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만원

거북이3 2013. 8. 19.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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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원

                                                                                                                                         이 웅 재

올 봄에 초등학교엘 처음 들어간 외손녀가 방학이 되었다고 찾아 왔다. 요즘 늙은이들, 제일 신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십중팔구가 외손녀 보는 맛에 산다고 한다. 요새 손자보다는 손녀가 먼저요, 그것도 친손녀보다는 외손녀가 단연 랭킹 1위가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 외손녀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하부지, 우리 백화점에 가요!”

외손녀의 나에 대한 호칭은 아직까지도 ‘하부지’이다. 그래서 더 귀엽다. 어느 명이라 거역할 수 있으랴! 우리는 손잡고 백화점엘 갔다. 몇 층을 가려고 했던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그게 탈이었다. 우리가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 ‘삐이-’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러면서 눈앞으로는 ‘만원’이라는 붉은 글씨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키, 서영아, 내리자. 만원이란다.”

서영이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이거 타는데 만 원씩이나 내야 되어요?”

서영이에게 만 원은 거금이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밖에 돌아오지 않는 세배, 그 세뱃돈으로 받는 것이 대체로 만 원씩이었던 것이다.

서영이는 아직 ‘만원(滿員)’과 ‘만(萬) 원’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데 갑자기 나도 헷갈린다. ‘만원(滿員)’의 사전적 의미는 ‘정한 인원이 다 참’이다. 그러니 더 이상 타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야 할 터인데, 엘리베이터의 ‘만원’은 그게 아니라, ‘정한 인원이 넘음’의 뜻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만원’이라는 말은 그 ‘정한 인원을 넘기게 탄 사람은 어서 빨리 내리시오’ 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한때 버스의 경우엔 만원임이 분명한데도 차장의 승객 밀어 넣기 기술이 얼마나 좋은지 꾸역꾸역 더 태우던 시절이 있었고, 지하철에서는 아예 푸시맨까지 등장을 해서 ‘만원’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던 적도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의 만원은 내리라는 뜻이다. 버텨봐? 어림도 없다. 사람이 버티면, 엘리베이터도 따라서 버티는 것이다. ‘만원’이라는 말이 이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예는 없을 것이다.

이호철의 장편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도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말 중의 하나였다. 인구 380만이던 1960년대, 각처에서 모여든 뜨내기들이 위선과 거짓과 기만 등으로 서로 어우러져 살을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얘기는 그나마 사람 냄새가 나서 좋았다. 현재를 기준으로 해서도 ‘일원동’과 같은 법정동(法定洞)이 472개밖에 안 되고 행정동(行政洞)으로 따져도 522개에 국한되는데, ‘만(萬) 원’이나 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과장된 표현이었지 싶기도 하고, 인구 천만을 넘어간 오늘날과 대비하면 1/3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시대를 ‘만원(滿員)’이라고 엄살은 떤 것도 오히려 정감이 가서 괜찮았다. 그런데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어 준다는 기계라는 놈은 도대체가 인정머리가 없는 것이다.

영화관 같은 데서 써 붙였던 ‘만원사례’의 ‘만원’은 또 어떤가? 그건 순전히 허풍이었다. ‘만원’도 성에 차질 않아서 ‘초만원’에 ‘초초만원(超超滿員)’까지 등장시켰으니, ‘그것은 빨리들 와서 보시라’는 재촉이었다. 그 ‘만원’은 아마도 ‘만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에는 극장에서도 ‘만원’이라는 말은 잘 쓰질 않는다. 2013.8.19일자 『조선일보』 기사를 보자.

“일본 소극장 ‘타이니 앨리스’, 30년째 한일 연극 축제 열어/ 초청작 ‘결혼’ 오르는 날, 보조석 쿠션까지 동원돼 滿席”

‘만원’ 대신 ‘만석이라는 말을 썼다. 기사를 보니, 나도 한 번 관람하고픈 작품이라 생각되었다. 결혼을 하고 싶은 빈털터리 남자가 집부터 옷까지 모든 것을 빌려서 꾸며놓고 결혼정보회사의 알선으로 찾아온 여성에게 청혼한다는 줄거리란다. 여자는 결국 속은 걸 알게 되지만, 남자가 빌리지 않았던 유일한 한 가지, 진심의 힘에 끌려 청혼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라는데, 관객에게 넥타이와 옷까지 빌리는 설정을 했고, 한국말로 청하는 배우의 눈빛을 알아챈 일본 관객들은 옷을 벗어주고, 넥타이도 풀어주고는 했다는 것이다. 신주쿠의 8층 빌딩 지하에 세든 소극장의 광고는, 건물 바깥에 내놓은 작은 입간판이 유일한 것이라는데 말이다.

다시 서영이가 말하던 ‘만(萬) 원’으로 돌아가 본다. 요즈음 나는 마음 맞는 남녀 예닐곱 사람과 함께 매주 화요일 4시 반쯤 만나 석식 겸 일 잔하는 일이 커다란 낙(樂)이다. 모임의 이름은 ‘매화랑’(매주 화요일에 만나는 郞과 娘→每火郞, 每火娘→‘랑’은 ‘너랑 나랑’의 ‘랑’의 뜻까지 취해서 ‘梅花랑’)이다. 백수들의 모임이라서 식대 및 술값은 만 원 한 장씩을 갹출하여 충당한다. 물론 비싼 고급 음식점은 사절이다. 7천 원 정도 하는 국밥 등속에다가 3천 원짜리 소주 각 1병이 기본이다. 그렇게 먹고 마시면 1인당 딱 만 원이 든다. 안주거리는 따로 시키지 않는다. 반주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지지고 볶고 하노라면 그 이상 가는 안주가 있을 성싶지도 않다. 예컨대, 이런 거 말이다.

“대통령 한 번 하고 나면, 최소한도 몇 천억 정도는 모아 놓았어야지 기껏 29만 원밖에 없다니 참 해도 해도 너무나 청렴했군, 청렴했어!”

“29만 원이라구? 뭘 모르는 소리 작작하라구. 그 정도만 있어도 고급 주택에다가 심심하면 골프라도 치면서 여유 만만하게 살 수가 있다구.”

“아니, 1,672억 빚이 있다는 건 모르시는감? 요번에 그 추징금 받아낼 수 있을란가 모르겄네.”

“옳거니! 만 원 한 장이면 떡볶이가 다섯 접시요, 천 원짜리 김밥이 열 줄이라네.”

이렇게 이바구가 옆길로 새기 시작하면, 별 싱거운 소리도 다 나오게 되어 있어 짭짤한 재미가 보통은 넘게 되어 있으니, 어찌 낙중낙(樂中樂)이 아닐까 보냐?

                                                                                       (2013.8.19. 원고지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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