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2)
‘지겹다’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를 실감하다 이 웅 재
13시간 14분을 한 자리에 앉은 채로 지내보라. ‘지겹다’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를 실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지겨움’을 넘어도 여러 번 넘어, ‘못 참겠다!’는 말이 저절로 생기게 된 연유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못 참겠다!’ 가지고는 아무것도 변하질 않는다. 그 비슷한 말에다가 하나 더 보태어 ‘못 살겠다, 갈아보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말짱 ‘도루묵’이었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가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할 일 없이 이리저리 서성거려 보기도 하고 공연스레 화장실에도 들락거려 보기도 하였지만, 지겨움이란 놈은 눈치코치 없이 자꾸만 내게 추파를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나의 그 ‘알코올 퇴치운동의 글로벌화’를 위해서 좌석 앞쪽에 비치되어 있는 책자를 끄집어내어 양주의 기내 판매 값을 일별해 보았다.
‘시세이도 바이오 퍼포먼스 슈퍼’는 108,000원(시중가 150,000원), ‘SK-Ⅱ 페이셜 트리트먼트’는 113,500원(시중가 159,000원) 등을 일독하다가, ‘살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가격 점검을 접기로 했다.
착륙시간이 거의 다 된 시간, 유니세프 기금의 모금행사가 있었다. 한국인은 거의 무관심했다. 그런데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5$짜리 10장을 모금 자루에 쾌척하고 있었다. ‘그분’은 흑인이었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이 따라해야 할 만한 일이었다.
드디어 스튜어디스가 찾아와서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란다. 미국 동부와 캐나다 동부까지는 패키지에 얹혀가지만, 그 이후에는 개별 행동을 해야 하기에 비행기표 자체가 개별적으로 구매된 내 경우에는 모든 출입국과 관련된 절차들을 내 스스로 작성해야만 하였다. 다른 것들이야 그럭저럭 쓰면 되지만, 그놈의 질문사항들이 문제였다. 그것도 물론 모두 ‘No’에다가 ‘∨’표시를 하면 되겠는데, 그 중 11번 a항의 질문사항이 나를 주춤거리게 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양심’이란 놈이 세를 들고 있어서, 무조건 ‘No’에 체크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질문은 ‘I am (We are) bringing (a) fruits, plats, foods, insects.’였다. 나는 거기에 용감하게 ‘Yes’ 쪽에 체크를 하였다. 입국 심사대 통과 시 역시 그것이 문제였다. 무사통과 직전, 심사원이 잠깐 멈칫했다. 그러더니, 신고서의 뒷면을 확인한다. 거기에는 구체적인 품명, 곧 고추장, 된장, 마른 해산물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딸내미에게 가져다 줄 품목이었다. 그 친구는 그 이름들을 섬세하게 확인하고 있었다. 내 간이 콩알만해지려 하였다. 그러나 주눅이 들어선 안 된다. 당당하자.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심사원의 눈을 직시했다. 그랬더니 도리어 심사원이 빙그레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그리곤 ‘꽝꽝!’ 입국사증의 도장을 찍어 주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Thank you!”를 소리 높여 외쳤다. 거창한 ‘글로벌 알코올 퇴치운동’ 본부장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체면을 붙잡은 후, 보무도 당당하게 존 F. 케네디 국제공항(JFK)의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였다.
4월 2일 오전 10시에 떠나 13시간이 넘게 지냈는데, 아직도 시간은 4월 2일 오전 11시 14분이었다. 그렇게 4월 2일은 길고도 길었다. 말하자면 4월 2일을 두 번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까지는 비도 오고 흐리고, 오늘은 햇볕 쨍쨍…어쩌고…” 하면서 현지 가이드가 사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본 가이드는 반만년 만에 공항 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본 가이드는 메인투어만 담당하는 가이드입니다.”
어라? 하는 사이, 가이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 한 가지 실수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하도 ‘반만년’ 어쩌구 하는 소리에 단련되다 보니 ‘반년 만에’가 그만 ‘반만년 만에’로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쭈? 물건 한번 잘 만났네, 싶었다.
달리는 버스의 오른쪽으로는 공동묘지로 비석이 빼곡했고, 2회의 세계무역박람회가 남겨놓은 지구본과 원형탑의 조형물 2개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10여 층의 아파트 단지도 보였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단다. 왜? 남한의 거의 100배 정도로 땅덩어리가 넓으니까. 하지만 맨해튼(Manhattan)은 뉴욕에서도 인구밀집지역. 비싼 땅값 때문에 아파트가 띄엄띄엄 보였다. 대부분 70년 정도 된 아파트였다. 30년 정도의 것은 아주 신형으로 치부된단다. 그 구식 아파트들에는 비상계단이 아파트의 외부에 설치되어 있었다. 아직 60여 년 전 소방법이 제대로 시행되기 이전에 지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란다.
“처음 대하는 뉴욕, 실망이시죠? 환경도 지저분, 사람들 복장도 또 지저분, 게다가 불친절하고, 가는 곳마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어디 그뿐인가요? 교통법규, 그거 지킬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그냥 무단횡단하세요. 한국의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손을 들고 건널 필요도 없습니다.…쓰레기 버리실 분은 아무데나 버스 밖에다 버리세요. 다 치워줍니다.”
그렇구나. 베트남에 갔을 때도 담배꽁초 등을 아무데나 버리라고 했다. 그래야 그걸 치워주는 직업의 사람들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도 그랬다.
차창 밖으로 또 공동묘지가 보였다. 원래 맨해튼은 섬으로 뉴욕의 외곽지역이었는데, 그것이 뉴욕의 중심지가 되다 보니 도심 속에서도 흔히 공동묘지를 대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사 모든 일은 변하게 마련이라는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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