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수필 순례 32)
산천 풍속 총록(山川風俗 總錄)[하]
김창업 지음
이웅재 해설
…모든 대소사(大小事)는 남자가 다 그 수고로움은 맡는다. 수레를 몰고 밭을 갈고 나무를 지는 일 외에도 물의 운반, 쌀찧기, 씨뿌리기에서부터 심지어 베를 짜고 바느질하는 일까지도 모두 남자가 한다. 여자는 드물게 문밖에 나오며 하는 일은 신바닥을 꿰매는 일에 불과할 뿐이다. 시골 여자는 간혹 곡식을 까불거나 밥 짓는 일 등을 간혹 직접 하기도 하는데, 가게에서는 오가는 여자들을 결코 볼 수가 없다.…
남자가 짐을 운반할 때 어깨에 메지 등에 지지는 않는다. 나무 막대기 하나의 양 끝에 물건을 매달아 어깨에 메는데 ‘편담(扁擔)’이라 부른다. 한 번에 멜 수 있는 무게는 100근이나 되며, 물이나 땔감을 운반하는 데에도 이 방법을 쓴다. 먼 길을 가는 자는 행리(行李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 행장)와 포개(鋪蓋 깔 것과 덮을 것)를 하나로 싸서 어깨에 얹는 방법을 이용하고 힘이 겨울 때는 좌우의 어깨로 번갈아 옮겨 멘다. 아무리 천 리의 먼 길을 가더라도 모두 이렇게 한다. 대체로 짐은 어깨에 메며 등에 지지는 않는다.
성읍이나 촌락이 번화한 곳의 들판에는 노출된 관(棺)이 많다. 어떤 것은 관의 바깥에 벽돌을 쌓고 석회로 발랐으며, 어떤 것은 다만 돌무더기로 그 위를 눌러 멋대로 썩게 한 것도 있다. 이것은 가난해서 장례할 땅이 없거나 아니면 객지에서 죽어 귀장하지 못한 자들인데, 결국은 불에 태워버리게 된다고 한다.…
담배[南草]는 남녀노소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손님을 접대할 때 차와 함께 내오므로 담배를 ‘연다(煙茶)’라고 한다. 그런데 그 담배는 잘게 썰었고 바싹 말려서 습기라곤 없으므로, 깜빡할 사이에 다 타는데도 거듭 피우지 않고 한 대로 그친다. 또 하루 종일 피우는 것이 많아야 너댓 대이다.…
나물은 마늘[葫], 파[蔥], 배추[菘], 갓[芥], 무[蘿], 콩[荳], 마름[蓤], 시금치[菠] 속명 시근채(時根菜), 당근[胡蘿葍; 紅蘿卜, 홍당무라고도 함] 속명 당근(唐根)이 가장 흔하고, 상치[萵苣], 미나리[芹], 씀바귀 따위도 있었다. 당근은 빛깔이 붉어 붉은 무 같다. 미나리 맛은 맵고 씀바귀는 우리나라의 산품과 비슷하였다. 무는 볼래야 볼 수 없었고 산약(山藥)은 역시 많은데, 모두 텃밭에서 심은 것으로 굵기는 하나 맛은 별로 없었다. 통원보(通遠堡)의 고사리는 가장 좋았다.
소주(燒酒)는 맛이 우리나라의 것과 같았으나 마신 뒤에 뱃속이 편치 못하였다. 아마도 석회를 타서 그런 듯하였다. 술은 계주(薊州), 역주(易州)의 술이 모두 맑고 차서 우리나라의 백하주(白霞酒) 못지않았지만 도수가 약하여 취기가 쉽게 깬다. 술을 담그는 법이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모두 찰기장으로 만든 것인 듯하다. 북경 통관 박인득(朴仁得)의 집 술과 사하보(沙河堡)의 유계적(劉繼迪)의 집 술은 아주 좋아 계주의 술보다 나았다.
장은 콩과 밀로 만든다. 메주[燻造]를 보니 우리나라 메주와 같은데 한 덩이의 크기가 말[斗]만 하였다. 맛은 싱겁고 조금 시지만 잡맛이 없어서 먹을 만하였다. 파는 장은 팥을 섞어 만드는데 맛이 더욱 좋지 않았다.
땔감은 대개 수수깡 아니면 버드나무인데 톱으로 베고 도끼로 베지 않는 까닭은 도끼밥을 아까워하기 때문이다. 탄(炭)은 거의 석탄이며 나무숯도 있다. 석탄의 빛깔은 매우 검으며 덩이의 크기는 일정치 않다. 석탄 부스러기는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풀을 집어넣어 화전(花磚)을 찍어서 만든다. 시장에 무더기로 쌓아 놓은 것이 다 이것들이었다. 다 타지 않은 것은 불을 꺼 놓았다가 다시 쓸 수 있다고 하였다.…
말안장과 고삐의 장식은 구리나 철을 별로 쓰지 않았으며, 노새의 등자(鐙子 말을 탔을 때 두 발로 디디는 제구) 같은 것은 흔히 나무를 굽혀서 만들었다. 구리나 철이 귀한 때문이리라.
밥을 짓는 데는 모두 가마솥을 쓰는데 솥바닥이 평평하기 때문에 쉽게 끓는다. 세발솥과 노구 등은 본 적이 없다. 물 긷는 그릇은 다 버들로 엮어 만들었기 때문에 가볍고 질기다.
작두[剉刀]는 날이 얇고 날카롭다. 한 사람이 손으로 누르면 한 단의 풀을 능히 썰 수가 있으니 우리나라의 발로 밟는 것보다 낫다.…
과일은 산사(山査)의 크기가 배[梨]만한데, 100개 중에 하나도 벌레 먹은 것이 없다. 살이 두껍고 맛이 좋다. 수박은 모양이 길쭉하고 속은 노랗고 씨에 검은 반점이 있는 것이 많고 맛도 좋다. 밤은 우리나라의 것처럼 껍질이 붉으며 서로 붙어 있다. 밤은 불에 구우면 껍질도 잘 벗겨지고 맛도 좋다. 포도는 알이 크고 맛도 좋은데 자색 포도가 많다. 수박씨[西瓜子]는 수레나 상점에 쌓여 있고 남녀노소가 모두 앉거나 서서 먹는다. 씨가 많은 것은 따로 종류가 있으며 살은 먹지 못한다. 대추는 우리나라 산품에 비해 갑절이나 크며 살이 두껍고 씨가 작다. 이른바 검은 대추가 더욱 좋다. 밀감과 귤 등은 6, 7 종류가 되는데 맛은 다 좋다. 그중에도 유감(乳柑)과 문단(文丹)은 맛이 일미인데, 문단은 구경하기 힘들고 유감은 값이 적잖아, 1개에 60전이니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1전이 된다.…
독륜거(獨輪車)가 있는데, 한 사람이 뒤에서 민다. 100여 근을 실을 수 있으며 분뇨를 싣는 데도 다 이것을 쓴다. 나귀는 동팔참(東八站)과 금주위에 가장 많으며, 관내(關內; 秦나라 때 장안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에워싸는 4개의 관문을 설치하였는데, 이 때문에 섬서성의 서안[西安 곧 長安] 일대를 관중(關中) 또는 관내라 불렀다. 관외(關外)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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