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

거북이3 2012. 4. 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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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

                                                                                                                                                                            이 웅 재

 

술을 좋아하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구는 이미 혀가 꼬부라진 상태였다.

“나 지금 한잔 하고 있는데, 네가 없으니까 술맛이 안 난다. 빨리 나와!”

반 명령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나이기는 하지만, 외출했다가 방금 귀가한 내 처지로서는 다시 밖으로 나가기는 싫었다.

“안 돼, 못 나가!”

“왜? 술고래가 술을 마다하는 거야?”

“그게 아니구, 나 지금 감기 기운이 있어서….”

거짓말이었다. 속으로는 열심히 자기합리화를 내세우고 있었다. ‘나쁜 의미로 하는 거짓말은 아니잖아?’ 그런데도 왠지 찜찜한 느낌이었다. 경남 함안 출신의 시인 주강식의 시 하나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말의 무게’라는 시였다.

거짓말의 무게는 1g/ 선생의 말은 5g

노인 말은 0g/ 자식 말은 1톤

모든 말/ 부도난 시대에/ 자식 말만 무겁다.

시에 의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의 무게는 1g이었다. 선생의 말은 5g이라고 했으니까 그래도 조금은 무게가 나간다는 말일까? 아니, 아니다. ‘모든 말/ 부도난 시대에’라는 표현은 ‘자식 말’ 이외의 말들은 모두가 오십보백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점심시간 다음 저절로 눈꺼풀이 닫히는 수업시간이라면 선생의 말이 귓등에도 들리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아니,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선생의 말이 그 어떤 말보다도 천근만근 무거울 때도 있는 법이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대학입학원서를 쓸 때의 일이다. 고3 담임에게는 가장 보람 있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난감한 때이기도 하다. 입시배치표를 앞에 놓고 학생의 성적을 감안해서 어느 대학으로는 진학이 힘들 것 같고, 어느 대학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학생과 학부모와의 상담은 엄청난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말 한 마디에 학생의 장래가 달라질 수 있는 일인데다가, 서로 의견이 엇갈릴 때에는 좀처럼 접근점이 찾아지지 않아서 애를 태울 수밖에 없는 작업이 바로 원서쓰기였다.

당시에는 모든 대학의 원서마감일이 보통 같은 날이었다. 며칠 동안, 되니 안 되니 실랑이를 하다 보면 마감일쯤에서는 파김치가 되어 버린다. 그날 오후 늦게, 그때까지 한 번도 상담하러 오지 않았던 학생 하나가 학부모 대동도 없이 단기(單騎)로 나타났다.

학생이 내놓는 원서는 그의 예비고사 성적으로는 택도 없는 K대학이었다.

“욕심이 좀 과하구나.” 안 된다는 말이었다.

“다른 대학원서는 쓰지 않겠습니다!” 학생은 단호했다.

“대학을 안 가겠다고?”

“예, 다른 대학에는 가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나타난 것이로구먼.”

“예, 그렇습니다!”

“가능한 일을 하고자 하는 일은 ‘도전’이라고 하지만, 가능하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려는 것은 ‘무모함’이라고 한다는 말쯤은 알고 있겠지?”

“간절히 원하는 일은 성취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하는 말의 종결어미 뒤에는 늘 감탄부호(!)를 붙여야만 하는 어조(語調)였다.

“안 돼!” 나도 감탄부호를 붙일 수 있는 어조로 받았다.

“제 일생일대의 소원입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안 된다니까!” 이때의 내 말의 무게는 분명 5g은 넘어섰을 것이다.

“안 되면 재수할 겁니다!” 학생은 물러나지 않았다.

“재수해도 안 돼!” 이건 사살이었다. 학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곤 곧 비장한 표정으로 변해 버렸다.

“재수해도 안 되면 3수할 겁니다!” 이런 고집불통을 보았나? 그러나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 그 학생의 능력으로 보아서는 3수해도 안 된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넌 3수를 해도 K대학은 안 돼!” 확인 사살이었다.

그 후에도 한 동안 옥신각신, 결국 그는 원서 쓰기를 포기해 버렸다. 찝찝하긴 하지만 그 상황은 여기서 막을 내린다. 다음 해에서부터는 그 학생은 내 소관이 아니었다. 졸업생이니까. 그리고 자연히 나는 그때의 일을 잊어버렸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후, 그 당시 내가 담임을 맡았던 반 학생들이 반창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얼마나들 변했을까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담임선생 자격으로 참석했다. 거기서 그 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옛일이 기억의 저 끝쯤에서 삐죽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에게 물어보았다. 재수를 해서 K대학엘 들어갔느냐고? 그는 대답했다. 4수를 해서 K대학엘 다녔노라고. 그런데 그 K대학은 그가 가려고 했던 K대학이 아니고, 내가 가라고 했던 K대학이었다. 순간, 나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미안하다.” 더 할 말이 없었다.

“아닙니다. 선생님 말씀이 정말로 옳았습니다.” 그래선 안 되었다. 안 되는 것이었다.

“정말로 미안하구나. 용서해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닙니다. 선생님 말씀이 옳다는 걸 새삼스레 느끼고 다른 K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했고 그 덕분으로 지금은 대기업의 부장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다 선생님 덕입니다.”

나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했고, 그 말이 족쇄가 되었던 것이다. 그날 나는 내 주량을 넘어 술잔을 연거푸 들이마셨고, 그 ‘다른 K대학’을 간 제자는 계속 “선생님 덕분입니다!”를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반복하면서, 내 술잔을 채우고 있었다.

(2012.4.19. 원고지 15매 남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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