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전 수필 1)
화왕계(花王戒)
작품 해설: 이웅재(동원대학 교수)
지난 7월 15일, 서울 YWCA에서 가졌던 제15회 수필문학 세미나에서 질의자로 참석했던 필자는 우리의 고전작품들 중에서 수필로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찾아내고, 이를 “수필문학”지에 소개 및 해설해 주는 난을 만들어 줄 수 없느냐는 건의를 한 바가 있다.
이제 그 작업의 일환으로 그때 제일 먼저 언급했던 ‘화왕계(花王戒)’를 소개한다. 이 글은 “삼국사기” 열전 제 6 설총(薛聰)조에 나오는 글이다. 서거정(徐巨正)이 편찬한 “동문선(東文選)” 주의(奏議)편에서는 ‘풍왕서(諷王書)’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설총이 신문왕(神文王)에게 충고한 풍자적 내용의 간문(諫文)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우언적(寓言的)인 가전체(假傳體) 작품이다.
지은이 설총은 원효(元曉)대사의 아들로서 신라 10현 중의 한 사람이며, 9경을 방언(方言: 우리말)으로 읽었다 하여 이두(吏讀)의 발명자라고 하나, 그렇게 보기보다는 이두를 정리한 사람으로 볼 수가 있겠다. 출신 성분은 육두품(六頭品) 출신으로 그의 글로서 분명한 것은 이 한 편뿐이다.
백호(白湖) 임제(林梯)의 “화사(花史)”와 같은 작품의 선구적 역할을 한 작품이라고 볼 수가 있는 액자(額字)구성의 교술적(敎述的) 작품이다. 조동일(趙東一)은 가전체를 교술 장르로 보며(‘假傳體의 장르 規定’), 장덕순(張德順)은 교술 장르를 수필로 보고 있다(“韓國文學史의 爭點”).
이 글은 비교적 알려진 글이긴 하지만, 문학사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고전 수필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맨 먼저 소개한다.
*신문대왕(神文大王)이 한여름 높고 밝은 방에 계시면서 설총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오늘은 오래 오던 비도 개고 훈풍이 서늘하게 불어오니, 진수성찬이나 서글픈 음악을 듣는 것보다는 고상한 이야기와 멋있는 익살로 울적한 마음을 푸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대는 꼭 기이한 이야기가 있거든 어찌 나를 위해 이야기하여 주지 않겠는가?” 하므로, 설총은 말하기를 “신이 듣사오니 옛날 화왕(花王; 모란[牧丹])이 처음 오시므로 이를 향기로운 정원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였는데, 삼춘가절(三春佳節)을 당하여 예쁜 꽃을 피우니, 온갖 꽃보다 유달리 아름다웠습니다. 이에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정기와 예쁜 꽃들이 분주히 화왕을 뵈려고 달려오지 않은 이가 없었고 오직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홀연히 한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 붉은 얼굴에 옥 같은 이에, 깨끗한 옷으로 몸을 단장하고 아장아장 맵시 있는 걸음으로 화왕의 앞에 와서 말하기를 ‘첩은 흰 눈 같은 모래밭을 밟고 거울 같은 맑은 바다를 대하며, 봄비에 목욕하여 더러운 때를 씻고, 상쾌하고 맑은 바람을 맞으며 뜻대로 사는데, 이름은 장미라고 합니다. 지금 임금님의 높으신 덕이 있음을 듣고 향기로운 침소에서 모실까 하여 찾아온 것이오니, 임금님께서는 저를 거두어 주소서.’하였습니다.
이때 또 한 장부(丈夫)가 있어 베옷에 가죽 허리띠를 매고 백발을 휘날리며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피로에 지친 걸음걸이로 허리를 굽히고 와서 말하기를 ‘저는 서울 밖의 큰길가에 사는데, 아래로는 창망한 들 경치를 굽어보고 위로는 우뚝 솟아 삐죽삐죽한 산악의 경치를 의지하고 있는데, 이름을 백두옹(白頭翁: 할미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몰래 생각하면 임금님은 좌우에서 온갖 물건을 충족하게 공급하여 고량진미로써 배를 부르게 하고, 차와 술로써 정신을 맑게 한다 하더라도 상자에 충분히 저장하여 놓은 좋은 약으로 원기를 돋우고, 모진 돌로써 온갖 독소를 깨끗하게 없애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비록 사마(絲麻)로 만든 신이 있더라도 관괴(管蒯)를 버리지 않는다 하여 모든 군자(君子)들은 모자라는 데 대비하지 않음이 없었다고 합니다. 임금님[花王]께서도 역시 이런 뜻이 있으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답니다.
그런데 혹자가 말하기를 ‘두 사람이 왔는데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리겠습니까?’ 하니, 화왕이 말하기를 ‘장부의 말이 또한 도리가 있으나,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은 얻기도 어려우니, 장차 어찌하면 좋을까?’ 하므로, 장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나는 임금께서 총명하시어서 옳은 도리를 아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으로 왔사오나 지금 보오니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임금된 분으로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친근하게 하고, 정직한 자를 멀리 하지 않는 분이 드뭅니다. 그러므로 맹가(孟軻: 孟子)는 불우하게 평생을 마쳤으며 풍당(馮唐)도 낭관으로 파묻혀 늙었습니다. 옛날부터 이와 같은데 전들 그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니, 화왕은 말하기를 ‘내가 잘못하였다. 내가 잘못하였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우언(寓言: 빗대어 하는 말)에는 참말 깊은 뜻이 있으니, 청컨대 이를 써 두어 임금된 자의 경계하는 말로 삼으라.” 하고, 드디어는 설총을 높은 벼슬로 뽑아 올렸다.*
** 한문 번역은 김종권(金鍾權)의 “三國史記(下)”[大洋書籍]을 따랐으나 맞 춤법, 띄어쓰기 등과 문맥을 살리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윤문을 하기도 했 음을 밝혀 둔다.
**모진 돌[惡石]: 침구(鍼灸)를 이름인 듯, 앞에 나오는 ‘약’과 함께 일컬을 때 약석(藥石)이 됨.
사마(絲麻): 명주실과 삼실.
관괴(管蒯): 띠[茅]의 일종.
풍당(馮唐):한(漢)나라 때 안릉(安陵) 사람. 어진 인재였으나 벼슬이 낭관 (郎官: 堂下官)에 그쳤다.
'우리의 고전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수필 순례 6) 공방전(孔方傳) (0) | 2006.12.30 |
---|---|
(고전수필 순례 4) 조신몽(調信夢) (0) | 2006.12.30 |
(고전수필 순례 3) 석문(石問) (0) | 2006.10.08 |
(고전수필 순례 2) 외부(畏賦) (0) | 2006.09.17 |
제 15회 수필문학 하계세미나 질의서 (0) | 2006.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