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모여라, 삼촌 이내로(?)
이 웅 재
인기 연속극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이 하야시패와 한 판 붙기로 된 날이다.
김무옥이 말한다. “큰형님 말씀 들었제? 아무 말 안 헐 것이여. 그러니께 빠지고 싶으면 지금 빠져라.”…
사내1: 싸우겠습니다.
사내2: 저도 싸우겠습니다.
사내3: 저도 싸우겠습니다.
주먹패들에게서 ‘형님’은 ‘생사여탈권자’, 바로 ‘신’이었다.
‘박통’ 때, 군대에서도 ‘형님’이 위력을 발휘했었다. 후배 장교가 선배 장교에게 은밀하게 ‘형님’이라고 부르면, 계급 가지고는 해결되지 않던 일도 쉽게 해결되곤 하였다. 형님은 2촌, 한 가족인 것이다. 가족이란 모든 집단 속에서 가장 결집력이 강한 성격을 지닌다. 다른 말로 하면 가장 배타적인 성격을 지닌 집단이라고도 하겠다. 최근 들어 이 가족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마도 IMF라든가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그런 때일수록 모두가 똘똘 뭉쳐야지만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긍정적인 현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싶다.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갸륵한 여학생의 말이다.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여드름이 득시글득시글한 남학생도 연로한 어르신을 2촌으로 대접을 해준다.
“언니, 여기 삼겹살 1인분 추가요.”
쐬주 한잔 하다 보니 촌수를 잘못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음식점에서 서빙하는 젊은 여자를 보면 한결같이 ‘언니’라고 부른다. 그 여인은 졸지에 손님과는 2촌으로 자리매김 된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여종업원이면 3촌에 해당하는 ‘이모’로 불린다.
“아저씨, 말씀 좀 묻겠는데요. 시청엘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요?”
생면부지의 청년이 나를 3촌으로 편입시킨다. 상대가 여성일 경우에는 같은 3촌인 ‘아주머니’로 불리는 것이 다를 뿐, 역시 우리는 한 가족(?)이 된다.
이우근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11월 8일자 ‘중앙시평’의 ‘끔찍한 피붙이 사랑’에서, ‘중년이면 죄다 3촌뻘인 아저씨, 아주머니고, 어르신들은 모두 2촌인 할머니, 할아버지다. 젊은이들끼리는 스스럼없이 형, 동생, 누나로 통한다. 예전엔 남편을 아빠라고 불렀는데 요즘엔 오빠로 부른다.’고 했다. 아빠는 1촌, 오빠는 2촌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가 ‘한 가족’인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온통 1촌(아빠), 2촌(형님, 오빠, 언니,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3촌(아저씨, 아주머니, 이모)이다.
4촌만 되면 벌써 가족의 범주를 벗어난다. 3촌까지는 당사자가 결혼 전일 경우에는 보통 한집에서 산다. 3촌까지는 ‘우리’라는 말이다. 그러나 4촌이 한집에서 사는 경우는 특수한 경우 말고는 별로 없다. 4촌이란 벌써 한 가족이란 개념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4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사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 남이 잘되는 것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빈정대는 말이 아닐까?
영어에서의 ‘나’는 ‘I’로 나타낸다. 너(you), 그(he), 그녀(she), 우리(we), 너희(you), 그들(they)은 모두 소문자로 시작되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나(I)’만은 대문자이다. 따라서 영어권의 나라에서는 오직 내가 최고선(最高善)이 되는 것이다. 나만이 최고선이다 보니 각개약진이 두드러질밖에. 개인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연유가 바로 이런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에 비해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는 ‘우리’ 의식은 얼마나 바람직한 것인가?
똘똘 뭉칠 수 있는 한 가족 ‘우리’, 대타 관계에서의 ‘우리’는 매우 강한 단결력을 성취시킬 수가 있다. 5,000년 동안의 가난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우리’ 의식의 빛나는 승리가 아닐 것인가?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잘못된 ‘우리의식’은 바로 ‘우리 남편’, ‘우리 아내’와 같은 말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고 하겠다. ‘남편’과 ‘아내’를 어찌 ‘우리’라는 복수 대명사로써 관계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잘못된 ‘우리’의 강조는 다른 쪽에서 보자면 끼리끼리의 모임, 곧 ‘유유상종’의 정서가 극대화되는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울타리 밖의 존재에 대한 적대감, 그것은 파벌의식으로 중무장을 하게 되고, 바로 그러한 파벌의식이 조선조 500년을 병들게 했던 당파 싸움으로 드러났던 것이 아니던가? 최근 정치권의 여야 대립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는 일이다.
이제 ‘우리의식’을 넓혀 나가자. ‘너희’와 ‘그들’도 ‘우리’ 속으로 끌어들이자. 그건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웃사촌이 땅을 살 때, 축하해 주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이웃사촌도 틀림없이 ‘우리 편’이 되어 줄 것이다. 그걸 배 아파해 보아야 아픈 건 ‘나’뿐이니 ‘나’만 손해나는 일이란 점을 상기하자. 그렇게 마음을 바꾸면, ‘이웃사촌’에게 좋은 땅을 사도록 권유도 할 수 있을 것이요, 때에 따라서는 부족한 돈을 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함께’ 살아나가는 지혜를 기르자. ‘더불어’ 살아나가는 사회를 만들자. ‘대한민국’은 ‘우리’에게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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