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 체험기 7)
천자산(天子山) 삭도(索道)의 아찔한 느낌
이 웅 재
보봉호 관광을 마친 일행은 한국관엘 들러 중식을 했다. 둥근 식탁 위쪽의 식판은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엊저녁의 식사 때도 마찬가지였었다. 우리나라의 중국집에서도 가끔 그런 곳이 있었는데, 워낙 여러 가지 음식이 나오다 보니까 상대편 쪽까지는 팔이 닿지 않아서 고안해 낸 방법일 것이었다. 여기선 ‘생수 주세요.’ 하지 말란다. 생수는 돈을 내야 하는 것, 이곳 사람들은 녹차를 상음(常飮)하니까 ‘차 주세요.’ 하면 그건 무료라는 것이다. 녹차 한 컵을 달라고 하면서 나는 머리를 만져 보았다. 공짜 좋아하다 대머리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식당 앞쪽에는 ‘超市’라 씌어 있는 가게가 있었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슈퍼였다. 식당 앞쪽 주차장 담벼락 쪽에는 해당화 비슷한 꽃이 피어 있어 알아보니 월계수란다.
무릉원(武陵源)은 UNESCO에 등재된 곳, 지문 카드로 입장을 했다. 카드 전면에는 ‘無上妙品 中國 酒鬼’’라 쓰인 선전문구와 No. 뒤쪽에는 ‘世界自然遺産武陵源 張家界 國家森林公園’이라 쓰인 문구와 함께 장가계의 경치가 그려져 있었다. 1982년에 처음으로 국가공원으로 지정된 곳, 그 이전까지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단다. 지문 카드는 다른 사람은 이용할 수가 없는 카드일 뿐만 아니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효력 상실, 다시 사용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이는 분명 우리보다 후진이라고 볼 수 없는 면모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나는 이런 것들을 볼 적마다 학생들에게 절대로 중국을 우습게보지 말라고 깨우쳐 주곤 했다. 얼마 안 가서 우리가 추월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거기서 버스로 이동한 후,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산정에 올랐다. 이름하여 ‘천자산 삭도(天子山索道)’. 케이블카의 길이는 2,084m, 해발 1,260m, ’96년 6월 28일 動工[준공]되었단다. 상상외로 길고 높은 케이블카, 이런 케이블카를 타 본 적이 없는 우리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그 중간쯤에선 온몸이 찌릿찌릿 고소공포증에 빠져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 그것도 90%가 한국인들이 이곳을 관광했다는데, 특별한 사고가 있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으니 안심해도 되는 것은 틀림없는데, 몸과 마음은 서로 한 통속이 되어 오들오들 떨고 있으니, 관념과 현실은 서로 쉽게 화합이 안 되는가 보았다.
발밑으로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필설로 다하기가 어려웠다(?) 실은 무서워서 제대로 내려다보질 못했으니까 그럴 수밖에. 그 산정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하룡공원(賀龍公園)까지 하산. 주위에는 소나무와 삼나무, 그리고 억새가 많았다. 명자작화(名字作畵)하는 사람이 있어 1,000원을 주고 작화, 거기에 코팅까지 하여 거금 2,000원을 소비했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혁필화(革筆畵) 같은 것인데, 요즈음 대하기 어려운 그림이라서 기념으로 한 장 그려 가진 것이니 분명 낭비의 개념은 아닐 것이다.
하룡장군상을 보고 위생간[화장실]을 들른 후 평평한 산길을 걷노라니, 시각장애인 한 사람이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가끔 천 원짜리 한 장씩을 쥐어준다. 중국에서 한국 노래를 가지고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탄다.
“또 내려가요?”
“예.”
“몇 분?”
“40분 정도.”
“난 올라가고 싶은데….”
“그럼 하늘에 기도하세요. 썩은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그래 볼까? 혹시 씽씽한 동아줄을 내려줄지도 모르잖은가? 그냥 이대로 승천을 한다? 아니면 여기 계속 머물러 신선이 될까?
차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무허가 건물이었는지 때려 부순 집들도 간혹 보인다. 그렇지, 이곳은 공산주의 국가, 그러니까 정부에서 필요에 의해서 건축했다가 필요성이 사라져서 때려 부순 거겠지…. 산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삼나무가 많아진다. 그리고 군데군데 민가처럼 여겨지는 집들도 보인다. 기와는 너와를 닮았다.
버스에서 내린 곳에는 ‘측소(厠所)’가 있었다. 가는 곳마다 그 명칭이 다르니 자칫 혼동하기 쉬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화장실임을 알려주는 만국 공통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용케도 자기가 급하게 필요한 것은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잘들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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