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인물열전

경북 인물열전 ⑩ 대성 원효와 그 아들 대현 설총

거북이3 2007. 2. 10. 09:13

경북 인물열전 ⑩


   대성 원효와 그 아들 대현 설총

        [新增東國輿地勝覽 卷21. 慶州府 古跡 瑤石宮條 및 人物條]

                                                                     이   웅   재

 지난 2월 1일, 5박 6일의 여정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왓(ANGKOR WAT:도시의 사원)을 다녀왔다. 국민 대다수가 소승불교를 믿고 있는 이 나라에는 승려들이 많다. 약간 진한 주황색 승려복을 입은 젊은 승려들, 외국 여행객들은 그들과 함께 사진이라도 한 장씩 박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건 안 될 말이다. 앙코르왓의 사면 벽화 중에는 파괴의 신인 시바(Shiva)도 들어 있다. 이 시바신의 표상은 남성 성기 모양의 링가(Linga)란 것이다. 그리고 이 링가는 대개 우주 자궁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란 것 위에 놓여 있다. 그러한 앙코르왓의 관념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개인적인 득도를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해도 그곳의 승려들이 특히 여성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고 있는 일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땡중이 많다. 아니, 합법적으로 성생활을 즐기는 대처승까지도 있는 것이다. 해서 고승의 파계도 관용으로 덮어버리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원효대사의 파계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삼국유사” 원효불패조(元曉不覇條)를 보면, 대사는 어느 날 그만 춘의(春意)가 동하여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단다.

 “누가 자루 빠진 도끼[沒柯斧]를 허락할는지, 내가 하늘을 버틸 기둥[支天柱]을 다듬어볼거나.”

 아주 광고하고 짝짓기를 소문냈다. 그런데 태종(太宗)은 관리를 시켜 홀로 된 요석공주(瑤石公主)의 거처로 모시게 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사람이 신라 10현 중의 하나인 설총(薛聰)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아닌가? 그 원효는 장산군(章山郡: 지금의 慶山市)의 불지촌(佛地村) 북쪽 율곡(栗谷) 사라수(娑羅樹) 아래에서 태어났다. 그렇게 실계(失戒)한 이후로는 속복(俗服)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칭하고, 저자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큰 박[瓠]을 무롱(舞弄)하는 광대를 만나 그 형상대로 도구를 만들어 이름은 무애(無㝵)라 명명하고, 노래를 지어 세상에 퍼뜨렸다. 진정 그에게는 걸리적거림이 없는 생활을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캄보디아의 승려들은 우리의 대성 원효를 본받아 여성 관광객들과 사진 몇 장쯤은 찍어주기도 해야 할 일이다. 가도가도 황토길, 풀썩거리는 먼지 속에서 맨발로 ‘원 달러!’를 외쳐대는 앵벌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원효의 파계로 이 세상 구경을 하게 된 설총(薛聰)은 자를 총지(聰智)라고 하는데, 나면서부터 그 자만큼이나 총명하고 영민하였고, 장성하여서는 박학할 뿐만 아니라 글도 잘 지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 뿐만 아니라 방언으로 구경(九經)을 풀이하여 후생들을 가르쳐 훈도하였으므로 학자의 조종으로 삼는다고 했다. 또 민간에서 보통 쓰는 말로 이두를 만들어 관부의 문서에 사용하게 하였다. 가히 그 아버지 원효가 말하던 지천주의 대현(大賢)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글씨가 남아 전하는 것은 거의 없고 다만 그가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碑銘)이 있을 뿐이나 문자가 결락되어 가히 읽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신문왕(神文王)이 일찍이 한여름 높고 맑은 방에 계실 때 설총을 인견하고 말하였다.

 “오늘은 오래 오던 비도 그치고 훈풍이 서늘하게 불어오니, 진수성찬이나 서글픈 음악을 듣는 것보다는 고상한 이야기와 멋있는 해학으로 울적한 마음을 풀어버림이 좋을 것 같소. 그대는 반드시 기이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을 터이니 그것을 나에게 들려주지 않겠소?”

 그래서 설총이 신문왕에게 풍간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화왕계(花王戒: 일명 諷王書)’이다.


 화왕(花王: 모란)이 처음 왔을 때 향원(香園)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였는데, 삼춘가절을 당하여 예쁜 꽃을 피우니, 온갖 꽃보다 유달리 아름다웠습니다. 모든 꽃들이 화왕을 뵈오려 찾아왔는데, 홀연히 한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니 이름을 장미라고 하였습니다. 주안옥치(朱顔玉齒)에 사뿐사뿐 걸어와서 애교 있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첩이 왕의 어진 덕을 듣고 향기로운 잠자리에서 모실까 하여 찾아왔습니다.”

 이때 또한 장부 하나가 베옷에 가죽 허리띠를 매고 백발을 휘날리며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피로에 지친 걸음걸이로 허리를 굽히고 와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이름은 백두옹(白頭翁: 할미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왕의 좌우에서 공급하는 것이 비록 고량진미라고 하더라도 상자 속에는 모름지기 좋은 약이 있어야 합니다. 임금님[花王]께서는 어떤 뜻이 있으신지요?”

 왕이 말하였습니다.

 “장부의 말도 일리가 있으나, 가인은 얻기가 어려우니 어찌하면 좋을꼬?”

 장부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습니다.

 “무릇 임금이 된 자로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친근하게 하고, 곱고 예쁜 여색을 가까이 하다가 망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희(夏姬)는 진(陳)나라를 망쳤고, 서시(西施)는 오(吳)나라를 멸하게 하였습니다. 맹가(孟軻)는 불우한 채 평생를 마쳤으며, 풍당(馮唐)도 낭관으로 파묻혀 늙었습니다. 예전부터 이러하니 전들 어찌하겠습니까?”

 화왕이 말했습니다.

 “내가 잘못하였다, 내가 잘못하였다.”


 신문왕은 “그대의 말이 풍자함이 깊고 간절하니, 청하건대 써서 나의 경계로 삼게 하겠다.” 하였다. 그리고는 설총을 한림(翰林)으로 뽑아 올렸다.

 원효와 같은 땡중, 설총과 같은 소신파가 그리워진다. 캄보디아의 소승불교 스님들이여, 사랑하는 연인과의 즐거운 시간이야말로 극락인 것을 왜 모르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