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드르륵! 베란다 문을 열고…
이 웅 재
우리 집에서의 내 주된 주거 공간은 거실이다. 거실이 내 주거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아마도 2~3년 정도 되었지 싶다. 어느 날,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아내와 다투고 나서 나는 분연히 베개와 이불을 싸 들고 안방으로부터 이곳으로 거주 공간을 옮겼던 것이 그 시발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내다 보니 그렇게 혼자 지내는 일이 얼마나 편한지 몰랐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가 아니던가? 그러니 ‘혼자’서 ‘혼자’됨에 대해서 ‘혼자’ 곰곰 생각해 보니, 그 ‘혼자’가 나의 정체성을 깨우치게 해주는 것이기에 ‘혼자’가 그렇게 좋더라는 말이다.
게다가 거실은 집 전체를 통틀어 가장 넓은 공간이요, 가장 쓸모가 많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공용의 공간을 주로 나 혼자 점유하고 있는 것이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식구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니까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는 또 아내대로 안방을 독차지하게 된 것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역시 전보다 훨씬 넓은 공간을 혼자 차지할 수 있게 된데다가 간섭하거나 거치적거리는 사람이 없으니 나름대로 편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제각각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생활 패턴이란 처음 바뀌고 길들일 때가 문제지 한번 길이 들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 길들여진 양식을 깨뜨리기가 쉽지 않은가 보았다.
나는 차츰 내 공간을 내게 맞게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베란다로 통하는 창문 옆 한쪽 구석에다가 컴퓨터를 옮겨다 놓고 그 옆으로는 자그마한 밥상 하나를 가져다 놓았다. 물론 그것은 수시로 보아야 할 책들을 쌓아놓기 위한 도구였다. 그 앞쪽으로는 경상(經床)을 잇대어 놓아 당장 보아야 할 책이라든가 문구(文具)를 비롯한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얹어놓았고, 그 옆쪽으로는 역시 자그마한 다담상(茶啖床)을 정겹게 붙였다.
다담상의 사전식 정의는 손님 접대용으로 음식을 차린 상이지만, 지금 이 다담상은 말하자면 자작용(自酌用) 술상이었다. 상 위에는 땅콩, 호두, 멸치며 북어포 등 대여섯 가지의 마른안주가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매일같이 술을 마셔야 하는 나는 누구에게 안주 좀 차려달라는 것은 매우 거추장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내 기호(嗜好)를 위해서 남을 번거롭게 하는 일이라 그렇게 스스로 조달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술은 앞 베란다에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베란다에는 값비싼 수종(樹種)은 없었지만 내가 직접 어린 나무 때부터 키워온 온갖 종류의 화분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화분들 사이사이에 작고 큰 항아리들이 즐비했다. 그건 모두가 과실주 따위였다. 매실주, 송엽주, 더덕주, 인삼주, 포도주, 복숭아주, 구기자주, 오미자주, 들국화주, 유자주, 오가피주, 야관문주, 감초주…이렇게 하나하나 들먹이다 보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저걸 언제 다 마셔 버리나 걱정이 될 정도의 주종(酒種)과 양(量)이었다. 화분들도 아마 제 옆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술독이나 술통들이 밉살맞지는 않다고 여기고 있을 터였다. 아무리 밀봉을 해 놓았어도 소올솔 알코올 냄새가 스며 나와 저희들의 표피(表皮)를 자극해 주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럴까? 화분의 나무들도 모두 술독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가끔은 그들에게도 한 잔씩 권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엉뚱한 발상도 가져본다.
저녁 무렵이 되어 한잔 하고픈 생각이 들면 나는 ‘드르륵!’ 베란다 문을 연다. 그리고는 거기서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는 술항아리들을 쓰다듬어 보면서 마시고 싶은 주종을 선택하여 큼지막한 머그 컵에다가 한 잔 그득히 따라 가지고 와서 다담상만 끌어당겨다 놓으면 ‘자작(自酌) 준비 끝’이었다. 연암 박지원처럼 문 앞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 억지로 불러들이고 마누라에게 ‘여보, 손님 왔소. 술상 좀 내오시오.’ 할 필요도 없으니 얼마나 편한 일인가! 대작자(對酌者)가 없음이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정말로 술 좋아하는 사람은 자작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아니던가! 마셔주고 먹혀주는 그 애틋하고 살가운 정, 술과 나는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대작자가 있으면 오히려 술과 나의 거리는 멀어지지 않겠는가?
재미있는 TV프로라도 보면서 혼자서 홀짝홀짝 술과 한몸이 되어가던가(아내는 술을 전연 할 줄을 모른다.) 아니면 술상과 컴퓨터 책상 사이를 교대로 오가면서 한 잔 마시고 글 몇 줄 쓰고, 또 한 잔 마시고 써놓은 글 저장하고 하면서 시간을 때우면 된다. 그러면 시간이 그렇게 잘 흘러갈 수가 없다.
시간이란 원래가 흘러가게 되어 있는 것. 그러니 그걸 흘러가도록 놓아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아옹다옹 붙잡고 있으려 해보아도 붙잡아 놓을 수가 없는 것일진대 아예 저 가고 싶은 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머물러 있게 할 수도 없거니와 지겹게도 가지 않는 시간으로 느껴지는 때에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들을 얼마나 짜증스럽게 만들어 주고 있는지, 우리들은 경험적으로 확연히 깨우치고 있지 않던가!
흐르는 시간 따라 얼큰한 기분으로 써 내려가는 글은 기분 좋게 술술 풀려 나간다. 생각이 술을 따라 술술 풀릴 뿐만 아니라 글은 또 글대로 저절로 술술 쓰이는 것이다. 이튿날 보면 더러 주술 관계며 맞춤법 등이 엉망으로 된 부분들도 눈에 띄지만 그건 퇴고하면서 고치면 될 일, 크게 괘념할 바가 못 된다. 때에 따라서는 내가 써놓고도 무슨 글자를 썼는지 알아볼 수 없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런들 대수인가! 무어라고 썼는지를 곰곰 생각하다 보면 생각을 가지를 쳐나가서 아주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게도 만들어 주니 어찌 고맙지 아니한가!
오늘도 나는 드르륵! 베란다 문을 열고 술 한 컵을 따라다 놓았다. 이제 다담상을 끌어다 놓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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