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7. 세 가지 여유.hwp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7)
세 가지 여유가 있어야 여행을 할 수가 있다 이 웅 재
가이드는 계속해서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본 가이드는(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서울에 있는 ○○고를 우수함을 무색케 하는 ‘빼어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여기서의 ‘빼어난 성적’은 남보다 ‘부족한 성적’을 가리키는 말로 버스에 타고 있던 모든 여행객들이 이해함) 대망의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바로 강원도에 있는 △△대학교 호텔관광학부였지요.”
맞는 말이다. 국외 유학은 ‘留學’임에 비해 국내에서 타지방으로 공부하러 가는 것은 ‘遊學’인 것이니까 ‘유학’은 ‘유학’인 것이다. 그러다가 대망을 품고 진짜 ‘留學’, 미국으로의 ‘留學’을 떠났더란다. 처음엔 공부보다도 언어소통이 급선무라서 닥치는 대로 아무하고나 대화 연습을 하여 그럭저럭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서 한 시름 놓으려는데, 느닷없이 IMF가 찾아왔다고 했다. 문제는 그 여파로 부모님이 보내주시던 ‘향토장학금’이 중단된 것이다. 이왕 먼 나라에 유학을 온 처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대도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냥 주저 물러앉았단다. 말하자면 불법체류자로 5년 동안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주머니에 100만 원 정도 남았을 때, 배는 쪼르륵 소리를 내지만, 길거리를 걸으면서 음식점 간판을 보고도 빵 한 조각 사먹을 엄두가 나질 않더라는 것이다. 머릿속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단다. 그래서 접시 닦기를 비롯해서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다행히 전공을 살려 여행사에 취업을 했을 때는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쁘기 그지없었단다.
그런데 요즈음의 한국 젊은이들을 보면 한심함을 넘어서 화가 치민단다. 한 조각 빵을 위해 온몸을 던지려는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 한국의 젊은이들, 참으로 호강에 겨운 생활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일을 하지 않고도 부모의 덕으로 먹고 살고, 더구나 신나게 놀고 지낼 수가 있으니 어찌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토․일요일 휴무에, 야간 근무가 없고, 이름도 널리 알려진 대기업만을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중소기업에서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어도 그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 그래서 동남아에서 인력을 수입해야 하는 형편이 아닌가? 어쩌다 출신 대학에서 취업을 시켜주어도 며칠 나가 보다가는 적성에 안 맞는다고 취업시켜준 교수에게는 상의 한 마디 없이 사표를 쓰는 일도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언제나 한국에서 3D업종이란 말이 사라지려는지?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시 가이드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여러분은 지금 미 동부를 여행하고 계십니다. 동남아의 베트남․캄보디아는 일찍이 졸업했고, 중국의 장가계․원가계를 거쳐, 괌․사이판도 다녀오셨을 것이고, 일본의 벳푸, 그리고 호주․뉴질랜드도 섭렵하셨을 것입니다. 그 다음 코스가 이곳 미 동부이니까요. 다음은 서유럽, 그리고 미 서부, 그것도 시들해지면 그 다음엔 남미니 아프리카니 하고 전 세계로 여행지를 옮긴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행을 다니시려면 무엇이 제일 필요할까요?”
글쎄, 무엇이 제일 필요할까? 곰곰 생각해보니 그건 여유였다. 여유 중에서도 제일 먼저 시간적인 여유,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시간이 없으면 여행은 할 수가 없다. 시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 그거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대단한 자유이다. 그래서일까? 여행객의 대부분은 정년퇴직 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었다. 젊은이들은 아직 그 시간적 여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다음은 무엇일까? 시간만 있다고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은가? 다음은 당연히 돈이었다. 한때 무전여행이 유행한 적도 있기는 했다. 그것도 젊었을 적 한때의 얘기일 뿐이다. 청춘시절의 무전여행도 국내여행이라면 모를까, 외국여행 그것도 10여 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외국여행에서는 무전여행이란 당치도 않은 말이다. 먹고 자고 이동하는 일 하나하나가 모두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여행이란 바로 돈이 시켜주는 일일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여행객들의 주머니는 어느 정도 두둑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어느 나라이든 가는 곳마다 그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치기배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가는 곳마다의 선물가게에서도 어떻게 하면 저들 여행객들의 주머니를 풀게 할까 그 방법들을 찾기에 골몰한다. 외국어를 못해도 여행객들의 주머니는 얼마든지 풀게 할 수가 있다. 그래서 가이드는 말한다. 돈 버는 영어는 어렵기 그지없지만, 돈을 쓰는 영어는 무척 쉽다고.
시간과 돈이 있더라도 또 한 가지,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여행은 불가능하다. 세상사 살아가는 데에는 이것저것 걸리는 일도 많다. 어느 분 제사, 누구네 결혼, 아무개 생일…그런 것 말고도 나 몰라라 하기 어려운 수많은 일들이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튀어나온다. 그런 모든 것들을 눈 딱 감고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배짱, 그리고 그렇게 마음먹은 후에 비로소 찾아오는 마음의 여유, 그것이 없으면 역시 여행은 불가능하다.
인생행로 자체가 여행이지만, 그 여행길에서 다시 또 하나의 여행을 수행하려면 이처럼 시간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래서 행복하다.
13시간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미국에서도 그리 많지가 못하다. 보통은 태어난 후 미 전역 50개 주 중에서 5개 주 이상을 다녀본 사람들은 별로 없다고 한다. 좀 많이 다녀본 사람이라야 12개 주 정도, 어느 나라든 평균인의 삶은 그다지 화려하거나 우여곡절이 많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2011.5.15. 원고지 15매 정도)
(뉴욕엔 이렇게 일방통행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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