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 일본 문화 체험기 3)
본심을 숨기는 사람들 이 웅 재
이튿날은 4월 19일이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장기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민주혁명인 4․ 19혁명이 일어난 날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가 이렇게 외국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도4․ 19혁명 이후의 정치발전의 덕분일 것이다.
오전 중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동경도청(東京都廳) 전망대에 올라 동경시내의 전경을 마음속에다 가득 담아보기도 하고 쓰레기 매립지 위에 건설된 도시 오다이바에 가서 140여 대의 Toyota 자동차 전시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장애인의 휠체어를 쉽게 태울 수 있는 차를 비롯하여 가지가지의 주문 생산하는 차들도 있어서 좋은 관람거리이긴 했는데, 설명서나 안내판에는 중국어, 영어, 일본어뿐 한국어로 된 것이 없어서 기분이 상했다. 그것은 호텔에서의 TV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동남아, 호주, 유럽…어디를 가도 한국 TV 채널이 있었지만 일본에만은 없는 것이다. 60여 개의 다양한 가게들이 미로처럼 들어서 있어 자칫하면 길을 잃게 된다는 Venus Fort도 개별적으로 돌아보았다.
오다이바의 ‘오’는 접두사, ‘다이’는 대포, ‘바’는 장소를 나타내는 말이다.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한 문호개방에 반대하기 위해 대포를 배치했던 곳이란다. 하지만, 일본의 그러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결국은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는데, 일본으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고 하겠다. 우리의 쇄국정책이 얼마나 한국의 발전을 저해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전후에도 일본은 적대국이었던 미국의 비위를 맞추려고 얼마나 노력을 하였던가? 초등학교 출신의 다나까[田中]는 클린턴과의 회담에서 잘 보이기 위해 과외까지 받지를 않았던가? 처음 만나서는 “How are you?” 하고 인사하고, 상대방도 따라서 “How are you?” 하면 “Me, too.”라고 하랬는데, 막상 제 키의 두 배나 되는 클린턴을 보는 순간 그만 깜빡해 버리고 말았단다. 그래서 고개를 반짝 쳐들어 올려다보면서 하는 말이 “Who are you?”였다. 이에 클린턴은 속으로 생각했단다. ‘응, 요놈 봐라?’ 그래서 농담으로 받았다. “I am Hillary's husband.” 그리고 이어서 똑같이 “Who are you?”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다나까, 과외 받은 대로 서슴없이 대답을 하더란다. “Me, too.”
일본 사람들의 인사말은 정말로 사근사근하다. 어릴 적부터 예의바른 말을 쓰도록 습관을 들인다. 사회적으로는 ‘오아시스’ 운동까지 벌인다. ‘오아시스’ 운동이란 늘 '오하이오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 아리가도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시츠레이시마스(실례합니다), 스미마셍(죄송합니다)'을 입에 달고 지내라는 것이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친절한 티를 내려다보니, 목소리는 가성(假聲)이 되어 버린다. 가성으로서는 본심(本心)을 드러낼 수가 없다. 철저히 본심을 숨기는 사람들, 그것이 일본인들인 것이다.
그들은 스킨십을 싫어한다. 그들은 팔베개를 하지 않는다. 어린애가 예뻐도 뽀뽀할 줄을 모른다. 앞머리 쓰다듬는 것을 싫어한다. 동성끼리는 손을 잡고 가는 것도 이상하게 여긴다. 가족 전체의 외식 따위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빨리 자라서 독립하고 싶어한다. 철저한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 무채색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외톨이의 설움을 더 이상 참기 어려워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살 장소로 유명한 후지 산에서 발견되는 시체만 해도 부지기수라고 하지 않던가? 본심이 통하지 않는 사회, 도저히 오해를 풀 수 없을 때 그들은 할복자살을 한다. 할복자살, 자신의 속을 내보이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Fuji-TV 전시실을 둘러보는 일을 마지막으로 오전 관광을 끝내고, 바이킹식 점심을 먹었다. 해적처럼 아무것이나 가져다가 먹는다고 바이킹식이라고 한다니까 말하자면 뷔페식이라는 말이겠다. 이웃나라이긴 하지만 음식문화도 우리와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절대로 숟가락을 사용하는 일이 없다. 그들은 소위 ‘와리바시’만을 사용하는데, 사무라이 문화에서 나온 와리바시는 반드시 가로로 놓아야만 한다. 세로로 놓는 것은 무기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우리네의 찌개처럼 공동으로 먹은 음식은 없다. 우리들이 볼 때에는 경박하게 느껴지지만, 그들은 개인접시에 음식을 덜어서 손에 들고 먹는다. 그릇을 바닥에 놓고 밥을 먹으면 개밥을 먹는다고 흉을 본다. 깻잎 같은 것을 먹을 때에도 다른 사람이 한 쪽을 눌러주거나 하는 일은 없다. 게다가 쩝쩝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면서 먹어야 맛있게 먹는 것이라나?
식후에는 각자 자유시간을 즐기고, 오후 5시 30분에 요미우리 광고회사 앞에서 모였다. 그런데, 광고회사에서의 담당자들은 처음부터 불성실했다. 약속시간보다 한 30분쯤 뒤에야 우리들을 맞아주었는데, 그때까지도 모든 준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태였다. 외국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그처럼 준비가 소홀할 수가 있을까?
우리들은 조그마한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설명을 하기 위해 나선 사람은 소위 아트 디렉터(Art Director)라는 中山喜芳(Kiyoshi Nakayama) 씨였다. 그는 자신들의 광고기법을 소개해 주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광고회사의 생리로 보아서는 이해 안 되는 바 아니었으나, 우리들의 견학을 승인한 입장으로서는 그것은 일종의 직무태만이었다.
그는 그들이 만들었다는 잡지광고의 원본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얼핏 보니 그 정도라면 우리 학생들도 얼마든지 제작해 낼 수 있을 정도의 광고물이었다. 자연히 학생들의 관심이 시들해져 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학생들에 대한 평소의 노파심을 접기로 했다. 저 정도의 판단력들을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 얼마든지 국제사회에서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기 때문이었다.
'속. 일본문화체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속 ․ 일본 문화 체험기 5) 하코네 국립공원과 오와쿠다니 유황계곡 (0) | 2007.06.04 |
|---|---|
| (속 ․ 일본 문화 체험기 4) 일본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직종은 무엇일까? (0) | 2007.06.02 |
| (속 ․ 일본 문화 체험기 2) Advertising in Japan (0) | 2007.05.27 |
| (속 ․ 일본 문화 체험기 1) 족보가 없는 나라, 일본 (0) | 2007.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