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스크랩]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1 `알코올 퇴치운동의 글로벌화`

거북이3 2011. 5. 17. 12:30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1)

    알코올 퇴치운동의 글로벌화                                                                                        이   웅   재


 4/2 (토) 맑고 날씨 포근함.

 ‘설마’ 했다. 공연히 하는 말이겠거니 했다. ‘백수(白首)가 과로사(過勞死)한다는 말’, 말이다. 그 말은 정말 말다운 말이었다. ‘백수’란 직업이 없는 사람, 여기서는 ‘정년퇴직자’들이 자폄(自貶)하는 말을 가리킨다.

 퇴직 직후에는 이런 이유, 저런 사정으로 바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신세 많이 졌다고 사는 술턱, 안 마실 도리가 없지 않느냔 말이다. 이제 앞으로는 함께 술 마셔줄 친구가 되어 반갑다고 나오라는 말을 들으면, 비록 더치페이일지라도 고맙기 그지없다. 그렇게 저렇게 사람을 만나다 보면 1+1=2, 2+1=3, 3+1=4, 자꾸만 만나는 사람이 하나둘씩 늘어나서 나중에는 유유상종이라고 ‘지공도사(地공道士)’들 끼리끼리 어울려 돌아가게 마련이니, 늘 바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판국에 느닷없이 계획에도 없었던 미국(엄격하게는 미국과 캐나다)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America’를 왜 ‘미국’이라고 음차(音借)했을까? ‘America’의 ‘A-’는 약하게 발음하기 때문에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 낱말의 발음은 ‘merica’로 들린다. ‘미국’이라고 가차(假借)하게 된 연유다. 그것을 ‘米國’이라고 한자 표기를 한 것은, 땅덩어리가 넓어 쌀 생산량이 많다고만 생각했던 일본에서 주로 사용했던 표현이다. 한편, 우리나라처럼 미국의 문물을 선진문물로 여긴 선각자들의 처지에서는 ‘아름다울 미’ 자의 ‘미국(美國)’을 선호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름이 사물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름을 매우 중시했다. 묘하게도 ‘美國’으로 썼던 우리나라는 ‘6․25’라는 그 동족상잔의 일대 비극을 미국의 도움으로(물론 연합국이 함께 도움을 주었지만) 무난하게 넘길 수가 있게 되었다. 지칭하던 바대로 ‘美國’은 우리에게 ‘美國’이 되었던 것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이상한 음차라 여겨지는 ‘아라사(俄羅斯)’를 생각해 보자. ‘Russia’의 첫 부분 ‘Ru-’는 그냥 ‘러-’가 아닌 ‘으(아)러-’처럼 들렸기 때문에 ‘-라사(羅斯)’ 앞에 ‘아(俄)-’ 자가 더해졌던 것이다.

 어쨌거나 미국은 거리상으로는 멀리 있는 나라지만,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가까운 나라이다. 그와 대비가 되는 나라가 일본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가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 말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背恩)’과 ‘망덕(亡德)’의 나라, 그런데 이번엔 거국적 ․ 범국민적인 ‘일본 돕기’의 시혜(施惠)를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이나, 원전 사고현장의 ‘한국학자 배제하기’의 낯간지러운 처사로 다시 그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어쨌든 나는 지금 미국으로 가기 위해 인천공항 고속버스를 탔다.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3경인고속도로는 이미 안개가 점령하고 있었다. 회색빛으로 뿌우연 안개는 자꾸만 차창을 투과(透過)하여 버스 안으로 들어오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제발 들여보내 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먹혀들지 않으니까 한꺼번에 휘익 몰려와 차창을 부숴버릴 듯 위협하는 몸짓을 보이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1960년대 김승옥(金承玉)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것을 영화화했을 때 정훈희(鄭薰姬)가 부르던 주제곡 ‘안개’가 흥얼거려지기도 하였다. 그것은 냄새마저도 대동하고 있었다. 안개 냄새? 그렇다. 온몸에 축축하게 젖어드는 안개는 촉각을 넘어서 후각까지를 지배하는 것이었다. 묵은 인정(人情)처럼 구수한 그 냄새는 이효석(李孝石)의 ‘낙엽을 태우는’ 냄새하고도 얼추 닮아 있었다. 그 냄새에 콧구멍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천신만고 끝에 새끼손가락 손톱으로 코딱지 하나를 후벼 파내는 데 성공했다. 야호, 아자 아자!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평상시에 늘 맞닥뜨려 옥신각신하던 현실적 일상(日常)이 제자리를 찾았는지 슬그머니 물러가기 시작했다. 여행 준비과정의 그 번거롭고 성가시던 일들이 한순간에 안개 속으로 파묻혀 버리고, 버스는 드디어 공항엘 도착하였다.

 이제는 상상적인 도시 ‘무진(霧津)’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무진을 떠나야 하는 사람에겐, 아니 나에겐 딱 한 가지 빠뜨려서는 안 될 물건이 있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깨구리 반찬.”

 “죽었니, 살았니?”

 술래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동안, 나는 한 발짝 한 발짝씩 면세점으로 이동하였다. ‘살았다!’ 하는 소리가 나오기 이전에 쟁취해야 한다.

 “죽었니, 살았니?”

 “죽었다!”

 그 순간, 나는 뛰었다. 그리고는 얼른 면세점 주류 판매 아가씨에게 물었다.

 “소주 등급의 양주 1병만….”

 아가씨도 내편이었다. 진열되어 있는 양주들을 쓰윽 일별하더니 그 중의 한 병을 내게 내밀었다. 그리하여 나는 SCOTCH WHISKY ‘CUTTY SARK’ 40%짜리 750ml 1병을 15$를 주고 사서 얼른 배낭에 챙겨 넣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미국 존슨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이 술은 만찬주로 원한다고 해서, 전국에 수배하여 간신히 2병을 구하여 사용했던 술이었다.

 ‘술은 인류의 적이다. 마셔서 없애자!’는 나의 알코올 퇴치 운동은 그래서 이제는 역사적인 글로벌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출처 : 이음새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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