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전 수필

(고전수필 순례 29) 관부인전(灌夫人傳)[상]

거북이3 2009. 5. 3. 22:47

(고전수필 순례 29)

        관부인전(灌夫人傳)[상]

                                                     성여학 지음

                                                                                이웅재 해설

 관부인의 본적은 옥문(玉門)이다. 그 아버지는 영음후(潁陰侯)요, 그 어머니는 음려화(陰麗華)로, 기산(岐山)의 남쪽에서 부인을 낳았다. 어려서부터 고운 자색과 발그레한 얼굴에 붉은 입술을 지니고 있었으며 성품 또한 따사하고 보드러웠다.

 대력(大曆; 당나라 代宗의 연호.) 원년에 관부인으로 봉함을 받는 행운을 얻었는데 내조의 힘이 실로 컸던 때문이었다. 부인은 말이 드물어서 평상시에는 늘 입을 다물고 살았다. 또 비구니를 동경해서 초하루만 되면 반드시 납의(衲衣)를 걸친 채 정성을 다하여 불경을 외우면서 불력의 음덕[陰騭; 하늘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사람을 안정시킴.)을 바랐다. 그때 맹(猛)이란 이름의 장군이 하나 있었는데 그 또한 불자(佛者)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녹림산 속에 숨어 지냈는데 민대머리에 목줄기가 튼튼했고 기우(氣宇; 기개와 도량)가 헌걸차서 자못 이극용(李克用; 후당의 태조로 추존된 사람.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작아서 獨眼龍이라 불림.)을 닮은 외눈박이로 천하의 역사(力士)였다.

 장군은 계관산(雞冠山)의 불그죽죽한 성 가운데 자그마한 연못이 하나 있는데 그 연못의 물은 따뜻하게 솟아올라 온갖 병이 다 낫는다는 말을 듣고 연못의 주인인 관부인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하였다.

 “주맹(朱猛)은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말씀드립니다. 애꾸눈인 저는 맑은 덕도 없습니다만 부인의 향기로운 이름을 듣자온 지 오래입니다. 마침 제 몸에 가려움증이 있어 (부인의 연못에서) 한번 목욕하기를 원하는 바이오니 혹시라도 온탕을 허락해 주셔서 만에 하나라도 효험을 보게 된다면 부인의 바람에 감복하여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도록 축하해 드리겠습니다.”

 부인이 거기에 답장을 보내어 말하였다.

 “제가 기거하고 있는 곳이 누추하고 비록 옴팍하고 축축하긴 하오나 지난번에 임금께서 소첩에게 주관하라 하셨는데다가 거듭 칙령으로 일깨워주신 바 연못의 물을 흐리게 하지 말라 하셨기에 비록 장군님의 영이긴 하오나 부응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장군이 읽기를 마치자 노한 눈을 동동거리며 발끈하고 일어서서 즉시 낭주(閬州; 여기선 陰囊을 가리키는 말)의 두 태수를 불러 청령(聽令)토록 하여 말하였다.

 “그대들은 나의 관할 아래에 있는 바이니, 일심전력으로 이 성의 연못을 쳐부수시오.”

 한밤중에 양쪽 다리가 있는 봉우리로부터 음능천(陰凌泉; 外陰部)을 따라 벽문(壁門)으로 치달려 들어가서 수전을 도발하였더니 부인이 시달림을 견디지 못하여 임금에게 상소하여 말하였다.

 “신이 오래도록 요충의 땅에 살면서 오로지 도용(陶鎔; 陶冶鎔鑄의 준말. 훌륭한 스승 밑에서 인격을 갈고 닦음.)의 직책만을 본분으로 하여 천자 제후 및 어진 재상과 이름난 장수 등이 모두 신의 공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어찌 보지한[이바지한] 바가 적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주장군은 그 성정이 강려(强戾)한데다가 욕심도 많고 여력(膂力; 완력, 체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데다가 시도 때도 없이 돌진해 들어와서 그 형세가 방휼지세(蚌鷸之勢; 도요새가 씹조개를 쪼아 먹으려고 부리를 넣는 순간 씹조개가 껍데기를 닫고 놓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대립하는 두 큰 세력을 가리킴.)가 되었습니다. 이는 실로 벽문 안 내정(內庭)에까지 쳐들어온 도적이온 바, 청컨대 살펴 단속하셔서 그 난폭함을 그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에 천군(天君)이 이렇게 말하였다.

 “제중서(臍中書; 여기선 배꼽), 그대는 산봉우리에 거하면서 망을 살펴보는 장수로서 가(可)할 것이니 적의 동정을 엿보도록 하시오.”

 또, “황문랑(黃門郞; 항문), 그대는 비록 입 냄새가 있기는 하지만 본시 징을 잘 울리니 적이 만약 국경에 이르게 되면 징을 울려서 알리도록 하시오.”

 또, “모참군(毛參軍), 그대는 우림위(羽林衛; 陰毛)를 거느리고 있으니 적이 만약 옥문을 범하게 되면 흑색 노끈[陰毛]을 어지럽게 휘둘러서 적의 목을 묶어서 끌고 오시오.”

 또, “현(弦; 外陰部의 테두리), 그대는 방어를 맡다가 적이 만약 (膣의) 벽에 부딪치거든 힘을 모아 사로잡아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시오.”

 또, “갑(閘; 水門의 문짝. 곧 尿道 開口部 ), 그대는 어사가 되어 철퇴와 도끼를 쓰도록 함이 좋으리니 적과 만약 교전하게 되면 적의 골머리를 때려 부수도록 하시오.”

 이렇게 직분을 나누어주고 나자 관부인이 입을 열어 혀[내음순(소음순)]를 내밀어서 감사하다고 말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고, 피를 발라 동맹을 맺어 전력 수비를 다짐하였다. 이윽고 장군이 노기를 뻗치고 투구[包莖]를 벗고 몸을 솟구쳐 관문을 두들겨 부수고서 세 번 들어갔다가 세 번 물러났다 하는데 한결같이 옥장술(玉帳術)에 의거하였고 앉았다가 쳐들어가고 찌르고 하는 방법이 틀림없이 용도법(龍韜法; 六韜 중의 하나인 병법)에 들어맞았다. 계속하여 제멋대로 닫았다 열었다 하니 그가 향하는 곳마다 앞에 거칠 것이 없었다. 관부인은 나라의 본거지가 이미 요동을 치고 사세가 더 버티기 어려워지자 백수진인(白水眞人; 愛液)에게 도움을 청하기에 이르렀다. 진인(眞人)이 말했다.(다음호에 계속)

♣해설:

「관부인전」은 여성의 성기를 의인화한 가전체 작품으로 송세림(宋世琳)의 「주장군전(朱將軍傳)」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지은이 성여학[成汝學; 1557년-?]의 자는 학안(學顔) 호는 학천(鶴泉) 또는 쌍천(雙泉)이고,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성혼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는데 특히 시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광해군 2년 (1610) 식년(式年) 진사시에 일등으로 합격, 시학교관(詩學敎官)이 되어 동몽(童蒙)에게 시를 가르쳤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의하면 저자는 일찍부터 시재(詩才)를 보였던 것에 비해 거의 평생을 불우하게 보내어 60이 되도록 벼슬 하나 얻지 못하였으나 스스로 시학에 힘쓰는 한편 여항(閭巷)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아왔다.

「관부인전」은 그의 한문소화집인『속어면순(續禦眠楯)』에 실려 있는데, 후세인이『고금소총(古今笑叢)』과 같은 골계야담집 따위를 엮을 때는 단골 메뉴로 등장하게 된 글이다. 번역은 金昌龍의『韓國假傳文學選』을 따랐으나, 부분적인 윤문 등은 해설자가 하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