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일본문화체험기

(속 ․ 일본 문화 체험기 2) Advertising in Japan

거북이3 2007. 5. 27. 23:41
 

(속 ․ 일본 문화 체험기 2)

   Advertising Japan                                                                                  

                                                                                    이   웅   재

첫날의 공식일정은 동경경제대학(Tokyo Keizai University)방문이었다. 진입로가 좁아서 버스에서 내려 걸어갔는데, 잔뜩 흐렸던 날씨가 걸어 다니기에는 조금 무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슬부슬 비를 뿌리고 있었다. 우비나 우산은 대부분 여행용 가방에 있었고 그 가방은 짐칸에 실려 있어서 우산을 꺼내는 일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다. 다행히 이럴 때를 미리 대비하여 준비해 두었던 듯 운전기사의 우산 대여로 문제는 그럭저럭 해결되었다.

그런데 그 우산은 거의가 비닐우산이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쓰던 비닐우산과는 달리 약간 두꺼운 비닐로 된 우산이었는데, 혼자 쓰기에도 작게 여겨지는 우산들이었다. 너도나도 골프 우산을 들고 다니는 우리의 풍경과는 매우 달랐다. 그리고 그들에게서는 천으로 된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사 주는 책가방인 란도셀은 6년 동안 줄곧 사용하다가 후배에게 물려주기까지 한다고 하니, 그들의 검약정신은 우리로서는 혀를 내두를 만한 것이라 여겨졌는데, 그것이 바로 이 동경 경제대학 설립자와 같은 일본을 움직여 나가는 사람들의 생활철학이기도 했던 것이다.

동경경제대학은 동경 시내의 고쿠분지시(國分寺市)에 있었다. 이 대학은 밖에서 얼핏 보았을 때에는 우리나라의 전문대학과 비슷한 모습으로 보였으나 들어가 보니 107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일본 굴지의 대학교였다. 책걸상 같은 것도 예전에 쓰던 것을 아직까지도 사용하고 있었으나 모든 기물은 아주 깨끗했다. 그만큼 학교의 기물을 아껴 썼다는 얘기일 터인데, 거기에 비해서 교육용 기자재들은 모두가 현대식이었고 또 고가의 갖추기 힘든 최첨단 장비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서 매우 부러웠다.

일본에서도 이름난 재벌이 학교의 소유주라고 했다. 학교 곳곳에 설립자의 생활철학이 스며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한마디로 외화(外華)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내실(內實)을 중시하는 학풍이 캠퍼스 구석구석마다 배어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일본인들에게서 배워야할 정신이 아닐까도 싶었다. 말하자면 실용주의 정신이라고나 할까? 자그마한 비닐우산을 애용하는 일이나 란도셀을 후배에게 물려주기까지 하는 일 등도 바로 그러한 정신의 발현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학부 川井良介(Ryousuke Kawai)교수의 영접을 받으며 안내된 곳은 비교적 자그마한 강의실이었다. 거기서 우리는 광고학을  담당하고 있으며 현재 개인적인 광고회사도 소유하고 있는 関沢英彦(Hidehiko Sekizawa) 교수의 강의 'Advertising in Japan'을 경청했다. 광고의 영향력으로는 1위인 TV 및 Radio, 그 뒤를 잇는 Newspaper, 그리고 이어서 Magagine, Internet, Mobile-phone과 Outdoor Advertising Agency의 순으로 강의되는 동안 학생들은 진지한 자세로 강의를 듣고 있었다. 겨울연가와 대장금 얘기가 나올 때는 고개를 앞으로 숙이기까지 하면서 최대한의 관심을 보였고, 일본에서는 무가지(Free paper)가 없으며,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가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가 하면 요사이에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 등도 출간된다는 대목에서는 우리도 그래야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였다.

Communication에서의 언어 문제로 일본의 경우에는 히라가나, 가다가나, 한자, 외래어 등으로 그 표기가 상당히 복잡한 체계로 이루어졌음에 비하여 한국은 비교적 단순한 표기가 가능하여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하자, 환한 얼굴표정을 짓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1991년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불황기를 겪었던 일본 경제가 2003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회복되면서 광고업계도 차츰 숨통이 트여간다는 대목에서는 우리의 경제불황은 언제나 풀릴까 걱정하는 모습들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엔 의무 징병제도가 없어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실사회로 투입될 수가 있어 학교에서 배운 것을 곧바로 사회에 나가서 적용할 수가 있다고 할 때에는 그렇지 못한 우리의 실정을 생각하고 한숨을 쉬기도 했고,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의 학생들보다 부모나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이 희박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는 한국사회의 튼튼한 사회구조에 안도의 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강의가 끝난 다음의 여러 가지 의문점이나 알고 싶은 점들을 질문하는 자세도 매우 진지했으며, 인터넷의 경우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뒤지고 있음을 알고서는 앞으로 더욱 인터넷을 발전시켜서 세계 제일의 명성을 굳건히 지켜나가야겠다는 다짐들도 하고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였다. 강의실의 칠판이 2중 3단으로 되어있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한 것이었다.(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위아래로 이동할 수만 있는 칠판이 주종이지만 이처럼 2중 3단으로 되어 있는 것은 여기에 와서 처음으로 목격하였다.)

5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실습실을 거쳐 녹음부스로 안내되었다. 실습실에는 매킨토시 컴퓨터가 23대 비치되어 있었고, 녹음부스에서는 수염이 덥수룩하고 눈이 크며 선량해 보이는 업무지원의 길전(吉田) 씨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곳에서는 영화 실습도 한다고 했다. 비디오도 6대를 동시에 더빙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설명을 들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첨단 시설들을 관찰하면서 우리들은 선망의 눈길을 주어야 했다. 이곳의 기물들은 하다못해 형광등 하나라도 평범한 것이 아니라 했다. 그것은 야외에서의 태양광선과 거의 같은 성질의 빛을 발하는 특수 형광등이라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스튜디오로 안내되었다. 한쪽 면은 거울로 채우고 있어서 얼핏 엄청 넓은 스튜디오로 보였다. 실제로도 우리나라의 대학로에 있는 웬만한 소극장을 능가하는 크기의 것으로 보였다. 음향설비는 스테레오였는데, 한 쪽의 것만도 500만 엔이 넘게 투자되었다고 했다. 그곳을 나오는 우리들의 얼굴엔 주눅 든 모습을 애써 감추려는 노력이 역력히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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