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42. Banff로 달리.hwp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42)
Banff로 달리는 길은 멀고멀었다
이 웅 재
차는 다시 출발하여 달렸다. 오른쪽 산골짜기에서 흘러 떨어지는 폭포(Fall)가 볼 만했으나 목적지 도착시간이 너무 늦어질까봐 가까이까지 가서 보지도 못하고 기껏 갓길에 잠시 멈춰서서 일별(一瞥)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는 장장 723km의 장거리 주행을 계속하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400km가 넘는 거리이니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가 다시 서울로 되돌아오는 정도의 거리라고 생각하면 될 터이기는 하나, 가다가다 볼거리가 나오면 이와 같이 잠깐씩이라도 지체를 하게 마련이라서, 시간을 아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른쪽으로는 가끔 절벽이 있고 그 절벽에서 작은 폭포들이 이따금씩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왼쪽으로는 시원스런 강물이 흐르고 있어서 구경하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그리 심심치가 않았다. 조금 볼 만한 경치가 나오는 곳에서는 시속 100km, 그렇지 못한 곳은 120km로 달렸다.
차는 점차 산속으로 파고드는 모양이었다. 빗줄기도 점차 굵어지고 있었다. 리어카 같은 곳에 무슨 물건을 싣고 가는 사람이 보인다. 부부인 듯싶다. 이곳은 마을과 마을의 사이가 엄청 멀 텐데 무슨 사연이 있기에 차로 운반하지도 못하고 저렇게 비까지 맞으면서 직접 물건을 끌고 다닐까? 천상에서 서로가 애절한 사랑을 하다가 옥황상제의 분노를 촉발해 이 세상으로 귀양을 오게 된 신선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자 신선님, 어린아이를 셋 낳았다고 안심하고 여선의 날개옷을 내어줄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마소서.
차가 산속으로 빨려 들어감에 따라, 오른쪽으로는 고개를 번쩍 젖혀야만 보일 정도의 높은 산이 연달아 나타나고, 그 산 정상 높은 쪽에는 눈이 얼어붙은 얼음의 흰 덩어리로 뭉친 모습이 보인다. 귀가 먹먹해지는 것이 고도가 상당히 높지 않을까 여겨졌으나,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라서 그런지, 아찔할 정도의 구불구불한 길은 적었다. 땅덩어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도 산도 나무도 다들 컸다. 향나무처럼 보이는 좌우대칭의 나무들도 길 양 옆에서 우리를 계속 배웅해 주고 있었고, 전나무처럼 보이는 죽죽 뻗은 나무들도 곧게 자라 있었다. 성삼문이 이곳엘 와서 저런 모습들을 보았더라면 아마도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되었다가’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정말로 곧으면서도 조금도 걸리는 데 없이 죽죽 자란 나무들이었다.
차는 계속 달린다. 이제는 우리 눈높이보다 아래쪽에 있는 산자락에도 흰 눈이 쌓인 것이 보인다. 내리던 비마저도 어느새 눈발로 바뀌어 버렸다. 펄펄 날리는 눈발을 뚫고 차는 계속 달렸다. 이제는 갓길에도 눈이 제법 쌓였다. 전후좌우가 모두 흰색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앞길도 뿌우옇게 보이고 차량들의 속도는 조금씩 느려진다. 누가 언제 대관령의 설경을 이곳에 옮겨 놓았을까? 기기묘묘한 바위들이라도 있었으면 금강산의 설경과도 대비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하니 조금 아쉽기도 하다.
터널이 나타난다. 이곳은 터널도 특이하다. 터널 속의 밝음은 형광등 때문이 아니었다. 터널의 오른쪽 벽을 바라보니 투명한 유리였다. 터널 밖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 그곳에 쌓여 있는 흰 눈빛이 터널 안을 밝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터널을 지나자 한 곳은 아마도 산사태라도 났던 곳일까 마치 스키장처럼 나무 하나 없이 넓은 경사지였다.
이제는 사방이 희뿌옇다. 길바닥도 얼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운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이름도 모를 산의 정상을 지났는지 차는 차츰 내리막길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Falls Lake Exit’란 이정표가 보인다. 아마도 폭포수가 모여 호수를 이룬 지명인가 보았다. 중간 좌석에서 노트에 끼적거리며 주위 풍경을 묘사하던 내 눈에는 갑자기 우리 차 앞으로 지나가던 차들이 한 대도 보이질 않는다. 모두들 설경에 홀려 설원도(雪園圖)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일까?
차츰 눈발이 약해지더니, 어어라? 이제는 햇살이 구름 사이에서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있었다. 눈발이 잦아들면서부터는 노면도 거의 마른 모습을 보여준다. 나 자신도 잠시 몽중설산(夢中雪山)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산의 고도도 조금씩 낮아지고, 양 옆으로는 드물게 평평한 산자락이 보인다.
뒷좌석의 서영이, 종한이는 물론 가운뎃자리에서 그들을 붙앉고 있던 어른마저도 말문을 닫고 조용하다. 가만히 보니, 아하, 망막(網膜)마저도 닫아놓고들 지내는 걸 이제야 알겠도다. 방금 내가 꾸었던 몽중설산의 꿈 뒷부분을 계속 꾸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이런,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눈꺼풀도 점점 무게를 느끼기 시작한다.
‘Coldwater RD. Exit’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다. 냉수라도 먹고 속 차리라는 말인가? 개인 목장이라도 되는 걸까? 철조망을 쳐 놓은 지역도 보인다. 나도 깜빡했다. 입에서는 침까지도 흘렀다. 눈을 떴을 때에는 다시 거의 평원지대였다.
목초지로 보이는 곳에는 바퀴 달린 긴 시설물이 보인다. 아마도 농약이나 물을 뿌리는 기구는 아닌지 모르겠다. 오른쪽으로는 호수인지 강물인지가 눈에 띈다. 시원스럽다. 곳곳마다 말뚝을 박아놓은 것들이 많다. 개인 목초지들이 연이어 있는 곳일까?
산길은 계속 오르락내리락한다. 이젠 햇볕이 쨍쨍 내리쬔다. 하늘의 구름도 하얀 색이다. ‘뭉게구름 저편 산 너머로…’라는 노랫구절이 생각난다. 빙그레 웃는 듯한 커다란 솜뭉치 같은 구름 하나가 높이 떠 있다. 그 앞쪽의 흰 구름들은 서로 얼기설기 뭉치더니 다시 온 하늘을 뿌우옇게 색칠한다.
금세 날씨는 또 변했다. 흰 눈이 퍼얼펄 차창을 때린다. 그야말로 천변만화(千變萬化)였다. 10m 앞의 차가 흐릿하게 보인다. 느낌 자체도 이젠 오스스 추위가 느껴진다. 길가에는 웬일일까?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서 있다. 위험하다. 모든 차량들이 그 차를 피해 좌측차선으로 이동하여 달리고 있는데, 어렵쇼? 또다시 햇님이 방긋 얼굴을 내밀고 새파란 하늘이 다정하게 다가온다. (2012.3.24. 원고지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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