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국내)

나 잡아 봐라(백령도 기행 3)

거북이3 2008. 6. 4. 12:43

   나 잡아 봐라(백령도 기행 3)

                                                                 이   웅   재


 여행지의 숙소란 으레 일잔 하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여자들은 술을 별로 못 하니 남자 셋이서 주거니받거니 해야 하는데,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야만 하는 내가 그놈의 감기 때문에 함께 어울릴 수가 없는 것이 비극이었다.

 “그까짓 감기쯤…”이라는 회유로부터 시작해서, “앞으로는 상종을 않겠다…”는 엄포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사를 다 가져다가 써 먹더니, 나중에는 둘이서 나를 씹는 것을 안주로 하여 권커니잣커니 하다가 꼴까닥 취해서는, 추석은 아직도 멀었는데 돼지 목까지 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된 터이니 꿀 먹은 벙어리 신세, 가끔 “씹으니 술맛 나지?” 하는 추임새를 넣는 정도로 시간을 때우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내공을 쌓아서였을까? 이튿날에는 컨디션이 매우 좋은 상태였었다.

 첫 번째 관광지는 용기포 등대해안. 1960년대에 사용하다가 지금은 사용치 않는 용기포 등대의 발치에는 후미지고 은밀한 등대해안이 있다. 군부대 지역이라 민간인의 접근을 허용치 않아서 아는 이가 별로 없던 곳이지만, 최근 등대해안 부분만 개방을 하고 있는 곳이다.  지형 자체가 밖에서는 보이지 않고 산길을 올라가면 왼쪽으로는 철조망이 쳐져 있어 민간인 출입을 금하고 있고 앞쪽으로 철조망 사이에 조그마한 출입구를 만들어 놓아서 그곳을 지나서 해변가로 내려가면 갑자기 나타나는 움푹 파인 듯한 지형에 펼쳐져 있는 기암괴석, 밀려와 부딪치는 파도가 신선하다. 백령도에 이렇게 아름다운 해안도 있구나, 저절로 탄성이 우러나오는 곳이다.

 어쩐 일일까? 어제 오후에 보았던 두무진의 절경도 별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는데, 이곳에 와서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렇다. 그것은 그만큼 몸이 상쾌해진 때문일 것이었다. 아무리 육체보다 정신을 형이상학적으로 높이 평가한다 하더라도 육체의 떠받침이 없으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것, 육체와 정신은 서로 보완해 나가야지만 제 몫을 다할 수가 있는 것이다. 평소에도 인정하고 있는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새삼 그러한 진리를 실감으로써 느꼈다. 이후의 여정은 모두 이처럼 새로운 정감으로써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다음은 천연기념물 391호인 길이 3km에 달하는 사곶(沙串) 천연비행장. 사곶 연안은 유리의 원료인 규사토(硅砂土)로 이루어져, 물이 잘 빠지고 콘크리트처럼 단단하여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어, 6·25전쟁 때에는 실제로 천연비행장으로 활용되었던 곳이다. 이 같은 지형은 세계에서 이탈리아 나폴리 해안과 이 곳뿐이란다. 가이드는 육지 쪽에서 바다 쪽으로 버스를 돌진시키면서 그냥 버스 탄 채로 바다를 가로질러 인천으로 가버리자고 했다. 실은 물기가 있는 모래 쪽이라야 차바퀴가 빠지지 않는 까닭에 가급적 바닷물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한 일이었다. 모래는 정말로 아주 미세했고 그 위를 걸어도 조금도 빠지지 않았다.

 너도나도 깨끗한 모래 위를 걷느라 여념이 없었다. 더러는 모래 위에 ‘사랑해!’ 따위의 낙서를 하기도 했다. 모래 위에 길게 이어진 여행객들의 행렬, 버스는 그 뒤를 슬금슬금 따라오고 있었다. 한 동안 시간이 흐른 후,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 버스는 한 사람 두 사람 손님들을 태우기 시작했고, 마지막 남은 몇 사람 옆을 지날 때는 모르는 체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나 잡아 봐라!” 외치라고 해 놓고서.

 비행장을 떠나 콩돌해안으로 향하면서 가이드는 말했다. 백령도에서 가장 잘못된 일 중의 하나가, 이 사곶과 화동 사이를 막는 820m 길이의 방조제 공사로 480ha의 농경지를 조성한 일이라고 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270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담수호가 필요한데, 그렇게 농업용수를 뽑아올려 사용하다보면 백령도 전체의 물 부족 사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라서 지금은 저렇게 잡풀이 무성한 채로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하여 해수의 흐름이 바뀌어 백사장이 훼손되고 있어 천연비행장의 역할도 끝장날 것이라고 걱정들이었다.

 우리는 다시 천연기념물 392호인 콩돌해안으로 이동했다. 도중에는 7310m의 서해대교에 맞먹는 ‘백령대교’를 지나가기도 했다. 2-30m 정도나 될까, 그럼에도 ‘대교’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백령도 유일의 다리인 때문이겠다. 폭 50m, 길이 1.5km의 콩돌해안은 0.4cm-0.6cm의 콩알만한 자갈들로 이루어져 있어 또한 나름대로의 정취가 느껴졌다. 경사가 심한 편이고 수심이 깊어서 해수욕장으로는 사용되지 않고 발마사지를 하기 위한 곳으로 이용된다고 했다. 우리도 맨발로 콩돌해안을 거닐었음은 물론이다.

 콩돌해안 관광을 마지막으로 용기포 선착장으로 오는 길에는 화동염전도 보였다. 가이드가 말했다. 여객선을 탔을 때 내 좌석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처음 한두 번은 좋은 말로 비켜달라고 하란다. 그래도 비켜주지 않으면 머리채를 휘어잡아 끌어내라고 했다. 잡을 만한 머리가 없는 사람이면 1000원짜리 또는 2000원짜리 수세미를 잡아끄는 수밖에 없다고 제법 심각하게 조언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우리를 즐겁게 해주려는 가이드가 고마워서 우리는 힘찬 박수로 그와 작별을 하였다.

 아쉬운 일은 물개들이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상은 물개가 아닌 물범이라고 했다. 백령도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물범서식지. 현재 500여 마리의 물범들이 서식하고 있단다. 물범들이 바다 밖으로 나오는 풍경을 가장 손쉽게 볼 수 있는 때는 2월과 3월, 그것도 밤이라고 하니 보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1박 2일의 백령도 관광에서 남은 것은 까나리액젓 한 통과 미역 한 꼭지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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