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 39) [과거 지향적인 글쓰기]
이 웅 재
지나간 시간은 안타깝다. 그래서 가끔 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단 1년만이라도. 아니, 단 한 달, 그것도 많으면 하루. 그러나 되돌릴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단 한 시간, 아니, 단 5분만이라도 돌릴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품게 된다. 불가능하기에 간절해지는 것이다.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면 열심히 노력을 하면 성취될 수도 있겠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에 안타깝고 절실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서정주(徐廷柱)의 ‘신부(新婦)’를 보자.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알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필요한 시간 단 1분만이라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다면, 그래서 신랑이 오줌을 눈 후에 방으로 돌아와 보았더라면, 그들 부부는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라 하겠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은 우리를 붙들고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돌아보게 하는 그 손길, 되돌릴 수 없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돌아보고 돌아보고 하게 된다. 미련이 쌓인다. 쌓이고 쌓인 미련이 그리움으로 굳어진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그렇게 그리움의 덩어리가 된다.
시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공간도 그렇다. 나의 삶이 처음 시작된 공간, 그걸 우리는 흔히들 고향(故鄕)이라고 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도 죽을 때엔 자기가 살던 곳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 했는데 하물며 사람인 것이랴? 누구에게나 고향은 그리운 법이다. 설날이나 추석 때가 되면 그 극심한 교통정체를 겪으면서도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존경심마저 든다. 그런 소중하고 그리운 공간을 놓고서 서로 싸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영남이니 호남이니 해 가면서 손바닥 만한 좁은 땅덩어리에서 그래서야 쓰겠는가? 내 고향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고향도 살뜰히 대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서로서로 상대방의 그리운 고향을 존중해 준다면, 세상은 정말로 화평(和平)해질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과거와 고향은 늘 그리운 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문학작품의 소재로서도 자주 등장한다. 고통스러웠던 일로 가득 채워진 과거라도 지나간 후면 그리운 시간이 된다. 떠나고 싶었던 고향이라도 막상 떠나서 살다 보면 그리운 장소로 남는다.
파스칼은 말했다.
우리는 매일 먹고 또 잠을 자지만 지치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굶주림과 수면이 새로 오기 때문이다. 만약 평화와 행복만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정신은 당장 지쳐버리고 말 것이다. 고통은 정신의 양식이다. 사람에게 고통이 없다면 극히 무능력한 상태가 오고 말 것이다.
쇼펜하우에르도 말했다.
약간의 근심, 고통, 고난은 항시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바닥짐을 안 실은 배는 안전하지 못하며 곧장 갈 수 없으리라.
세네카도 말했다.
참고 견딘 일은 달콤한 기억이 된다.
그래서 힘들었던 시절, 어려웠던 고향 생활이었더라도 우리는 늘 그것을 그리워한다. 그런데 그 ‘기억’이라는 놈은 무생물이 아니다. 놈은 살아있는 존재인 것이다.
스타인벡의 “불만(不滿)의 겨울”에 나오는 한 구절을 보자.
기억도 번식을 한다. 하나의 뚜렷하고도 섬세한 현상으로 시작하였다가 격렬히 동작하며 한번 시동하면 필름처럼 앞뒤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적의 고향은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는 것이다. 14살의 이원수(李元壽)가 지은 동요에 홍난파(洪蘭坡)가 곡을 붙인 ‘고향의 봄’은 그래서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서 영원한 노래로 남아 있게 되는가 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그렇게 그리운 시절, 그리운 곳이지만 현실은 늘 그곳에서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의 삶이다. 그러다 보니 하나둘 ‘동창회’라는 것들이 생겨났다. 완전할 수야 없지만, ‘동창회’는 시간과 공간을 일부분 되돌려주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치부(置簿)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과거지향적인 동창회와 관련된 필자의 글 하나를 보기로 하자.
‘동창회와 추억의 파편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는 반가운 법이다. 그것은 이제는 나의 생활과 거의 무관한 지나간 시간을 나에게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동창회(同窓會)가 있었다. 엄격하게 따진다면야 동기동창(同期同窓)들의 모임이지만 통상 그냥 동창회라고들 하니, 그렇게 알아두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여러 모로 편안하다.
“저어기, 영달이 오는구먼.”
먼저 온 친구들끼리 새로 나타나는 친구를 반긴다. 어쩌다 처음 나오는 친구라면, 애써 이름들을 생각해 내느라고 사뭇 고민스런 표정들이다. 생각해도 생각해도 입 안에서만 뱅뱅 돌고 이름이 곧바로 말이 되어 나오지 않을 때는 답답하기가 그지없다.
“거…저, 왜 있잖아? 음…음, 서리, 서리 대장 말이야….”
서리 대장? 글쎄, ‘총리서리(總理署理)’는 있어도 ‘대장서리(大將署理)’는 못 들어 봤는데, 그것도 아니고 ‘서리 대장’이라…. 그 친구와 악수하느라고 손을 맞잡고 흔들어대다가 문득 하나의 그림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달빛도 어스름한 어느 날 밤, 살금살금 참외밭으로 접근하는 그림자. 맞아, 그 친구와 나는 가끔 참외 서리를 다녔었다. 마을에서 한 10분쯤 걸어서 나지막한 산자락 끝 쪽에 있었던 참외밭. 우리는 항상 그 밭만을 주된 대상으로 삼았었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더구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데, 같은 곳만을 대상으로 삼다니? 그러나 모르시는 말씀을랑 아예 하지들을 마시라. ‘서리’만큼 엄격한 ‘룰(rule)’이 있는 일도 드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룰’이란 건 단 한 가지. 그래서 아무리 머리가 나쁜 놈이라 하더라도 그 ‘룰’만은 잊어버리는 법이 없다. 그것만 지키면 무슨 일이 있어도(여기서 ‘무슨 일’이란 주인에게 들키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인데),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것은, 바로 ‘주인집 아들과 동행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국민학교 시절부터 ‘원칙’을 잘 지키는 착한(?) 학생들이었다. 흙이 묻은 껍질을 옷에다가 슥슥 문질러 떨어내고, 주먹으로 탁! 내리쳐서 조각이 난 참외를 껍질째 으적으적 씹어 먹는 그 맛이라니…,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침이 저절로 꿀떡 삼켜진다. 구름에 가리었던 달이 삐죽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그런 낭만이 또 없었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뛰어다니는 요즘 학생들을 보면, 참으로 불쌍한 생각이 드는 것은 그와 같은 낭만을 모르고 지내기 때문이다. 영달이는 그 참외 서리할 때마다 늘 앞장을 서던 친구라서 ‘서리대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것이다.
“저거, 철수 아냐?”
또 한 친구의 말이다. 철수, 그 흔해빠진 이름 철수. 그러나 내게는 흔해빠진 철수가 아니다. 그는 둘도 없는 내 짝, 내 영원한 짝꿍인 것이다. 철수네 집에는 ‘촉고(數罟)’가 있었다. ‘수(數)’자가 ‘빽빽할 촉’ 자가 되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촉고를 통해서 일찍 터득하고 있었다. 명주실로 짠 일종의 그물, 양 끝 쪽에 긴 막대기를 달아서 냇가 이쪽저쪽에 그 막대기를 꽉 박아놓으면 웬만한 냇물은 완전히 차단되게끔 만든 그물이다. 촉고로 고기 잡는 일은 정말로 신나는 놀이였다. 냇물의 상류 하류가 따로 필요 없이 아무 쪽에서고 몇 놈이 텀벙텀벙 ‘갈 지(之)’ 자(字)로 촉고 쪽을 향해 한바탕 고기를 몰기만 하면 되었다. 따라서 촉고로 고기 잡는 일은 순전히 어린아이들 몫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뛰어다니려면 젖을 만한 옷이란 건 애시당초 있어서는 안 되니까. 그냥 홀라당 벗고 마구잡이로 들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이랴? 놀라 도망가다 그물코에 걸린 고기들은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칠 것이다. 아니 고기에게 무슨 ‘발’이 있는가? 그러니 ‘발버둥’이 아니라 ‘몸태질’을 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몸태질을 치면 칠수록 놈들은 점점 더 그물코에 옭아드는 신세가 될 뿐이다. 그물코는 명주실로 되었기에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더 조여들게 마련인 때문이다. 그런 놈을 그물코에서 떼어내려고 손바닥으로 꽉 잡을 때의 쾌감이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퍼드덕거리는 생동감! 낚시하는 사람들은 붕어들의 입질로 인해 찌에서부터 전달되어 오는 미세한 감각, 거기에 매료된다지만, 나는 단연 촉고로 고기 잡을 때의 그 넘쳐나는 율동감(律動感)을 잊을 수가 없다. 철수야, 고맙다, 요즘 같이 매사 무기력한 시대에 축 처진 어깨를 펴고, 더할 수 없는 역동감(力動感)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동창회, 만세다.
“어서 오세요, 윤자 씨.”
그 소리에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6학년 시절이던가, 그때 나는 윤자를 끔찍이 좋아했었다. 나보다 나이가 몇 살 위였지만. 6․25 직후이다 보니 그때는 사춘기의 학생들도 6학년쯤이면 한 반에 몇 명씩은 있었던 때였다.
장난꾸러기 남식이 덕분에 나는 윤자의 엉덩이를 몇 번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었다. 그때는 여름이면 검은 색 ‘사루마다’를 입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요즈음으로 따진다면 고무줄이 있는 ‘팬티’이었겠는데, 남식이는 곧잘 윤자의 그 사루마다를 뒤에서 느닷없이 벗겨내리는 것이었다. 어쩐 일인지 나는 그럴 경우 꼭 그미의 뒤에서만 그 예쁘장한 엉덩이를 구경할 수가 있었다. 무척 가지고 놀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어 주는, 그 어떤 신선한 충격, 그것은 나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동창회가 끝난 이튿날, 나는 그미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었다.
“제가 왜 전화했는지 모르시죠? 몇십여 년 간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말 한 마디가 생각나서요. 윤자 씨, 사랑했습니다. 만나주실 거죠? 지금 날짜를 신청하는 겁니다. 날짜, 영어로는 데이트라고들 하데요.?
예쁜 엉덩이 얘기까지는 차마 할 수가 없다. 그만해도 감미로운 낭만일 수 있을 텐데, 현실 속의 나는, 그마저도 상상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미안합니다. 윤자 씨. 이제는 그미도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모습이었다. 할머니 소리도 들었음직하다.
할머니, 할머니가 그립다. 우리들의 할머니가 가난했던 시절, 왜 그렇게 물것들은 많았던지? 밤새도록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蝨], 빈대[蜚, 蜰], 벼룩[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물것들. 빈대는 정력제(精力劑)라나? 그것도 한국산 빈대, 사람 손에 잡히면 냄새도 고약한 그놈들이 정력제로 외국에 수출까지 되어 애국을 했다는,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하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고, 벼룩은 박광수의 만화에도 나왔다지, 아마?
제 몸의 몇십 배, 몇백 배를 뛸 수 있는 벼룩은 높이뛰기 선수들이 스승으로 삼아 연구해야 할 능력의 소유자이다. ‘이’란 놈이 물것 중에서는 대표격이겠는데, 놈들의 퇴치에는 단연 우리네 할머니들이 일등 공신이었다. 조선조 후기 안정복의 ‘여용국전(女容國傳)’이나 한글본 ‘여용국평난긔’를 보아도 ‘이’의 퇴치 장면은 매우 해학적인데, 그것이 어디 해학으로만 끝날 일이던가?
‘이’를 잡는 방법은 매우 주도면밀해야 한다. 우선 그놈들은 천부적 은신술(隱身術)을 자랑하고 있느니만큼 그 수색 작업부터가 매우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옷 솔기솔기마다 숨어 있는 놈들을 위해 끈질긴 인내심을 동반한 수색 작전을 펴야 한다. 드디어 놈을 발견한다. 그러면 그 다음 행동은 아주 세밀한 계획에 의한 진행이 필수적이다. 우선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놈들을 조심스레 생포하여, 왼쪽 손 엄지손가락의 손톱 위에 정중히 모셔 놓고, 다시 오른손 엄지손가락의 손톱을 가져다가 왼쪽 엄지손가락의 손톱과 마주대고, 있는 힘을 다해, ‘이’란 놈을 사이에 두고 ‘아얍!’ 기합 소리와 함께 놈을 압살(壓殺)해야만 한다. 놈은 피를 토하면서 죽는다. 하얀 손톱에 선혈이 낭자(狼藉)하다. 어떤 민족은 그것이 우리 몸을 빨아먹은 피니까 아까워 버릴 수 없어 ‘쪼옥!’ 빨아먹기도 한단다. 그러나 우리 배달민족이야 그럴 수가 없다. 그 피를 방 벽에다가 쓰윽 문지른다. 이리 문지르고 저리 문지르고. 때에 따라서는 위쪽으로 문지르다가 갑자기 뚝 꺾어서 아래쪽으로 문지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 벽 위에는 난초 그림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예술적 감각이 풍부한, 특히 난초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멋을 아는 민족, 풍류를 즐기는 민족의 전형적인 예술 작품이 벽 위에 선명히 그려지는 것이다. 윤자 씨, 고마워, 나의 난초 그림을 추억할 수 있게 해 주어서.
동창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는 그래서 남녀 불문, 반가운 법이다. 지금쯤, 윤자는 자고 있겠지? ‘날짜’ 신청을 위해 전화를 걸어도 ‘지금이 몇 시인데…. 아마도 장난 전화일 거야.’하고 그대로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안 하겠지?…. 나의 사랑했던 친구야, 가끔은 잘못 걸려온 전화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우선 모두들, 과거지향적인 글, 고향이나 어머니에 대한 글부터 써 보자. 그러면, 그 고향과 어머니는 “얘야, 이젠 좀더 넓은 물에 나가서 살아야 되지 않겠니?”하고, 보다 고차적인 글쓰기로 당신을 내몰 것임에 틀림없다. 그럴 땐 그저 못 이기는 척, 끼적끼적 원고지를 채워 보자. 아니, 컴퓨터의 ‘빈 문서’를 채워 보자. 나중에 그 빈 문서에 제목만 붙이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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