방은 장양(張良)'의 호. 그 선생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으로 이별할 때에 “후일에 곡성산(穀城山) 아래에서 누런 돌을 보거든, 나인 줄로 알라.” 하고 헤어졌으므로, 나중 그러한 돌을 보고, 선생의 예로 절하고, 집으로 모셔갔다고 한다.

      

** 한문 번역은 민족문화추진회의 『동문선 Ⅶ』을 따랐으나 맞춤법, 띄어쓰기 등과 문맥을 살리기 위한 부분적 윤문, 주석의 변형 등을 했음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